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 미디어 시장의 빅뱅은 시작됐다
사사키 도시나오 지음, 이연 옮김 / 아카넷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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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신문, 텔레비전의 소멸 - 미디어 시장의 빅뱅은 시작됐다
사사키 도시나오 / 이연 / 아카넷 

내가 인터넷이라는 매체를 처음 만난 것이 1995년.
그 때만 해도 전화에 연결한 모뎀을 이용해서 접속하던 방식이었다. 이미지가 조금만 많아도 한 페이지 띄우는 데에 담배 한 대 태울 시간이 필요했다.
그 당시 내가 담배를 많이 피웠던 것은 어쩌면 인터넷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 때는 조금만 검색 해봐도 정말 좋은 도메인도 꽤 많이 남아있었다. 등록비가 비싸서 엄두도 내지 못했지만 말이다.
그 때, 난 왜 인터넷이라는 매체, 매일 사용하던 그 서비스들을 간과했을까?
시간이 지날수록 인터넷의 영향력은 막강해져갔다.
더욱이 인터넷이 발달할수록 컴퓨터가 아닌 다른 도구를 이용해서 더 쉽고 빠르게 접속할 수 있는 방법들이 생겨나고 있다.

이 책은 지금까지 대표적인 매스미디어로 손꼽는 신문과 텔레비전의 현재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를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종합일간지라고 하면 흔히 조, 중, 동을 꼽는다. 그들 역시 자신들의 손에 쥔 막강한 권력을 마음껏 이용하고 있으며 그 권력이 떠나가지 못하도록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매체 영향력이 과거에 비해 많이 떨어졌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TV역시 마찬가지이다.
공중파 3사라고 불리는 KBS, MBC, SBS가 TV 수상기를 갖고 놀던 시대는 벌써 오래전에 지났다. 지금은 케이블TV, 위성 방송 등을 통해 다양한 채널에서 더 재미있는 방송을 보여주고 있다. 내 부모님 세대가 말하는 공전의 히트작 ‘여로’, ‘아씨’를 비롯해서 내가 보았던 ‘모래시계’와 같은 신드롬은 이제 없다. 퇴근길 차가 줄었다, 방송 시간대에 수돗물 사용량이 줄었다고 말할 정도로 히트를 친 이 작품들은 그 시절이었기에 가능했던 시청률을 보였다. 그 때는 방송국에서 틀어주는 바로 그 시간이 아니면 다시 방송을 볼 수 없었다. 따라서 사람들은 모두 하던 일을 멈추고 TV수상기 앞으로 달려가야만 했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으로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지만, 그 때는 그게 당연했었다. TV를 통해 방송국이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꼭꼭 부여잡고 있던 시절이다.
당연히 그들의 힘은 막강할 수밖에 없다.

보통 과거가 화려하면 변화에 늦게 대응하게 된다. 그 영화를 놓치려 하지 않고, 시대가 변했다는 것을 부정하기 때문이 아닐까?

이 책을 쓴 사사키 도시나오는 기자로 활동하다가 지금은 IT전문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의 눈에 비친 미국 언론의 위상 변화는 일본의 현실을 되돌아보게 햇다.
그리고 미국보다 3년 늦게, 어김없이 그 변화가 일본을 뒤덮었다고 한다. 이제 미국이나 일본에서 종이 신문은 더 이상 권력의 중심이 아니라고 한다. 수입은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줄었고, 과거 권력의 정점에서 지었던 우뚝 솟은 사옥을 매각해야 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다고 한다.
TV 역시 큰 맥락에서는 같은 길을 걷고 있으며, 하루가 다르게 쇠락하고 있다고 한다.
이 모든 변화의 중심에는 인터넷이 있다.
종이 신문 대신 인터넷 사업자가 제공하는 뉴스를 읽고, TV대신 인터넷 사업자가 제공하는 동영상을 보는 사람들, 그들이 매스미디어가 갖고 있는 힘을 차근차근 해체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꽤 많이 놀랐다.
사실 이 책은 일본인이 일본의 현 상황에 대해 이야기하고 미래를 논하는 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지금 우리나라의 상황에 대해 말하고 미래를 그리고 있는 것 같다.
한동안 시끌시끌했으며 지금도 잡음이 여전한 미디어 법 관련 이야기들, 종합편성권을 둘러싼 잡음들... 우리의 이야기일 뿐만 아니라, 일본이 거쳐 간 이야기이기도 하다.

결국 미국에서 시작된 지 3년 만에 일본을 덮친 미디어 사태는 이제 우리나라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하면 과연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방법은 없는 것일까?
이 책에서는 그 방법 역시 인터넷에서 찾아야 한다고 말한다. 과거와는 판이하게 달라진 정보, 전달자, 소비자 사이의 위상을 받아들이고 그 상황에서 가장 현명하게 판단하고 행동한다면 분명 길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아쉬웠던 점은 우리나라 상황과 딱 맞아떨어지지 않는 일본의 이야기라는 점이었다. 출판사에서 그 점이 염려스러웠는지 책 말미에 국내 전문가의 글을 실었다. 보론 이라는 별도의 장을 만들어 제법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이 부분까지 읽고 나야 우리나라에서는 과연 어떤 과정을 거쳐 갈 것인가에 대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제목부터 무슨 연구 논문같은 느낌을 주어서 큰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는데, 책장을 덮고 나니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기대하지 않았는데 큰 것을 얻으면 횡재했다고 표현한다.
이 책을 읽고 나서 내가 바로 이런 느낌을 받았다.

소셜 네트웍으로 대변되는, 아마 인류 역사상 가장 수다를 많이 떠는 시대에, 그 수다를 떨기 위한 다양한 서비스가 매스미디어의 미래를 그릴 수 있는 키워드라는, 정말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상기하게 해준 이 책이 제법 맘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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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장하준 지음, 김희정.안세민 옮김 / 부키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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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23things they don't tell you about capitalism
장하준, 더 나은 자본주의를 말하다
장하준 지음 | 김희정, 안세민 옮김 | 부키

장하준 교수의 책을 읽을 때면 항상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내가 지금까지 알아왔던 것들을 잘못되었다고 말하는 그의 지적에 당황스러움을 느끼기도 한다.
처음 읽었던 사다리 걷어차기가 그랬고,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그랬다.
이번에 읽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 역시 그랬다.
TV에서, 신문에서, 인터넷에서 보고 들었던 경제, 미국식 자유 시장 경제가 정답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단지 수많은 경제 이론 중에서 하나일 뿐이며 그것도 가장 위험할 수 있는 경제 모델일 뿐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모두 스물세가지의 소주제로 이루어져 있다.
각 주제를 시작할 때마다 “그들은 이렇게 말한다.”와 “이런 말은 하지 않는다.”라는 짤막한 문장으로 동전의 양면으로 보여준다.
그리고 그 짧은 문장에서 언론이 하는 말이 무엇인지, 그리고 그 행간에 숨겨진 내용은 어떤 것들인지 말하고 있다.

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되면서 장하준식 경제논리가 위험하다는 내용의 칼럼을 읽은 기억이 난다. 대략 장하준의 경제논리는 아전인수격 해석이고 현대 사회의 시장을 부정하며, 잘 모르는 대중에게 단지 그들의 입맛에 맞는 이야기만 하고 있으므로 문제가 있다는 내용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사실 장하준 교수의 이전 작품들 역시 비슷한 맥락의 말을 하고 있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가 지향하는 경제정책을 비판하고 문제를 제기하는 내용으로 보일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그는 이 책을 한글로 쓰지 않았다. 장하준 교수의 책은 늘 영어로 발표한다. 그리고 번역은 다른 사람의 손을 탄다.
장하준 교수의 책들은 우리나라에서 더 많이 팔릴지는 모르지만, 영어 문화권에서 출판되고 팔리는 책이다.
또한 그의 책 어디에도 대한민국을 집중 공격하는 내용은 담겨있지 않다. 오히려 박정희식 독재 정치가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니라는 말도 하고 있고,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에 대해 상당히 긍정적인 평가를 한다.

문제는 우리가 지금 채택한 경제 정책이 미국식 자유 시장 경제 정책이라는 데에 있다. 흔히 시장 논리라는 말을 한다. 상품의 가격이 품질에 비해 비싸다면 소비자들의 외면을 받게 되어 자연스레 도태된다. 따라서 정책적으로 인위적으로 가격을 통제해서는 안 된다는 식이다.
하지만 늘 궁금했던 것은 이런 것이었다. 정말 그렇게 통제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라면, 왜 정부가 나서서 인플레이션을 억제하기 위해 노력하고, 생필품의 가격을 묶어두려 하는 것일까? 자유 시장 논리대로라면 노동자의 임금, 물가 등등 모든 것은 그냥 방치하면 된다는 것 아닌가?

이 책을 읽으며 제일 먼저 고개를 끄덕였던 내용은 “자유 시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 모든 시장은 정치적이며 자유 시장조차도 정치적으로 결정되는 것이다. 역사 이래로 완벽한 자유 시장은 존재하지 않았다. 우리가 자유 시장이라고 믿는 모든 것들이 사실은 정치적으로 다양한 제한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 그러한 규제들 중 상당수를 우리 스스로 규제라고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다.”라는 부분이다.

경제 발전이 먼저냐, 사회 복지가 먼저냐를 두고 지금 정치권에서는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서울시에서는 무상급식 시행을 두고 주민투표를 하느니 마느니 하고 있고, 이렇게 시작된 복지 논쟁이 아마도 다음 선거 때 무척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파이를 키우기 위해 혜택을 주어가면서 대기업이 돈을 벌게 해주었다. 법인세도 깎아주고, 규제도 풀어주고, 온갖 방법을 동원한 결과 사상 최대의 실적을 기록했다는 뉴스가 나오기도 한다. 그런데 그렇게 벌어들였다는 돈이 도대체 보이지 않는다. 대기업들이 벌어들인 돈은 도대체 어느 창고 한 구석에서 썩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이 책에서도 그 부분에 대해 지면을 할애하고 있다. 그렇게 파이를 키워주었더니 대기업들은 그 수혜의 결과를 나누지 않고 독식하고 있다고...
그게 우리나라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에, 외국에서도 그런다는 것에 그나마 위안을 얻어야 할까?

이 책을 읽으면서 그동안 막연하게 갖고 있던 의문들, 풀리지 않던 궁금증이 제법 많이 해결되었다. 그 부분이 제일 고맙다.

이 책은 마지막을 이렇게 정리하고 있다.
자유 시장 경제는 수많은 경제 모델 중의 하나일 뿐이다. 또한 그 운용에 있어서도 장점만큼 많은 문제점이 있을 수 있다.
자유 시장 경제 논리가 마치 모든 것인 양 착각하지 말자.
그리고...
부자에게는 당근을, 빈자에게는 채찍을 휘두르는 식의 동기부여야 말로 정말 위험한 것이다.
결국 가장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이 가장 큰 피해를 입고 있다
.“

제일 마지막 문장이 정말 크게 다가왔다.
“이제 불편해질 때가 왔다.”

장하준 교수의 다음 책이 벌써부터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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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
마르셀 로젠바흐 & 홀거 슈타르크 지음, 박규호 옮김 / 21세기북스 / 201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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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리크스!
언제부턴가 말 그대로 뜨거운 감자가 되어버린 단어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동영상을 공개해버리고, 거침없이 외교문서를 공개한 겁 없는 친구들... 
페이스북의 주커버그가 상상을 초월하는 부를 움켜쥐는 바람에 유명세를 탔다면, 어산지는 무차별 폭로로 더 뜨겁게 유명인사가 되어버렸다

위키리크스 홈페이지에 들어가 봤다.
변변한 이미지도 없이 온통 알파벳으로 도배를 한, 볼품없는 홈페이지가 뜬다.
링크 하나를 클릭하니 엄청난 길이의 페이지가 로딩된다. 나처럼 영어에 선천적인 거부감을 가진 사람들은 제대로 읽을 엄두도 내기 어려울 정도다

이렇듯 재미없는 사이트 하나가 전세계를 발칵 뒤집었다는 게 놀랍다.
무엇보다 그의 정보 수집 능력이 궁금했다

이 책, ‘위키리크스 - 권력에 속지 않을 권리를 읽었다.
줄리언 어산지의 출생에서부터 현재까지 빠른 속도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보통 사람이 유명세를 타면 꼭 따라붙는 게 스캔들이다. 특히 남자의 경우에는 섹스 스캔들만큼 만만한 게 없다.
줄리언 어산지 역시 두 여자와의 섹스스캔들로 재판이 진행되고 있다고 한다.

미국이라는 자유의 나라에서 위키리크스만이 예외가 되어버렸다.
이젠 모든 국가의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존재.
민주국가, 독재국가를 가리지 않고 위키리크스는 공통의 적으로 대접받는다

그의 신념은 확고한 것 같다.
모든 정보는 공개되어야 한다. 비밀 정보는 힘의 불균형을 낳고, 이 불균형은 비밀 정보를 가진 자와 그렇지 못한 자를 지배와 피지배의 경계로 나눈다.
대략 이런 신념을 갖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그는 정보를 공개한다

최근 리비아를 비롯한 독재국가들이 민주화 열풍에 휘말려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고, 독재자들은 자리에서 내려오거나, 더 크고 강한 칼로 자신의 피지배자들의 목을 날린다

왜 갑작스레 이런 민주화 바람이 불었을까
이런 흐름에 분명 위키리크스가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

위키리크스의 정보 공개는 어쩌면 국가권력이 마지막까지 꽁꽁 숨겨야만 하는 판도라의 상자를 열어젖힌 것 아닐까?
따라서 위키리크스의 행보는 분명 긍정적인 평가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그 반면에 정보 공개로 인한 부수적인 피해를 받는 이들도 존재할 것이다. 따라서 부정적인 평가도 그들이 감내해야 할 몫이다.

여기에서 문제는 이 부수적인 피해가 필연적으로 누군가의 목숨을 요구할 것이라는 사실이다.
위키리크스가 이라크 전쟁 관련 동영상을 공개할 때 제목을 부수적 살인으로 명명했다고 한다. 위키리크스가 부수적 살인이라는 제목을 선택한 것과 동일한 이유로 위키리크스의 행위에 따른 피해는 부수적 피해일 수 밖에 없다.

그럼 위키리크스의 줄리언 어산지는 혁명군 지도자, 또는 민중의 알 권리를 위한 메신저쯤으로 인정받을 수는 있을까?
전문가들의 의견이 어떤 쪽으로 모아질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내 생각은 부정적이다.
그의 행위가 불필요하다거나, 편협한 영웅심리라고 말하려는 것은 아니다.
또한 위키리크스의 정보 공개가 꼭 필요하다는 것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일에도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영역과 부정적인 영역은 존재한다.

위키리크스의 정보 공개 역시 긍정적인 부분이 많고 꼭 필요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부수적 피해는 긍정적인 영역을 모두 잠식할 정도의 부정적인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따라서 앞으로 위키리크스의 방향은 정보 공개와 더불어 그로 인해 벌어지는 부수적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노력이 병행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그들의 시스템이 정보제공자를 익명으로 남겨두기 위해 벌이는 노력은 대단히 놀랍다. 그 누구도 아직 위키리크스의 보안 시스템에 접근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니 말이다

하지만 정보제공자의 익명성 보장만큼, 어쩌면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 정보의 공개로 인해 희생될 불특정 다수에 대한 책임감이며, 그 피해에서 눈 돌리지 않고 바라보는 용기와 책임감이다

이 부분에 대한 위키리크스의 노력 여하에 따라 그들은 공공의 적으로 머물고 말지, 대중의 친구, 피지배자의 이웃이 될지 결정될 것이다.

이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진실이 얼마나 치명적일 수 있는지...”
바로 이 문구가 위키리크스가 해결해야 할 첫 번째 과제가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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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 인간을 말하다 - 김원익 신화 에세이
김원익 지음 / 바다출판사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인간의 삶에 대한 모든 해답

신화, 인간을 말하다.
김원익 / 바다출판사
 

이 작품의 전편격인 [신화, 세상에 답하다]를 참 인상깊게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때 썼던 리뷰가 인연이 되어, [신화, 인간을 말하다]라는 작품이 나오고 나서 김원익 작가님께서 직접 보내주셨다.

리뷰를 쓰기 위해 전작 격인 [신화, 인간을 말하다]를 들춰봤다.
두 책이 말하고자 하는 주제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지 비교를 해봤다.
음...
잘 모르겠다.
비슷한 주제, 겹치는 내용도 있다. 같은 주제라고 해도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는지, 어떤 관점에서 해석하는지에 따라 내용이 달라질 것이므로 그건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이 책은 인간이 살면서 만날 수 있는 상황,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겪을 수 있는 갈등과 사랑... 이런 주제에 신화를 대입해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신화는 결국은 인간의 상상력의 산물이라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자면 신화 속에 등장하는 모든 이야기들은 인간의 상상력과 역사를 담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한다.

이 책의 첫 이야기는 부자갈등으로 시작한다. 본문의 한 대목을 인용하자. 
그리스 신화의 오이디푸스는 신탁에 따라 실수로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결혼한 비운의 주인공이다. 프로이트는 <꿈의 해석>에서 그에 대해 말한다. “오이디푸스 왕 이야기에는 실제로 그럴만한 계기가 내포되어 있다. 그의 운명이 우리를 감동시키는 이유는 그것이 우리의 운명이 될 수 있고, 출생 이전의 신탁이 우리에게도 똑같은 저주를 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에게 최초의 성적 자극을, 아버지에게 최초의 증오심과 폭력적 희망을 품는 운명을 짊어지고 있는지도 모른다.“

초등학교 5학년에 올라가는 딸아이는 얼마 전까지 내게 이런 말을 했다.
“난 이담에 크면 아빠랑 결혼할거야.”
요즘엔 그 말이 이렇게 바뀌었다.
“난 어른이 되도 결혼하지 않고 아빠랑 살 거야.”

뭐랄까?
어린아이들에게 아빠와 엄마는 이성을 알기 이전부터 항상 함께 한, 이성에 눈뜨게 될 무렵이면 선택의 기준이 되는 존재가 아닐까 싶다.
이 다음에 크면 아빠와 결혼하겠다는 딸, 아직 어리지만 엄마를 지켜주는 늠름하고 씩씩한 아들이고 싶은 욕망... 이 모든 것이 결국 그러한 욕망을 표현하는 것이 아닐까?
결국 남자는 아버지를 넘어서야 진정한 남자가 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종국에 가서는 그 아버지와 다시 화해하는 과정을 거쳐 또 다시 어른으로 거듭나게 되는 걸 것이다.

나 역시 중, 고등학교 시절 아버지와 최악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하루 종일 아버지와 나누는 대화라야 “안녕히 주무셨어요?”, “안녕히 주무세요.” 가끔 가다가 “다녀오세요.”, “다녀오셨어요?” 정도...
군대를 제대하고 사회인이 되고 나서 조금씩 아버지와의 거리가 가까워지기 시작했다.

몇 년 전부터 몸이 불편해지신 아버지께서는 요즘 부쩍 내게 의지하신다. 어머니께서 차려드리는 밥상은 가끔 마다하시지만, 나와 단둘이 있게 되는 상황에서 내가 차려드리는 밥상은 절대 그냥 물리지 않으신다.
불편한 몸에 대한 불평도 어머니가 아니라 내게 더 자주 하신다.
드라마를 보더라도 갈등을 겪는 부자간의 이야기는 많이 등장한다.
이러한 부자간의 갈등 역시 신화 속에서 훨씬 극명하고 구체적인 상황으로 묘사되고 있다.

사랑, 동성애, 모험, 탈출, 괴물, 분노, 전쟁...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에서 필히 겪게 되는 모든 것들에 대한 해답은 이미 신화 속에 다 들어있다. 머언 옛날을 살던 인간들도, 2011년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도 모두 같은 문제로 고민을 하고 그 과정에서 만나는 것들마저 비슷했던 모양이다.

이 책에는 가끔 어원에 대한 설명도 등장한다.
심포지엄의 어원은 그리스어 “함께 먹고 마신다”라는 의미의 “심포시온”에서 유래했다고 한다.
레즈비언은 여성들만 살던 섬 “레스보스‘에서, 영웅은 보호하고 봉사한다는 의미의 "헤로스”에서, 훼방을 받으면 끔찍한 비명을 지르는 판 신에서 ”패닉“이라는 말이 유래했다고 소개하고 있다.

가장 눈길을 끈 주제는 숫자 3에 얽힌 이야기를 소개하는 부분이다. 인간이 왜 숫자 3을 중요하게 생각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설명도 흥미롭고, 3에 얽힌 다양한 에피소드를 읽다보니 정말 많은 옛이야기에서 숫자 3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저자가 신화와 현실의 연결고리를 찾는 이 작업을 시작한 이유가 무엇일까?
쉽게 생각하자면 신화에 관한 학문을 본업으로 삼고 있는 저자의 입장에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조언을 신화에서 찾고 그것을 정리하는 작업을 진행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쩌면 단순히 먼 옛이야기, 말도 안 되는 전설쯤으로 치부될 수 있는 신화를 통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인생의 항로를 알려주는 항해지도를 보여주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일 내 생각이 맞는다면 적어도 내게 있어서만큼은 저자의 이러한 의도가 어느 정도는 먹혀들어갔다고 해야 할 것 같다.
막연하게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한 신들의 선택을 엿보고 참고하게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 참에 아예 제대로 신화 읽기를 시작해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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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삼대 교류사 - 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을 말하다
박유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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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삼대 교류사 - 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을 말하다.
박유상 / 메디치

당연히 작가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이름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이 책은 여자가 쓴 남자 이야기, 그것도 조선시대 양반가문이라는 파평 윤씨 가문의 남자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정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나서 자란 이 나라를 보면 안타까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안타까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을 텐데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양반들을 보면 초등학생들도 하지 않을 유치한 말장난에 조폭보다 더 심한 몸싸움을 해대고, 사기꾼도 피해갈 거짓말을 일삼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뻔뻔스러움이 점점 이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다.
옛말에 나라를 다스릴 때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신의’라고 했다는데, 식량보다도 ‘신의’를 더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이 나라에서는 ‘신의’는 고사하고 식량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의 입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온다. 뻔뻔스럽게...

꿈을 키워가야 할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돈을 많이 벌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교실은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는 공간이 아닌, 경쟁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초등학교에서 진즉에 배웠어야 할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면서도 영어를 배워서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대학에서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글 바로쓰기 세미나를 별도로 열어야 한단다.
공교육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불안감은 세계 최고의 사교육시장을 만들어냈고, 이젠 공교육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 마저 사교육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경제의 쏠림 현상에는 가속도가 붙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잘 사는 쪽으로 돈이 몰려가고, 중산층이라 불리던 사람들마저 날이 갈수록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지갑은 얇아진다.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일의 가치를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돈이라는 매개체가 모든 가치 판단에 우선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하고 있는 일이 설령 도덕적 가치를 논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일이라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대기업은 협력사라는 거창한 이름의 중소기업이 가져가야 할 정당한 이윤마저 포기하게 만들고 그렇게 자기 곳간에 쌓인 돈을 ‘경영 성과’라고 떠들고 다닌다.

과연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는 걸까?
이 나라에 밝은 미래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만일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오래전, 잠시 일본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나, 높은 빌딩, 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가장 인상 깊게 느꼈고 참으로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자주 입는 ‘기모노’였다.
불과 열흘 정도의 짧은 일본 방문이었지만 거리를 걷는 내내 일본전통옷, 기모노는 자주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기모노는 전혀 어색하지도 않았고 촌스럽지도 않았으며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그들, 일본은 우리나라를 오랜 기간 동안 강점해왔던 나라이다. 그들에 의해 우리는 억지로 옷 벗겨졌으며 상투가 잘렸고, 서양식 의복을 강요받았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은 해체되어버린 것이다.
조상들의 삶은 말 그대로 옛것이 되어버려서 이젠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의 삶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들을 부정하다보니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에게 부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되돌아볼 거울이 없고, 어른들의 충고에 귀를 막고 살고 있으니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이라도 많이 쥐고 있어야 덜 불안하겠기에 정당한 대가가 아닌 무조건 많은 돈을 바라게 되고, 남들보다 앞서 있어야 살 수 있다고 믿기에 반 동료들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그렇게 남들과 싸우고 경쟁하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닌 고성과 몸싸움만 능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 남자 삼대 교류사를 읽으면서 우리의 옛것, 우리의 정신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파평 윤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윤여준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명재 윤증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 인상적이었다.
86년을 사셨고, 다섯의 임금을 섬겼으며 서른여섯 이후에는 학문으로 그를 따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셨음에도 벼슬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우의정과 중추부판관에 제수되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최근 언론에서 시끌시끌하던 임명직 고위 공직에 대한 청문회를 떠올리게 한다. 왜 대통령이 부르면 모두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가는 걸까? 왜 스스로 그 자리를 사양하지 못하는 걸까?

윤씨 가문에서는 흔히 말하듯 사회에 대한 책임도 강해서 남을 돕기 위한 밭을 따로 경작했고, 가문 내에서 직접 자식 교육을 시켰단다.
과연 이런 걸 두고도 ‘과거의 유물’이니 해가며 무시하고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고 폄훼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김치의 우수성이나 온돌의 과학적 근거와 같이 우리의 옛것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눈에 띈다.
기왕이면 이런 시류에 ‘우리 조상들의 정신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오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역사는 불과 백년도 안 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무시할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한민족의 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세상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내일을‘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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