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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의 거짓말 - 워렌 버핏의 눈으로 한국 언론의 몰상식을 말하다
최경영 지음 / 시사IN북 / 2010년 8월
평점 :
품절
정연주 전 <한국방송>(KBS) 사장, 신경민 전 <문화방송>(MBC) 앵커의 공통점은 부당한 압력에 따라 자리를 떠났다는 것이다. 정 전 사장은 임기가 남았어도 쫓겨나다시피 했고, 신 전 앵커는 외압으로 마이크를 내려놓은 뒤 스스로 방송사를 떠나 정계로 입문해 국회에 입성했다.
여기에 최경영 KBS 기자도 이름을 올리게 됐다. KBS 새노조에 따르면 4월 20일 최 기자는 파업 이후 처음 사측으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KBS 새노조에서 공정방송추진위원회 간사로 일했던 최 기자는 그동안 사측을 비판해 온 대표적인 인물이다. 정 전 사장이 물러난 2008년 여름엔 ‘공영방송 사수를 위한 KBS 사원행동’에서 언론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해 9월 17일엔 탐사보도팀에서 스포츠중계팀으로 보복 발령이 나기도 했다. 낙하산 사장 덕분에 형편없이 망가진 KBS에서 수뇌부의 눈엣가시가 되기 쉬운 인물이었다.
최 기자는 2010년 8월 30일 <시사IN북>을 통해 <9시의 거짓말>이라는 책을 냈다. KBS뿐만 아니라 한국 언론에 대한 재조명을 한 책이었다. 당시는 나도 현직 기자 신분이어서 흥미롭게 읽었다.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인 대목은 ‘9시 뉴스는 쓰레기’라는 그의 주장이다. 과격해 보이지만 꽤 설득력이 있다.
방송 뉴스, 특히 9시 뉴스의 리포트는 사건의 단면만을 보여주기 쉽다. 그마저도 편집하기에 따라 얼마든지 왜곡이 이뤄질 수 있다. 특정 사안을 과하게 드러내거나 반대로 확 줄이기 쉽다.
예를 들어 야당 정치인이 먼저 15초간 정부를 비판한 뒤 바로 정부 관계자의 해명을 30초 붙이면 심각한 사안도 별 거 아닌 것처럼 만들 수 있다. 정보 유통이 빠른 인터넷 뉴스가 아닌 방송 뉴스에서만 정보를 얻는 사람들이 아직 많다는 점을 떠올리면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실제로 그동안 공중파 3사 뉴스는 이명박 정부가 벌인 문제에 대해 이 수법을 자주 써먹었다. 국민의 세금으로 정부와 여당의 충견 노릇을 톡톡히 했다. 지난해 전국언론노조와 한국기자협회, 한국PD연합회는 언론에서 가장 무시하고 왜곡한 뉴스로 이명박 대통령 친인척과 측근 비리 보도를 1위로 꼽았다.
최 기자는 <9시의 거짓말>에서 한국 언론의 행태를 투자의 귀재인 워런 버핏 버크셔 해서웨이 회장과 대조했다. 버핏은 주식 투자로 30살에 백만장자가 된 성공한 미국인이다. 투자로 수익을 내기 위해선 꼼꼼한 분석과 냉철한 판단이 반드시 뒤따라야 한다. 언론이 가져야 할 덕목과도 일치한다.
사안을 제대로 바라보고 잘 조사하고 쓰지 않으면 사실 보도가 되기 어렵다. 버핏은 투자를 성공으로 이끌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과 시장을 의심했다. 휘발성은 있지만 거품이 많은 인터넷 기업에는 투자를 꺼렸다. 늘 기업의 진짜 가치를 따지려 노력했다. 그게 버핏을 지금의 자리까지 오르게 했다.
하지만 최 기자가 바라본 한국 언론은 이와는 딴판이다. 사안에 대해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고 사실 보도에도 그다지 충실하지 않다. 한 마디로 진실에 대한 접근이 매우 부실하다. 취재 자체가 엉망이다.
게다가 다양한 시민보다 기득권에 선 사람이 내는 목소리가 크다. 이들은 마치 객관성을 담보하는 듯한 전문가라는 꼬리표를 달고 훨씬 무게감 있게 실린다. 그러면서 이를 보도한 언론은 대단히 객관적인 척한다. 언론과 전문가가 객관적인 척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게 최 기자의 지적이다.
언론이 정부나 검찰의 발표를 받아쓰기 하면서 대변인 노릇을 하는 건 어제오늘 일도 아니다. 심지어 잘 취재한 내용이 전파에 타지 않을 때도 있다. 특종이 정권을 불편하게 한다는 이유로 묻히는 황당한 일이 비일비재하게 벌어진다.
이 책이 나왔을 때보다 2012년 4월 현재의 한국 언론은 훨씬 더 심각한 위기에 놓여 있다. MBC 노조는 지난 1월 30일부터 파업에 들어가 역대 최장기 파업 기록을 매일 깨고 있다. MBC 간판 예능 프로그램인 <무한도전>은 12주째 결방 사태를 빚고 있다. KBS 새노조와 YTN 노조의 파업도 두 달이 다 돼간다. 언론 환경이 비정상의 극을 달리고 있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옹호하던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로마 교황청의 압박에 어쩔 수 없이 굴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재판정을 나오면서 소신껏 “그래도 지구는 돈다”고 말했다. 진실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한국 언론을 소신껏 비판했던 최 기자는 회사를 떠나게 됐다. 하지만 그의 주장이 옳다는 사실 역시 변하지 않는다. 그래도 9시 뉴스는 여전히 거짓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