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미코가 목소리를 높이며 물었다. “낫칭이 노리코한테 뭔가 안 좋은 짓을 한 거 아니야?”

 

, 그럴 수도 있겠다, 하고 가즈키는 생각했다. 일종의 복수였다고 생각하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노리코는 여전히 변화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걔한테 당한 거 아무것도 없어. 아까부터 왜 이상한 질문만 하는 거야?”

 

그게 그렇잖아.”

 

레이카가 결심한 듯 말했다. “같은 반 친구를 배신하는 짓을 한 거잖아.”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도대체 모르겠네. 어떻게 수업을 본래 있어야 할 상태로 되돌리려고 한 것보다 복수를 위해 한 짓이라고 해야 이해가 가능하다는 거지? 그건 좀 삐뚤어진 생각 아니야?”

 

노리코는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가즈키, 유미코, 리호, 레이카의 얼굴을 둘러봤다. 밥풀이 입가에 붙어 있는 그 천연덕스러운 표정을 본 네 사람은 노리코에게 전혀 악의가 없었음을 겨우 알 수 있었다.

 

생각해 보니 노리코의 말은 옳았다. 수업 중에 쪽지를 쓰거나 돌리는 등 딴짓을 하는 것은 잘못된 행동이다. 그것을 제대로 지적한 노리코를 탓하는 것이 오히려 이상한 것이다.

 

그래, 맞아. 노리코가 말한 대로야.”

 

가즈키가 그렇게 말하자 리호도 같은 생각이라는 듯 힘차게 고개를 끄덕였다.

 

잘 생각해 보니 모두의 앞에서 잘못을 지적할 수 있다는 건 대단한 행동 같아.”

 

유미코의 말에 레이카도 덧붙였다. “역시 노리코는 용기가 있어.”

 

가즈키는 정론에 눈을 뜨게 된 기분이었다.

 

노리코는 학교는 우정을 키우는 장소이고 수업보다는 친구들과의 교류가 소중하다, 고 여겨 왔던 안일한 내 생각을 바로잡을 수 있게 해 주었어. 역시 노리코는 어른 같고 훌륭한 아이야.

 

가즈키는 노리코를 옹호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틀림없이 낫칭과 토모코, 그리고 그 애들의 그룹이 노리코를 강하게 비난할 거야. 노리코는 나를 치한으로부터 구해 줬어. 이번에는 내가 노키코를 지켜야 할 차례야. 노리코가 고지식하고 정의감이 너무 강하다 보니 약간 도가 지나쳐서 조금 어긋나 버린 것일 뿐이야.

 

그때 가즈키는 정말 그 정도로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쪽지 사건이 조금씩 잊혀 가면서 6월이 되었다. 교복이 원피스형의 하복으로 바뀌자마자 교칙대로 제대로 입고 있는지 확인하는 불시 복장 검사가 있었다.

 

 

 

귀가 전의 롱홈룸 시간에 체육관에 집합해서 남학생은 넥타이나 벨트를 제대로 착용하고 있는지와 바지의 폭이 적절한지 등을 검사했고, 여학생은 매트 위에 무릎을 꿇고 치맛자락이 매트에 닿는지, 그러니까 충분히 무릎을 덮는 길이인지 등을 검사했다.

 

가즈키는 원래 보이시한 스타일에 자신의 다리를 남들에게 보여 주고 싶기는커녕 숨기고 싶을 정도였다. 그래서 다른 여학생들처럼 치마를 일부러 짧게 하는 것에는 관심이 없었으며, 입학 전에 잰 치수로 맞춘 하복을 전혀 손대지 않은 채 입고 있었다.

 

주위의 여자애들이 불시 검사에 걸렸다는 당황스러운 표정으로 열심히 스커트 끝을 끌어 내리고 있는 것을 보며 가즈키는 아무런 생각 없이 무릎을 꿇었다.

 

선도 위원인 가미카와 마이코가 가즈키가 있는 줄로 다가왔다. 치맛자락이 확실하게 짧은 여학생에게는 주의를 주며 명부에 체크를 했다.

 

이윽고 가즈키의 차례가 되었다.

 

마이코가 다가서면서 가즈키의 스커트 끝을 내려다보았다. 그리고 곤란한 표정으로 살짝 눈살을 찌푸렸다. 그제야 가즈키는 자신의 스커트를 내려다보았다.

 

아주 약간이었지만 스커트 끝이 매트에서 떠 있었다.

 

이럴 리가 없는데.”

 

가즈키는 당황하면서 스커트가 이렇게 짧아진 이유를 생각해 보았다. 그녀는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갑자기 가슴이 커졌다. 그전까지는 A컵이라 고민이었는데, 초등학교 때부터 9년 동안 계속했던 육상을 그만둔 것과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지만, 갑자기 D컵까지 성장했다. 그렇게 가슴이 커지는 바람에 원피스의 스커트 끝부분이 올라가 버린 것이다.

 

이를 어째. 2cm 이상 짧으면 반성문도 써야 하고 부모님에게 연락도 가겠지. 일부러 스커트를 짧게 하려고 한 것도 아닌데…….

 

가즈키가 어떻게 변명을 해야 좋을지 몰라서 우물쭈물하고 있는데 마이코가 말했다.

, 문제없어. 확인했으니 일어나도 돼, 이마무라 가즈키.”

 

마이코는 가즈키와 평소에 같은 그룹으로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녀가 일부러 치마를 짧게 한 것이 아님은 눈치채고 있었다. 그리고 자세히 들여다보지 않으면 모를 정도라서 그냥 봐주기로 한 것이었다.

 

가즈키가 안도의 숨을 쉬며 일어서려 할 때였다.

 

가즈키의 스커트는 짧은 것 같은데.”

 

등 뒤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가즈키가 돌아보니 뒷줄에 있던 노리코였다.

 

, 글쎄……. 내가 보기에는 괜찮은데.”

 

마이코는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고 했다.

 

아니, 짧아.” 노리코가 자신의 줄에서 나와 가즈키의 옆에 섰다.

 

가즈키, 다시 무릎 꿇어 봐 줄래?”

 

가즈키는 갑자기 노리코가 태클을 걸며 이래라저래라 하는 것에 기분이 상했다. 하지만 일단 시키는 대로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이번엔 상반신을 살짝 앞으로 구부려서 겨우 끝자락이 바닥에 닿도록 했다.

 

이것 봐, 문제없잖아.”

 

마이코가 안심했다는 듯 말했다.

 

가즈키, 등을 펴고 자세를 제대로 해야지.”

 

노리코가 그녀의 등을 쭉 펴게 했다. 가즈키는 굴욕감을 느꼈다. 스커트 끝이 약간 올라갔다. 노리코는 매트 위에 납죽 엎드려서 마이코의 자로 정확하게 매트에서 스커트까지의 높이를 쟀다.

 

그래, 2cm.”

 

노리코가 고개를 끄덕였다.

 

노리코, 자 좀 줘 볼래?”

 

노리코로부터 자를 돌려받은 마이코가 다시 재 봤다.

 

에이, 2cm는 안 되네. 그러니까 반성문은 안 써도 돼.”

 

마이코, 자를 매트에 딱 붙이지 않으면 정확히 잴 수 없어. , 이렇게 하면 2cm 맞잖아.”

 

매트 위에 자를 꽂고 노리코가 만족스러운 듯 미소를 지었다. 그때와 같은 미소였다. 정의를 위해 카메라를 가지고 다닌다고 말하면서 지었던 그 미소. 그것은 자랑스러워하는 듯한 느낌은 아니었다. 그것은 무엇엔가 취해 있는 듯한, 황홀한 표정이었다.

 

악감정을 가지고 일부러 몰아세우려는 태도로는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가즈키는 충격을 받았다. 마이코는 눈감아 주려 했다. 그런데 어째서 선도 위원도 아닌 노리코가 끼어들어서 그녀에게 반성문을 쓰게 하며, 그러는 것이 뭐가 재미있다는 말인가. 부모님들에게까지 알려지게 되는데…….

 

도대체 왜 그래?”

 

가즈키는 노리코에게 따졌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내가 일부러 스커트를 짧게 한 것도 아닌데. 우리는 친구잖아.”

 

그 말을 들은 노리코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든가 친구 사이라든가 그런 건 교칙하고 상관없잖아.”

 

그래도…….”

 

가즈키는 그다음 말이 나오지 않았다. 그랬다. 교칙을 정확하게 지키기 위해서라는 노리코의 말은 틀린 말이 아니었다.

 

……, 알았어.”

 

더 이상 따질 수 없었다. 여기서 더 옥신각신하면 눈감아 주려고 했던 마이코에게 폐가 될 것 같았다. 가즈키는 그대로 교칙 위반자의 줄로 이동한 다음 선도 교사에게 주의를 듣고 반성문용 원고지를 세 장 받았다.

 

집에 돌아와 혼자서 교복의 끝자락을 풀어서 더 길게 해 보려 했지만 옷감이 2이상 늘릴 정도의 넓이는 안 되었다. 가즈키의 키는 중학교 1학년 때 168cm가 된 후 3년 동안 더 크지 않았다. 그래서 고등학교 교복을 맞출 때도 딱 맞는 사이즈로 했다. 물론 여전히 키는 그대로였다. 가슴둘레가 늘어나게 되는 건 전혀 고려하지 않았던 것이다.

 

단을 접어서 실밥이 보이지 않게 바느질해 놓은 끝부분까지 풀어서 늘려 봤지만 역시 약간 부족했다. 그 차이는 겨우 5mm 정도였지만, 노리코는 분명히 또 자로 꼼꼼하게 확인할 것이 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가즈키는 교복을 새로 살 수밖에 없었다. 새 하복을 입은 지 겨우 일주일밖에 안 되었는데, 다시 3만 엔의 지출을 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부모님께 너무 죄송했다.

 

노리코만 그냥 넘어가 줬다면…….

 

가즈키는 너무 분해서 유미코, 리호, 레이카에게 불평을 늘어놓고 싶었다.

 

여자애들 그룹에서 누군가의 험담을 하는 것은 위험한 짓이다. 험담은 그 자체가 배신행위이며, 웬만한 일이 아니라면 결국 험담한 사람이 고립되어 버리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만은 다들 제 편이 되어 줄 것이라는 자신이 있었다.

 

노리코야말로 배신자니까 이제 노리코와 함께 도시락도 먹지 않을 거야. 교외 학습 팀에서도 제외하겠어.

 

가즈키는 그렇게 결심하고 다음 날 학교에 갔다.

 

그런데 학교에서는 의외의 상황이 펼쳐졌다. 다른 반의 선도 위원이 친한 친구의 위반을 눈감아 주었다가 큰 문제가 된 것이다. 3학년의 열여덟 개 반 가운데 문제가 된 건 열두 개 반이었다. 그러니까 절반 이상이 부정을 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엄하게 주의를 받고 연대 책임으로 학급 전원이 반성문을 쓰게 되었다. 그러나 가즈키의 반은 해당되지 않았다.

 

노리코 덕분이야.”

 

교장 선생님께 칭찬을 받은 마이코가 싱글벙글하며 말했다. 아침 홈룸에서 담임 선생님도 기쁜 목소리로 자랑스러워하셨다. “우정이란 친구의 부정을 감춰 주는 것이 아니야. 이 반은 그것을 잘 알고 있어.”

 

부정이라니. 내가 무슨 부정을 했단 말이지?

 

가즈키는 입술을 깨물었다.

 

노리코는 역시 대단해.”

 

홈룸이 끝나고 1교시 수업을 위해 과학실로 이동하면서 유미코가 감탄한 듯 말했다.

 

으응, 그래. 정말 대단한 거 같아.”

 

가즈키는 동의하는 수밖에 없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는 절대로 노리코에 대한 험담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노리코는 모범적인 아이야.” 레이카도 한마디 덧붙였다.

 

그러게, 노리코가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다면 우리도 모두 반성문을 썼겠지. 노리코처럼 싫은 소리도 할 수 있는 아이는 반을 위해서 필요한 존재야.”

 

리호 역시 맞장구를 쳤다.

 

필요한 존재라…….

 

정말 그런 걸까? 노리코는 무조건 옳고 잘못한 건 불만을 품은 사람이란 말인가?

 

가즈키는 그나마 노리코의 험담을 하기 전에 이렇게 되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털어놨다면 그룹에서 제명되는 건 가즈키 쪽이 되었을 것이다.

 

이렇게 된 거 오히려 잘된 일이야.

 

낫칭이나 토모코, 그리고 나. 노리코는 친한 사이든 아니든 관계없이 공평하게 바른 소리를 했어. 그렇게 우정에 휩쓸리지 않고 분별력 있는 행동을 했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야. 역시 노리코는 우리들의 자랑거리였어.

 

그렇게 마음을 고쳐먹은 가즈키는 새로 맞춘 교복의 대금 3만 엔을 내러 교무실로 갔다.

 

교직원실에 들어가니 벽에 붙어 있는 낡은 포스터가 눈에 들어왔다. 단발머리에 교복 차림을 한 여학생의 흑백 전신상이었다. 그림 옆에 앞머리의 길이와 머리카락의 색, 스커트의 길이, 양말의 길이와 색 등이 세세하게 적혀 있었다.

 

그것은 모범 학생의 그림이었다. 학생 수첩에도 그 그림의 축소판이 실려 있었다.

 

가즈키는 포스터를 응시하며 생각했다.

 

, 그렇구나. 노리코를 어디서 봤는지 이제 겨우 알겠네. 노리코는 이 모범 학생의 그림과 똑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어.

 

 

~ 5회에 계속 ~


*출간 전 연재는 총 10회까지 진행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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