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를 타라 - 상
후지타니 오사무 지음, 이은주 옮김 / 북폴리오 / 2012년 3월
평점 :
품절


음악과 청춘....이 반짝이는 두 단어가 잘 어울리는 한쌍의 연인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가하면 두 단어의 조합이 어딘지모르게 슬픈 분위기를 풍겨 마냥 행복한 이야기는 아닐 것 같다는 예상을 하며 책을 펼쳤다. 

 

마음먹은대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나 역시 돌아보면 어린시절의 꿈이나 계획과는 거리가 먼 모습으로 살고 있다. 어쨰서 그렇게 되었냐고 묻는다면 딱히 할 말이 없다. 그냥 어쩌다보니 이렇게 살아졌다고 밖에는. 철없던 어린 시절의 꿈을 지나, 무엇이든 될 수 있다는 자신감에 가득찬 중학생 시절을 보내고 나서야 세상에는 안되는 일도 있다는 것을 배웠다.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내 삶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법을  깨닫기 시작했던 게...(포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해야하나..) 어찌됐건 지금의 내 삶은 어린시절의 내 계획에는 없었다는 것만은 분명하다.  아마 책 속의 당돌한 소년 쓰시마도 그랬을 것이다. 그의 어린시절 계획 속에서 자신은 훌륭한 음악가의 삶을 살고 있을 것임을 추호도 의심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꽤 오랜시간 쓰시마는 그 계획에 가까운 삶을 살고 있었다. 그 일이 있기 전까지는.. 그런데 인생이란 바다를 건너던 배가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나게 되고, 그 풍랑이 쓰시마의 꿈과 목표를 모두 망쳐버렸다. 잔잔한 바다를 아무런 고비없이 건널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하다못해 무사히 지나칠 수 있는 정도의 풍랑만 만났더라도 지금과는 다른 삶을 살고 있을텐데...그러나 쓰시마는 이 풍랑을 불러온 이가 바로 자기 자신임을 너무 잘 알고 있기에 원망하지 않는다.

  

쓰시마는 음악가 집안에서 태어나 음악에 둘러싸인 어린시절을 보내게 된다. 자의든 타의든 일찍부터 피아노를 시작했고 쓰시마 본인도 피아노 치기를 즐겨했다. 그런데 좋아하는 만큼 재능이 따라주지는 않아 피아니스트의 꿈은 일찌감치 접었고 할아버지의 권유로 새로이 첼로를 배우기 시작한다. 쓰시마의 생각에 따르면 바이올린처럼 가볍지도, 비올라처럼 수수하지도, 콘트라베이스처럼 둔하지도 않은 귀족적이고 스마트한 악기인 챌로를 익히며 새로운 즐거움을 느끼게 되고 다행히도 첼로에서는 두각을 나타내는 듯 보였다. 그러나 예고입시에 실패한 쓰시마는 차선책으로 할아버지가 학장으로 있는 삼류 음악학교에 진학한다. 어릴 적부터 자의식이 남달라 어려운 책만 골라 읽을 정도로 스스로를 우월한 존재로 여기며 살았던 쓰시마는 학교생활에 차츰 적응해나가고 나름 실력을 인정받기도 한다. 음악이란 공통분모 아래 모인 친구들과 우정을 쌓아가던 중 자연스레 첫사랑의 감정도 겪게되는 쓰시마. 첫눈에 반한 미나미와 교제 하며 발표회 준비와 레슨 등으로 활기차고 즐거운 생활을 보내기에 여념이 없다. 그런데 어째서 모든 불행은 순식간에 그리고 한꺼번에 찾아오는 건지..쓰시마가 감당하기엔 너무 큰 풍랑이었다.

결국 그 일로 음악을 포기하기에 이른 쓰시마. 그의 인생에 더이상 음악은 없었다.

 

 

上 P. 353 

그 말은 격려가 되었다. 동시에 가슴 한쪽에 얼마간의 불만도 느꼈다. 그 무렵 나는 이미 자신을 한 사람 몫을 하는 어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나 '자신'이다. 자신이라는 것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선생님이 아닌 누군가에게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자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어떤 것도 사람들에게 제시할 수 없었다. 조금도 미숙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모든 것이 확실히 미숙했다. 다다미 30조의 방에서 연습하는 내 첼로는 계속 거친 소리를 냈다. 

반짝 반짝 빛이 나는 청춘들의 이야기에서 어느 순간 상처받은 우울한 인간 내면으로 걸어들어가는 이 책을 읽으며 너무도 많은 감정의 기복을 경험했다. 단지 책을 읽고 있을 뿐인데 인물의 이야기에 너무도 몰입이 되어 내 지나온 삶을 돌아켜 보고 나와 쓰시마의 인생을 비교해보고 있었다. 나는 어땠나. 풍랑이 닥칠 때마다 겁부터 먹고 배에서 내리려 하지는 않았는지, 그리고나선 버티지 못한 자신을 책망하고 후회하지는 않았는지. 지나온 시간들이 떠올라 마음을 진정시키기가 어려웠다. 쓰시마가 음악을 포기했던 것처럼 나 역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커다란 꿈을 포기했었기에 이 소설이 더욱 가슴을 찔러왔다. 소중한 꿈을 실은 배에서 나는 내리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나는 새로운 배 위에 타고 있다. 이번만큼은 절대 꿈을 버리고 홀로 배에서 내리지 않을 것이다.  

 

下 P. 315    

음악은, 인간이 인간을 부르기 위해서 만들어졌던 것이다. 음악은 아름답고, 사람은 아름다운 것에 매료된다. 그곳에 아름다운 것이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그것을 아름답다고 느끼는 자신 이외의 누군가가 다가올 것이다. 최초의 음악을 만들어 낸 인간은, 여기에 없는 사람, 여기에 자신이 있다는 걸 모르는 누군가를 부르기 위해서 지금 이렇게 플루트를 불고 있는 것이다. 오직 혼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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