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 삼대 교류사 - 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을 말하다
박유상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10년 10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남자 삼대 교류사 - 400년을 이어온 윤씨 가문의 정신을 말하다.
박유상 / 메디치

당연히 작가는 남자일 거라고 생각했다. 저자의 이름도 그렇고, 제목도 그렇고...

이 책은 여자가 쓴 남자 이야기, 그것도 조선시대 양반가문이라는 파평 윤씨 가문의 남자들, 아버지에서 아들로 이어지는 정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내가 나서 자란 이 나라를 보면 안타까운 것이 하나 둘이 아니다. 더구나 그런 안타까움이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이라도 줄어들면 좋을 텐데 오히려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나라를 다스린다는 양반들을 보면 초등학생들도 하지 않을 유치한 말장난에 조폭보다 더 심한 몸싸움을 해대고, 사기꾼도 피해갈 거짓말을 일삼는다.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린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의 뻔뻔스러움이 점점 이 사회에 흘러넘치고 있다.
옛말에 나라를 다스릴 때 마지막까지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바로 ‘신의’라고 했다는데, 식량보다도 ‘신의’를 더 우선해야 한다고 했다는데, 이 나라에서는 ‘신의’는 고사하고 식량마저 지키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도 여전히 그들의 입에서는 ‘국민’이라는 단어가 흘러나온다. 뻔뻔스럽게...

꿈을 키워가야 할 어린 학생들의 입에서‘돈을 많이 벌어야 살 수 있다’는 말이 스스럼없이 나오고, 교실은 공부하고 친구를 만나는 공간이 아닌, 경쟁과 이전투구의 장이 되어버린지 오래이다.
초등학교에서 진즉에 배웠어야 할 맞춤법을 제대로 모르면서도 영어를 배워서 유창하게 사용하는 것이 당연한 세상이다. 대학에서는 신입생을 대상으로 한글 바로쓰기 세미나를 별도로 열어야 한단다.
공교육만으로는 만족하지 못하는 불안감은 세계 최고의 사교육시장을 만들어냈고, 이젠 공교육 시스템을 정비하는 것 마저 사교육의 눈치를 봐야 하는 지경이 되어버렸다.

경제의 쏠림 현상에는 가속도가 붙어서 시간이 지날수록 잘 사는 쪽으로 돈이 몰려가고, 중산층이라 불리던 사람들마저 날이 갈수록 주머니가 가벼워지고, 지갑은 얇아진다.
열심히 일을 하고 그 대가로 돈을 버는 것이 아니라 돈을 벌기 위해 무엇이든 마다하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일의 가치를 느끼고 자신의 일에 대해 자긍심을 가질 수 없는 세상이 된 것이다. 돈이라는 매개체가 모든 가치 판단에 우선하는 세상이 되다보니 하고 있는 일이 설령 도덕적 가치를 논하지 못할 만큼 형편없는 일이라고 해도 부끄러워하지 않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 아닐까?
대기업은 협력사라는 거창한 이름의 중소기업이 가져가야 할 정당한 이윤마저 포기하게 만들고 그렇게 자기 곳간에 쌓인 돈을 ‘경영 성과’라고 떠들고 다닌다.

과연 이런 나라에 희망이 있는 걸까?
이 나라에 밝은 미래라는 것이 가능하기는 할까?

요즘 나는 그런 생각을 가끔 한다.
만일 우리나라가 일제 강점기를 겪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오래전, 잠시 일본에 들른 적이 있다.
그곳에서 가장 부러웠던 것은 휘황찬란한 네온사인이나, 높은 빌딩, 첨단 기술이 아니었다. 가장 인상 깊게 느꼈고 참으로 부러웠던 것은 그들이 자주 입는 ‘기모노’였다.
불과 열흘 정도의 짧은 일본 방문이었지만 거리를 걷는 내내 일본전통옷, 기모노는 자주 눈에 띄었다.
거리에서 만나는 기모노는 전혀 어색하지도 않았고 촌스럽지도 않았으며 그냥 자연스러운 일상처럼 보였다.

그들, 일본은 우리나라를 오랜 기간 동안 강점해왔던 나라이다. 그들에 의해 우리는 억지로 옷 벗겨졌으며 상투가 잘렸고, 서양식 의복을 강요받았다.
그렇게 우리의 전통은 해체되어버린 것이다.
조상들의 삶은 말 그대로 옛것이 되어버려서 이젠 누구도 돌아보지 않는 쓰레기 취급을 받고 있다. 우리의 삶에 고스란히 박혀 있는 것들을 부정하다보니 우리 자신마저 스스로에게 부정당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자신을 되돌아볼 거울이 없고, 어른들의 충고에 귀를 막고 살고 있으니 그 무엇도 믿을 수 없는 세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돈이라도 많이 쥐고 있어야 덜 불안하겠기에 정당한 대가가 아닌 무조건 많은 돈을 바라게 되고, 남들보다 앞서 있어야 살 수 있다고 믿기에 반 동료들이 친구가 아닌 경쟁자가 되어버린 것 아닐까?
그렇게 남들과 싸우고 경쟁하는 것만 배웠기 때문에 정치하는 사람들은 대화와 타협이 아닌 고성과 몸싸움만 능사가 되어버린 것이 아니겠는가?


이 책, 남자 삼대 교류사를 읽으면서 우리의 옛것, 우리의 정신문화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사실 파평 윤씨 가문이 어떤 가문인지, 윤여준이라는 분이 어떤 분인지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이 책을 읽었다.
첫머리에 등장하는 명재 윤증에 대한 짧은 소개 글이 인상적이었다.
86년을 사셨고, 다섯의 임금을 섬겼으며 서른여섯 이후에는 학문으로 그를 따를 수 있는 자가 없다는 평을 받을 정도의 인물이셨음에도 벼슬을 바라지 않았다고 한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우의정과 중추부판관에 제수되었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았다고 한다.
이 부분은 최근 언론에서 시끌시끌하던 임명직 고위 공직에 대한 청문회를 떠올리게 한다. 왜 대통령이 부르면 모두 꼬리를 흔들며 달려 나가는 걸까? 왜 스스로 그 자리를 사양하지 못하는 걸까?

윤씨 가문에서는 흔히 말하듯 사회에 대한 책임도 강해서 남을 돕기 위한 밭을 따로 경작했고, 가문 내에서 직접 자식 교육을 시켰단다.
과연 이런 걸 두고도 ‘과거의 유물’이니 해가며 무시하고 현대 사회에 맞지 않는다고 폄훼할 수 있을까?

최근 들어 김치의 우수성이나 온돌의 과학적 근거와 같이 우리의 옛것들에 대한 새로운 평가가 눈에 띈다.
기왕이면 이런 시류에 ‘우리 조상들의 정신문화’에 대해서도 관심이 높아졌으면 좋겠다.
분명한 것은 오천년을 이어온 우리나라의 역사는 불과 백년도 안 된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이름으로 무시할 수 있는 가벼움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한민족의 정신을 제대로 받아들이고 지금의 세상에서 써먹을 수 있도록 연구하는 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내일을‘희망’이라는 이름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길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