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그땐 내가 미안했어
소피 퐁타넬 지음, 이주영 옮김 / 랜덤하우스코리아 / 2011년 12월
평점 :
품절


나는 소위 말하는 늦둥이다. 느즈막히 아들을 보고자 힘들게 낳았건만 떡 하니 튀어나온게 바로 나였으니 그 실망감은 말해 무엇하랴.

그래서 늘 어린마음에도 엄마가 나와 오래오래 함께 해야할텐데 하는 불안한 마음이 있었던것 같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딸들이 그렇듯 나 역시 엄마를 향한 애틋한 마음은 내색하지 못한 채 늘 투닥투닥 퉁명스런 말투로 엄마를 대한다. 아무리 편한 친구라도 엄마에게 대하듯 하면 아마 내 곁에는 한 명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단 생각을 하면서도 집에서만 나오는 이 나쁜 말투는 쉽게 고쳐지질 않는다. 그렇지않아도 애교없고 무뚝뚝한 성격이라 표현하는 법을 잘 모르는 나는 지금껏 엄마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건넨 적이 없는 것 같다. 그걸 알면서도 자식이란 존재는 왜이리 못나고 못되먹었는지 모르겠다. 엄마는 엄마니까 괜찮아. 나는 딸이니까 이래도 되는거야 하는 얼토당토 않은 합리화를 하면서 엄마의 가슴에 대못을 꽝꽝 받았던 적도 있다. 자식이란 명함이 무슨 유세라도 되는 것 마냥 가끔은 모진 말을 내뱉고 며칠씩 말없이 방에 틀어박히기도 한다. 그야말로 불효녀가 따로 없다. 후회하고 그러지 말아야지 다짐해봐도 그때 뿐, 밖에서 겪은 스트레스를 푸는 대상이 왜 아무 상관도 없는 엄마가 되어야하는지 스스로 생각해도 모를 일이다. 평생을 다 해도 은혜를 갚지 못할 텐데...매일 감사인사는 못드릴 망정 괜한 짜증을 툭툭 내뱉는 나를 보면 내가 봐도 정나미가 떨어질때가 있다. 그야말로 더도말고 덜도말고 딱 너같은 딸만 낳아보라는 엄마의 푸념에 무슨 그런 무서운 얘길 하냐며 펄쩍 뛰는 내가 스스로 생각해도 어이없을 따름이다. 마음 한구석에서  정말 그러면 어떡하지? 하며 걱정에 사로잡히는 걸 보면 자기파악 하나는 끝내주는데 알면서도 못고치는 이 말투가 참 원망스럽다. 요즘 TV 에서 안과 밖이 다른 가족이란 공익광고를 본 적이 있다. '밖에서 보여주는 당신의 좋은 모습, 집에서도 보여주세요 라고 말하는 이 광고를 볼때마다 내 얘긴가 싶어 숨을 곳을 찾고 싶은 심정이라 엄마, 끄땐 미안했어라는 제목의 책을 받아들고서도 쉽게 책을 펼칠 수가 없었다. 이 책을 읽고나면 나는 또 얼마나 내 행동에 후회를 할까 그리고선 돌아서서 또 같은 잘못을 되풀이하지는 않을까 겁이 났던 것 같다.

 

이 책은 저자의 일기처럼 느껴졌다. 어느날 갑자기 너무도 약해져 자신의 도움없이는 생활조차 불가능해진 엄마를 돌보며 담담하게 써내려간 딸의 일기. 세상 모든 자식들이 범하는 실수를 저자 역시 겪었던 모양이다. 엄마란 존재는 늘 강하고 자식을 위해 해줄 것이 많다고 여기는 바보같은 생각을 벗어버려야 했던 그녀는 엄마를 돌보며 성숙해지고 있었다. 코스모폴리탄, 엘르 등 대표적인 잡지사에서 저널리스트로 일한 작가는 여성들이 선망하는 직업답게 바쁘고 화려한 삶을 살아왔다. 그런 소피의 눈에 들어온 엄마의 약해진 모습은 그녀를 혼란스럽게 하지만 이제 자신이 엄마를 돌보고 책임져야 할 순간이 왔음을 깨닫는다.

 

소피의 엄마는 딸에게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하지 않는다. 언제나 그랬듯 우아하고 준비된 모습만 보여주길 원하는 그녀는 스스로 엄마이기 전에 여성이라는 점을 잊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었다. 벽너머로 들리는 이웃집 커플의 다툼소리에 장난기 어린 미소를 지으며 "너도 내 나이가 되면 알 거야. 가슴 졸이게 하는 서스펜스는 그리 흔하지 않아."라고 말하며, 립스틱은 디올을 사다달라고 부탁하는 유쾌하고 멋진 여성인 것이다. 그런 엄마가 거동이 불편해져 침대에서 일어나는 일조차 쉽지 않게 되자 저자는 자신의 일상을 내려놓고 엄마를 돌보고자 결심한다. 혼자서는 목욕을 할 수 없지만 벗은 몸을 보이고 싶어하지 않는 엄마를 다독이며 저자는 말한다.

 

P.104

"늙는 것이 싫어....늙는 것이 정말 싫어..."

특별히 큰 병은 없었지만 엄마는 늙어가는 것을 정말로 속상해했다. 엄마가 얼마나 불안해하는지 알 수 있었다.

"엄마도 나랑 오빠가 어렸을 때 목용기켜줬잖아.안 그래?"

침묵이 흘렀따. 엄마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나는 계속 엄마를 씻겨주었다. 잠시 후 엄마의 대답이 들렸다.

"그렇게 말해주다니 고맙구나..."

 

누구보다 힘든 사람은 엄마 자신이었다. 언제나 자식을 돌보고 지켜주던 입장에서 어느덧 돌봄을 받아야하는 나이가 되었다는 자체가 빋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이 그렇듯 소피의 엄마 역시 아직은 자식을 위해 해줄 수 있는게 많다고 믿고 싶었다. 그런데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침대에서 떨어진 것만으로 뼈가 부러질 만큼 신체가 약해져있다는 사실이 그녀를 더욱 힘들게 헸다. 스스로의 몸이 변해가는 것을 받아들이기 힘들어하는 소피의 엄마는 휠체어를 타야한다는 사실에 난감해하고, 혼자서 목욕을 할 수 없어 당황한다. 그런 엄마를 대신해 소피는 엄마에게 다가올 죽음을 인정하고 대비해야했다. 차마 하기 힘든 말을 애써 가볍게 건네는 그녀를 보고 가슴에 쿵하고 돌덩이가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나중에 어디로 가고 싶어?"

 

정말이지 생각하고 싶지 않은 일인데... 그 말을 아무렇지 않게 꺼내는 엄마에게 버럭 화를 냈던 기억이 났다. 할아버지의 장례를 치르고 납골당에서 돌아오던 길, 나중에 할아버지 옆에 함께 하고 싶다는 엄마의 말에 너무도 화가 났었다. 믿고 싶지 않고 생각하기 조차 싫은 일을 태연하게 입에 올리는 엄마를 보니, 내가 떠올리기조차 무서운 일이 언젠가 닥칠 현실임을 인정해야 한다는 사실에 겁이 났다. 그런 나에 비해 소피는 현명하고 담담하고 엄마에게 다가올 날들을 준비하고 있었다. 결코 소피의 엄마에 대한 사랑이 나보다 부족해서 그런게 아니었다. 단지 소피는 자신이 받은 엄마의 사랑과 희생을 조금이나마 돌려주고 있었고, 나는 아직 이었다. 그 차이가 내게 참으로 크게 다가왔다. 사람은 누구나 죽는다. 그러나 우리 엄마에게 만큼은 누구나, 언젠가,나중이란 단서도 달고 싶지 않았다. 불사의 몸을 만들어주는 약이 정말 있다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구하고 싶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 그러나 소용없는 바람으로 시간을 허비하는 대신 지금 이순간 엄마를 행복하게 해드리는 작은 일부터 해야하지 않을까.. 너무 뻔하고 당연한 이야기지만 소피의 이야기를 읽고 난 내 머릿속에 가장 먼저 든 생각이었다. 책 속의 소피가 무던하게 엄마를 위로하는 모습을 보며 참 많은 생각을 했다. 소피는 사랑하는 엄마가 약해졌다는 사실을 거부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였고 최선을 다해 엄마에게 도움이 되려 노력했다. 딸의 손길을 필요로하는 아이가 되어버린 엄마를 위해 저자는 비로소 성장했고 어른이 되었다. 늘 당연한 듯 받기만을 바라는 딸의 모습을 버리고, 누군가의 책임을 바라는 대신 책임지기로 결심한 소피의 이야기. 엄마는 언제까지나 철의 여인일거라 믿고 싶어하는 나처럼 못난 딸들이 꼭 읽어봐야할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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