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즈키가 노리코가 이상하다는 것을 확신하게 된 결정적인 사건은 그 해 가을 축제 때 발생했다.
축제는 중학교 때와는 달리 규모도 컸고 본격적으로 갖추어진 먹거리 부스, 댄스 퍼포먼스, 밴드의 라이브 공연 등으로 가즈키의 그룹도 한창 들떠 있었다.
마지막 날, 캠프파이어로 축제는 마무리되었지만 학생들은 여전히 흥분이 가시지 않은 모습이었다. 다들 축제의 여운이 남아 들뜬 상태로 서로 장난치면서 정리와 청소를 시작했다. 뒷정리 중에도 학교 안팎에서 학생들이 재잘거리는 소리와 활기가 넘쳐흘렀다.
가즈키와 노리코는 일반 쓰레기를 정리하는 일을 맡았었다. 당시는 아직 재활용이라는 개념이 없어서 ‘타는 것’과 ‘타지 않는 것’ 두 종류로만 나누었다. 그리고 다이옥신의 심각성이 문제되기 전에는 학교에 쓰레기 소각장이 있었다. 가즈키와 노리코는 풀장 옆에 있는 소각장으로 골판지 상자에 가득 담은 쓰레기를 손수레에 실어서 날랐다.
학교 건물 밖의 구석에는 푸르스름하게 빛나는 외등 한 개만 서 있어서 음침한 분위기였다.
“빨리 끝내고 가자.”
가즈키는 기분 나쁜 그곳에서 벗어나고 싶어서 재촉했다.
무심코 어두운 주위를 둘러보는데, 어둠 속에 반딧불이 같은 것이 흔들리는 게 보였다. 그 정체가 궁금해진 가즈키는 눈에 힘을 주며 자세히 쳐다보았다. 어둠 속에서 몇 명인가 학생복을 입은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은 담뱃불이었다.
노리코도 그것을 알아차렸는지 소각로의 문을 열어 둔 상태로 손을 멈춘 채 바라보고 있었다.
2학년, 아니면 3학년일까.
불량한 분위기도 아닌 것 같고 담배를 피우는 것도 익숙하지 않은지 가끔씩 콜록거리며 기침을 했다. 축제 분위기에 젖어 해방감도 느끼고 싶고 허세도 부려 보고 싶어서 잠깐 일탈적인 행동을 해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안됐지만 잘못 걸렸어, 라고 가즈키는 마음속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노리코가 봤으니까 즉시 선생님을 부르러 가겠지, 하고 생각하는데 등 뒤에서 호통 소리가 들렸다. “거기서 뭐 하는 거야! 이 녀석들!”
아차! 걸렸다, 하며 남학생들이 황급히 담배를 밟아 끄고 있을 때 나타난 것은 체육 담당인 야자와 선생님이었다.
다음 해에 정년퇴직을 앞둔 그는 머리도 눈썹도 새하얀 할아버지 선생님이었지만 유도의 고수로 매년마다 전국 대회에 출전하고 있었다. 엄하지만 따뜻해서 학교에 안 오는 학생이 있으면 끈질기게 집까지 찾아가 상담해 주는 등 부모님들에게 신뢰가 두터운 사람이었다.
야자와 선생님은 달아나는 남학생의 목덜미를 낚아채서 그 자리에 무릎을 꿇렸다. 우락부락한 야자와 선생님으로부터 언제 주먹이 날아올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들은 쩔쩔매고 있었다.
그런데 예상외로 야자와 선생님은 놀라울 정도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담배, 한번 피워 보고 싶었지? 어떤 느낌인지 궁금했을 테고. 선생님도 너희들 나이 때 그랬단다.”
학생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소각로 앞에 있던 가즈키도 무심코 몸을 쑥 내밀고 귀를 기울였다.
“스무 살이 돼서 피우는 것이나 열일고여덟 살에 피우는 것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하겠지. 하지만 너희들의 몸은 아직 성장하는 중이라 어릴 때부터 담배를 피우면 여러 가지 병에 걸릴 가능성이 높단다.”
선생님은 온화한 말투로 한 사람 한 사람의 눈을 들여다보며 말했다.
“병에 걸린다는 말이 아직 젊은 너희들에는 별로 실감이 안 나겠구나. 하지만 분명히 여드름은 늘어날 거야. 키도 안 크고, 입에서 담배 냄새도 지독하게 날 거야. 그러면 여자애들이 싫어할 걸. 그렇게 되면 어떨 것 같아?”
야자와 선생님은 난처해하는 남학생들의 표정을 보고 웃음을 터뜨렸다.
“인생은 길잖아. 몇 년만 참아 봐. 할 수 있겠지?”
야자와 선생님이 양쪽 손바닥을 위로 향해 내밀었다. 그 위에 한 학생이 머뭇거리다가 담뱃갑을 올려놓았다. 그리고 나머지 학생들도 차례차례 담뱃갑을 올렸다.
“좋아좋아. 다들 착한 애들이구나.”
야자와 선생님은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넘겨받은 담배를 체육복 주머니에 넣었다.
“스무 살이 될 때까지 맡아 둘 테니 어른이 되면 내가 있은 곳으로 찾으러 와라. 그때는 술도 같이 한잔하자. 어때?”
그렇게 말하면서 야자와 선생님이 그 큰 손으로 머리를 쓰다듬자 학생들이 훌쩍거렸다.
“죄송합니다.”
남학생들은 입을 모아 그렇게 말한 후 머리를 숙였다. 무조건 혼내기만 하는 것보다는 훨씬 마음에 강하게 와 닿았을 것이다. 가즈키는 그런 야자와 선생님의 행동을 보고 감탄했다.
가즈키와 노리코는 소각로에 나머지 쓰레기를 던져 넣고 교정으로 돌아갔다. 노리코가 이르기 전에 야자와 선생님이 와서 다행이라고 가즈키는 생각했다.
그러나 사건은 생각처럼 순조롭게 마무리되지 않았다. 잠시 후에 경찰이 자전거를 타고 학교에 온 것이다.
“미성년자가 흡연을 했다는 신고가 들어와서 왔는데요.”
정리도 어느 정도 끝나서 이제 막 해산하려는 때였다. 아무것도 모르는 선생님들이나 학생들이 어리둥절해 있는데 노리코가 당당한 태도로 앞으로 나왔다. 그리고 야자와 선생님과 담배를 피우던 학생들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경찰에게 이런저런 설명을 하는 것이었다. 그 모습을 본 가즈키는 아연실색했다.
장난도 아니고 왜 저렇게까지 하는 거지?
“아, 그랬구나.”
젊은 경찰은 야자와 선생님이나 교장 선생님하고도 얘기를 나눈 후 남학생들에게도 다시 확인하면서 주의를 주었다.
“선생님 말씀 잘 들었겠지. 또다시 담배 피우다 걸리는 일은 없는 거다?”
남학생들이 온순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자 경찰관은 야자와 선생님과 교장 선생님을 향해 돌아섰다.
“담배는 선생님이 압수하셨고 본인들도 반성하는 것 같네요. 학교 일은 학교에서 처리하시는 것이 어떠세요? 저희가 하면 경찰에 기록이 남아 버려서 학생들의 장래에 좋지 않을 테니.”
마음씨 좋은 경찰은 재치 있는 말투로 “이제 절대 안 하기로 한 거다.” 하고 타르기만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가즈키는 안심했다. 그리고 선생님께 말씀도 안 드리고 갑자기 경찰에 신고해 버린 노리코가 어쩐지 무섭다는 생각을 하면서 집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이 사건은 그렇게 끝나지 않았다. 오히려 다음 날 더 큰 문제가 되어 있었다.
노리코가 현의 지역 교육 위원회에도 다음과 같이 알리고 언론사에도 팩스를 보낸 것이다.
○○고등학교에서 교사인 야자와 모토노리가 학생들의 흡연 사실을 숨겨 주었고, 경관인 마츠시타 코지는 그들의 불량 행위를 방치했습니다. 즉, 죄를 저지른 학생을 학교와 경찰이 합심해서 은폐한 것입니다. 용서할 수 없는 비열한 행위이므로 저는 이에 대해 단호하게 항의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2반 다가키 노리코
신문에도 크게 다루어져서 야자와 선생님은 철저하게 비난받았다. 정직 석 달 처분을 받았지만 거기에서 끝나지 않고 ‘이런 솜방망이 처분이 교사를 타락시키고 교육 환경에 악영향을 끼친다.’는 여론 때문에 결국에 야자와 선생님은 정년을 바로 앞에 두고 사표를 내고 퇴직금도 제대로 못 받게 되었다. 게다가 교사로서 재취업하는 길도 끊겨 버렸다.
여론의 압력 때문에 교장과 교감도 현직에서 물러나게 되었다. 문제의 남학생들은 정학 처분을 받았고, 그들이 야구부와 농구부에 소속됐었다는 이유로 이들 동아리는 고시엔이나 인터 하이의 출전권을 잃었다. 해당 경찰도 징계를 받았다.
“노리코.”
일이 이 정도로 커진 것을 알게 된 가즈키가 따져 물었다.
“왜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든 거야? 야자와 선생님이 그 정도로 잘못을 한 건 아니잖아. 퇴직금으로 학교에 안 나오려는 아이들을 위한 보습 학교를 만들려고 하셨는데, 그것도 못 하게 되셨단 말이야. 잘못한 일이라고 생각되지 않니?”
“나는 옳은 일을 한 것뿐이야.”
노리코는 또 그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너무 융통성이 없다고 할까…….”
“융통성?”
노리코는 진심으로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말했다. “그것이 정의보다 중요한 거야?”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할지 몰라서 가즈키는 말문이 막혔다.
“어쨌든 나는 옳은 일에만 관심이 있어. 잘못된 것은 그냥 넘길 수 없단 말이야.”
그렇게 잘라 말한 노리코는 원래의 무표정으로 돌아와 있었다. 말에는 억양이 없었고 목소리도 인공 음성 같았다.
마치 사이보그 같았다.
사이보그는 인간다운 미묘한 감정이나 마음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오로지 올바른 것에 대해 프로그램 된 일만 수행한다. 그 과정에서 누군가가 상처를 받든 파멸되든 사이보그는 관심이 없다.
“노리코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언젠가 가즈키는 큰마음 먹고 유미코에게 물어본 적이 있었다.
“어떻게 생각하냐니?”
“축제 때 흡연 적발 건이라든가…….”
“아아, 역시 대단한 아이구나 하고 생각했어.” 유미코는 감탄한 듯 말했다. “그러고 나서 모두 굉장히 성실하고 정직해졌잖아. 난 정말 깜짝 놀랐어. 마치 정의의 히어로 같지 않니?”
역시 항상 옳은 건 노리코란 말인가. 노리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내가 잘못된 건가.
그 이후로도 가즈키는 노리코에 대한 불만을 속으로 삭여 둘 수밖에 없었다. 괜히 나섰다가 그룹에서 고립되는 것보다는 나았으며,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만 참으면 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생각하며 3년을 지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가즈키는 큐슈의 국립 대학에 진학했다. 유미코와 노리코는 각각 그 지역 단기 대학과 4년제 대학에 들어갔으며, 리호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레이카는 상경해서 본격적인 연예계 활동을 시작했다.
그렇게 각자의 길을 떠나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면서 자연스럽게 그룹의 교류는 끊어졌다. 새로운 친구, 동아리 활동 등에 열중하다 보니 ‘규범’ 그 자체였던 이상한 친구에 대해서 가즈키는 한동안 잊고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