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지음, 박병수 옮김 / 민음사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가격 파괴의 저주
고든 레어드 / 박병수 / 민음사 

 ‘고든 레어드는 세상에서 가장 해박한 사람으로 꼽히는 저널리스트’라는 저자 소개글이 눈길을 끈다.

이 책은 모두 3부로 구성되어있다.

1부는 풍요의 왕국이라는 제목으로 되어있으며 월마트로 대변되는 가격할인점이 어떻게 지금의 위치에 이르게 되었는지, 그 와중에 미국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미국인들의 삶을 어떻게 변화시켰는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2부는 할인 매장 밖의 세계라는 제목이다. 가격할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이루어지는지, 이렇게 값싼 제품이 매장에 걸리기 위해서는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지, 교역에는 과연 문제가 없는지 조명한다. 게다가 현대사회에서 가장 사랑받는 물질이라고 볼 수 있는 플라스틱의 위험성과 중국으로 대변되는 값싼 인력시장은 무엇이 문제인지도 이야기하고 있다.

마지막 3부는 기회비용이라는 제목으로 무언가 대안을 찾을 수 있는지 묻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며 우선 나의 생활을 돌아봤다.
나 역시 싼 가격에 열광한다. 남들처럼 천 원짜리 닭을 사기 위해 새벽부터 줄서는 대열에 동참하지는 않았지만, 내가 입고 먹고 마시는 대부분은 일주일에 한 번 찾아가는 집 근처 홈플러스 매장에서 구입한 것들이다.
이런 매장들은 단순히 물건만 팔고 있지 않다. 문화센터라는 이름으로 갖가지 강좌를 진행하고 있고, 이 강좌들 역시 거리에서 만나는 수많은 사설 학원에 비해 엄청 싼 수강료를 자랑한다.
지난봄부터 나는 이 문화센터에서 일주일에 한 번 기타를 배운다. 그리고 매주 한 번 찾아가는 문화센터 덕분에 모든 생활필수품의 구입은 그곳 매장에서 이루어지게 되었다.
가까워서, 편해서, 없는 게 없어서 이용한다. 빼놓을 수 없는 한 가지... 가격이 싸니까 더 찾는다.

이곳 매장에서 만나는 그 수많은 물건들, 그것들은 놀랍게도 거의 대부분 마데인차이나!
내가 강의를 관리하기 위해 사용하는 클리어파일, 필기를 위해 사용하는 값싸고 잘 써지는 볼펜, 핸드폰을 꾸미기 위해 사용하는 케이스, 집 앞 산에 오를 때 입기 위해 산 등산복과 등산화, 컴퓨터 작업을 위해 구입하는 메모리와 프린터의 잉크, 복사지, 입는 옷을 보관하는 서랍장, 책상 위에 놓여서 음악을 들을 때 사용하는 스피커, 또는 휴대용 이어폰...
심지어 우리 집에서 말썽꾸러기 막내노릇을 톡톡히 하는 말티즈 강아지까지... 모두 집 앞 홈플러스를 통해 내게 왔다.
그리고 그렇게 내 일부가 된 그 것들의 대부분은, 적어도 80% 이상은 중국에서 건너왔다.

언젠가 인터넷에서 본 사진 한 장이 생각난다. 여성들이 머리를 묶기 위해 사용하는 색색가지 고무줄, 겉의 피복을 벗겨내자 놀랍게도 그 안에는 사용하고 난 것임이 틀림없는 콘돔이 들어있었다.
내구성이 뚝 떨어져서 한 철도 제대로 사용하지 못하고 버려지는 온갖 소품들 역시 마찬가지다.
이 모두는 상식적으로 도저히 설명되지 않는 싸구려 노동력으로 인해 가격 경쟁력을 갖는 중국에서 건너왔다.
이런 싸구려 제품들이 우리 일상을 파고들어서 이젠 떼려야 뗄 수 없는 위치를 단단히 점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아는 사실이다.
그리고 우리가 지불하는 가격은 결코 합리적이지도 않고, 적절하지도 않으며 정당하지도 않다. 적어도 이 책에서 밝히는 내용에 의하면 그렇다.

중국에서는 초기 산업화 시절에는 주로 항구가 가까운 곳에 이런 제품을 생산하는 공장을 지었다고 한다. 이제는 중국도 많이 발전해서 항구 근처에서는 조금 더 값비싼, 첨단의 제품을 생산하는 시설로 빠르게 변하고 있으며 가격할인의 전초기지는 계속 중국내륙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한다.

우리는 쉽게, 너무도 쉽게 싼 제품을 구입한다. 그리고 그 제품이 우리의 삶을 풍요롭게 하거나, 적어도 내 생활을 편하게 해줄 것은 믿어 의심하지 않는다. 딱 거기까지...
그 제품이 나를 위해 어떤 일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생각하지만 그로 인해 나와 우리 사회에 어떤 불행이 들이닥칠지 생각할 마음이 없다.
여유가 없다. 우리의 마음은 그런 것까지 생각할 여유 따위는 없는 것이다.

이 책은 불편하지만, 씁쓸하지만 그런 부분을 생각하라고 한다. 과연 우리가 지불하는 물건 값이 정당한지, 그 물건이 내 시간을 잘 쓸 수 있게 해주는 만큼 이 사회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우선 생각해볼 부분은 가격의 적정성이다. 우리는 제품에 달린 꼬리표에 적힌 그 금액을 지불하고 물건을 구입한다. 하지만 그 가격에는 적어도 중국내에서 생산되는 과정에서 생기는 공해, 자연파괴 물질에 대한 비용은 포함되어있지 않다고 보는 것이 맞다. 만일 우리가 제대로 환경에 관한 비용까지 지불한다면, 지금 중국은 저렇듯 오염된 공기로 인해 골치를 썩이지 말아야 한다. 중국의 지도자들은 공기청정기마저도 다른 것을 사용한다고 해서 뉴스에 등장했었다. 그렇게 심각한 환경은 우리가 사용하는 물건들을 만드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부산물이다. 그리고 우리는 봄철 황사를 무서워한다. 모래바람이어서가 아니라 함께 섞여서 날아오는 중금속 때문이다. 중국에서 만들어진 물건은 컨테이너에 담겨서 거대한 화물선을 타고 세계로 퍼져나간다. 지금 이 시간에도 전 세계의 바다는 엄청난 양의 중국산 물건들을 싣고 달리는 배로 인해 시끄럽다. 이 시끄러운 화물선 소리는 심지어 돌고래의 번식에도 영향을 미친다고 한다. 돌고래의 음파는 바닷속에서 꽤 멀리까지, 적어도 몇 백Km정도 퍼져나가면서 짝짓기를 할 상대를 찾는데, 화물선의 시끄러운 소음은 돌고래의 음파를 상쇄하고, 그에 따라 돌고래가 짝짓기를 할 수 없도록 방해한다고 한다.

단순히 시끄럽기만 한 것이 아니다. 화물선이 움직이기 위해 사용되는 석유, 그로 인해 발생하는 탄소 및 기타 환경파괴물질들...
항구에서 내려진 물건들은 거대한 트럭에 실려 다시 곳곳의 매장으로 향한다. 그 와중에도 여전히 탄소가 배출되고 도로가 파손되고, 그 먼지는 우리의 폐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알게 된지 불과 몇 십 년밖에 되지 않는 플라스틱은 거의 대부분의 제조물품의 표면으로 사용되고, 그렇게 만들어진 플라스틱 제품은 다시 플라스틱 포장용기에 담겨서 진열된다.

그렇게 전 세계의 생활권은 과도하게 한 나라의 값싼 인력에 매달려 불안하게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싼 가격에 노동을 파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관심 가질 필요도 없다.
그러면 이렇게 싸게 구입하는 물건이 정말 우리를 풍요롭게 할까?
나, 가족, 친구, 한동네 사람들이 다니던 회사가 제조공장을 중국으로 이전한다. 당연히 생산직 노동자로 일하던 그들은 실업자가 된다. 그리고 중국으로 이전한 그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정말 싼 가격에 할인점에서 구입할 수 있다.
즉 가격은 싸졌을지 모르지만 우리 주위에 실업자가 넘쳐나고 있는 것이다.

대형 할인점은 팔지 않는 것을 꼽는 게 더 빠를 정도로 모든 것들을 다 판다. 특히 일상생활에 필요한 것들은 빠짐없이 진열해두고 있다.
예전, 그냥 동네 구멍가게, 시내의 상점을 돌아다니며 사야 하던 그 물건들을 한 곳에서 더 싸게 구입하기 위해 우린 너무도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는 것 아닐까?

우리 삶은 결코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경제는 그렇게 가격 하나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세상은 생각보다 많은 것들이 복잡하게 얽혀 있는 것 아닐까?

원자력을 포기하고 태양광으로 대변되는 재생 에너지를 선택한 독일인, 그들은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했다. 더 비싼 에너지를 구입하는 것이다.

안락함 대신 약간의 불편을 선택하면 과연 어떤 결과가 나타날까?
지금까지 우리는 한 번도 안락함을 포기하고 불편을 선택한 적이 없다. 따라서 그 선택에 어떤 결과가 나타날지 알 수 없다.
이제 한 번 선택해봐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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