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 안드리치 단편집 - 지만지고전천출 349
이보 안드리치 지음, 김지향 옮김 / 지만지고전천줄 / 2009년 4월
평점 :
구판절판


이보 안드리치(Ivo Andrić) 단편집 / 김지향 역 / 지만지 고전선집

우선, 이 리뷰를 작성하게 된 경위를 짧게 적자면, 도서출판 지만지에서 꽤 많은 분량의 고전을 시리즈로 펴내나보다.
그리고 그 출간 기념 이벤트 중의 하나로 리뷰어를 모집했다. 6개월간 매달 한 권씩의 신간을 리뷰어가 선택하면 출판사에서 보내주고, 다 읽고 리뷰를 작성하는... 뭐 그런 거다.
그 첫 번째로 선택해서 받은 책이 바로 이 [이보 안드리치 단편집]이다.

우선, 이보 안드리치라는 다소 생소한 지은이에 대한 설명을 보도록 하자.
이보 안드리치는 1892년 10월 10일 보스니아의 작은 마을 트라브니크에서 크로아티아인 아버지 안툰과 어머니 카타리나 사이에 태어났다. 두 살도 되기 전에 아버지는 죽고 그는 어머니를 떠나 고모밑에서 자랐다고 한다.
그는 9세이던 1911년, 사라예보의 월간 문학지 <보스니아의 요정>을 통해 시를 발표하고, 26세인 1918년 산문시집 <흑해로부터>를 발표하며 등단했다고 한다.
두 번째 시집인 <불안>을 마지막으로 시는 더 이상 쓰지 않고,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소설을 썼다고 한다. 외교관으로 근무하기도 했던 그는 역사학 박사학위도 받았으며, <드리니 강의 다리>라는 소설을 발표하고 1961년, 노벨문학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1975년 3월 13일 사망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난 이 책을 읽기 전에는 이보 안드리치라는 소설가가 있는지도 몰랐다. 당연히 그의 작품 경향이 어떤지도 몰랐다.
이 책은 그의 어린 시절의 추억과 맞물리는 느낌이 강한 단편 여덟 편을 담고 있다.
[나는 어떻게 책과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는가?]라는 긴 제목을 갖고 있는 지극히 짧은 단편부터 [파노라마], [서커스], [아이들], [창], [탑], [책], [아스카와 늑대]까지...

이 책의 저자인 이보 안드리치는 보스니아 출신이라고 한다. 보스니아라는 말은 당장 내게 [보스니아 내전]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데 그것 말고는 아는 게 없다. 떠오를 그 어떤 낱말도 없다. 보스니아라는 단어가 내게 주는 느낌은 이렇게 빈약하다.
그나마 기껏 떠오르는 것이 내전이라니...
결국 나에게 보스니아는 그냥 신문 기사로 가끔 읽는 '내전'이나 일으키는 나라였나보다. 그들의 문화나 언어, 민족의 특성이니 하는 것들은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니었다. 흔히 말하는 소수민족, 비주류 국가, 민족 간의 유혈사태 정도나 겨우 꿸만한 정도 이상도 이하도 아닌 나라였다는 것이다.

그런 나라 출신 작가의 단편 소설을 읽었다.
전혀 관심의 대상이 아닌 나라 출신 작가가 쓴 작품을 만난 것이다.
그리고 그리 두껍지 않은 그의 단편집을 다 읽고 난 느낌은, 머언 추억 여행을 하고 온 느낌이다. 마치 나 어릴 적 동네에서 벌어진 짧은 이야기들, 그리고 그 속에 한자리 차지하고 있는 나의 뒷모습... 이런 걸 들여다 본 느낌, 내 어린 시절의 흑백사진이다.
이것이 이보 안드리치의 단편집에서 읽어낸 내 감상평이다.

첫 번째 단편인 >[나는 어떻게 책과 문학의 세계로 들어가게 되었는가?]는 참 짧다. 단순히 짧기만 한 것이 아니라, ‘이게 단편소설인가?’라는 생각을 하게 한다.
그냥 작가가 자신의 어린 시절, 그 궁핍하던 그 시절에 어떻게 해서 문학을 만나게 되었는지를 떠올리는 가벼운 수필 같은 느낌이다. 단편집을 다 읽고 난 지금도 첫 번째 단편인 [나는...]은 작가의 과거 회상이라는 생각일 뿐이다.
그는 길거리 서점의 진열대를 통해 들여다 본 책의 표지를 이야기하고 있다. 그가 들여다 본 책의 표지와 제목은 상상을 자극했고, 그 상상의 나래를 통해 문학적 감수성을 기르게 되었다는, 그 상상 속에서 스스로 문학을 짓고 허무는 시기를 보냈다는 일종의 자기고백같은 이야기이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가난하고 배고팠던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도 그 맥이 닿아있다는 느낌이 든다.
두 번째 이야기인 [파노라마]는 우리도 한 번쯤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이다. 책에 나오는 파노라마는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과는 다른 모습인데, 책에서는 커다란 가게 안에 여럿이 좌석을 차지하고 앉아서 동시에 다른 사진을 보는 형태이고, 내가 기억하는 것은 망원경처럼 생긴 곳에 두 눈을 가져다 대고 레버를 누를 때마다 한 장씩 새로운 사진이 나타나는 차이가 있다.
주인공은 새로운 파노라마가 들어올 때마다 그걸 보기 위해 동전을 준비해야 했고 그걸 통해 절대 갈 수 없는 외국, 그 곳에 대한 간접경험과 ‘정지된 사진’을 통해 만나는 상상 속에서 ‘움직이는 일상’을 이야기한다.
나 역시 어린 시절에 보았던 ‘레버를 눌러가며 사진을 보는’ 파노라마를 기억하고 있고, 그 사진을 통해 즐거움을 얻었던 기억이 있다.
[서커스]는 주인공의 마을에 새로 들어선 서커스 쇼를 구경하는 것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리고 서커스 단장 부부와 단장의 정부에 대한 -결국 비극으로 종결되는- 이야기, 그리고 성인이 되어 그 시절을 추억하는 주인공에 대한 묘사를 담고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성인이 된 주인공과 어린 시절의 주인공의 시점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아 약간 난해한 면도 없지는 않지만 어쨌든 어린 시절에 보았던 서커스의 추억, 그리고 그 멋진 쇼를 보여주었던 그들도 결국 사랑과 미움이 있는 똑같은 인간이라는 걸 확인하고 끝을 맺는다.
그 이후로 이어지는 아이들, 창, 탑, 책은 모두 주인공의 시점에서 어린 시절, 더구나 음울하고 궁핍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무엇이든 풍족하지 못한 시절, 그리고 그 시절을 살아가야 하는 주인공과 그의 가족, 친구들에 대한 이야기는 결국 한 톤 가라앉고 탁한, 뿌연 먼지를 날리는 창가의 모습 같다.
도서관에서 빌린 책이 제본이 풀어져서 한 학기 내내 고민만 하고 있는 심약한 주인공의 이야기를 그린 [책]의 경우는 가볍게 보자면 내성적이고 소심한 주인공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결국 이 이야기도 가난의 시대이기에 가능한 에피소드일 것이다.

대낮에도 제대로 빛이 들지 않으며 불조차 제대로 들어오지 않는 낡은 판잣집, 그리고 손바닥만한 크기의 작은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한 줄기 햇빛, 그마저 제대로 비추지 못하게 날리는 먼지, 그 뿌연 느낌...
이 소설의 주인공이 처한 환경에 대한 묘사를 보며 머릿속에 그린 모습이다. 그렇게 답답한 모습, 하지만 탁한 창문을 통해 들어오는 빛줄기는 마치 캄캄한 동굴 속에서 만나는 빛줄기처럼 희미하게 보이는 가능성, 그 희망이 아닐까 싶다.
음울하고 어려운 현실과 대비되는 미래에 대한 희망...
이보 안드리치의 우울해 보이는 단편들 속에서 느껴지는 작은 온기가 아닐까 싶다.

마지막 단편인 [아스카와 늑대]는 조금 생뚱맞지만 우화이다. 이솝 우화와 같은 그런 것 말이다.
아스카라는 어린 양, 발레를 배우고 호기심이 많은 아스카, 그가 막다른 곳에서 마주친 늙고 교활한 늑대, 그리고 삶과 죽음 사이를 넘나드는 아스카의 춤...
삶을 위한 춤, 혹은 죽음을 앞에 둔 춤, 아스카의 춤은 오늘날에도 전해진다.

너무도 짧은 단편 우화라 아쉽기는 하지만 결국 아스카가 맞닥트린 죽음, 그리고 삶에 대한 열정에 대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이 우화로 이보 안드리치가 평생 동안 간직하게 되는 그의 작품을 꿰는 맥을 살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기회가 된다면 그의 다른 작품들도 접해보고 싶다.
단지 여덟 편의 짧은 단편만으로 그의 작품세계를 평가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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