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 안에 노리코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년 남자는 황급히 몸을 비틀어 보았지만, 도망갈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움츠리며 고개를 숙였다. 여성 승객이 많았던 차 안에서 박수와 갈채가 터졌고, 노리코는 치한이 성추행하는 현장을 찍은 카메라와 함께 남자를 경찰에 넘겼다.
이 이야기는 금방 학교 안에 퍼졌다. 그녀는 교장으로부터 표창도 받고 경찰로부터 감사장도 받았다. 물론 누구보다도 감사했던 사람은 가즈키였다.
“정말 고마워.”
가즈키는 어머니와 함께 노리코의 집에 방문해 과자가 든 선물 상자를 전하며 감사 인사를 했다.
“이런 건 받을 수 없습니다. 당연한 일을 했을 뿐인데요.”
노리코는 의연한 태도로 절대 선물 상자를 받으려 하지 않았다. 곤란한 표정으로 서로를 마주 보던 가즈키와 그녀의 어머니에게 성실한 공무원 인상을 가지고 있는 노리코의 아버지가 말했다.
“아내가, 그러니까 노리코의 엄마가 잘못된 것을 무척 싫어했어요. 언제나 옳은 일을 해야 한다며 엄격하게 훈육을 해 왔습니다. 예전에는 노리코가 반발을 하기도 했죠. 그런데 2년 전에 통금 시간이 넘었는데도 돌아오지 않는 노리코를 찾으러 나간 아내가 차에 치여서 그만…….”
그리고 그녀의 아버지는 불단 쪽으로 눈길을 돌렸다. 영정 사진 속엔 노리코를 똑 빼닮은 단발머리의 중년 여성이 있었다.
“음주 운전에 의한 사고였지만, 통금 시간을 어긴 자신 때문이라고 후회도 했었겠죠. 그 이후 노리코 역시 잘못된 것을 철저하게 증오하게 되었습니다.”
“인간은 항상 바르지 살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치한이라는 비열한 범죄 행위를 적발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그에 대한 사례를 받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재차 권해 봤지만 노리코가 역시 거절했기 때문에 억지로 선물을 떠넘길 수도 없고 해서 가즈키와 그녀의 어머니는 다시 한 번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선물을 도로 집어넣었다.
“어쨌든 노리코는 정말 강직한 학생이네. 카메라도 가지고 있었다니 역시 대단해.”
가즈키 어머니가 진심을 담아 칭찬했다.
당시에는 디지털 카메라가 아직 보급되어 있지 않았다. 물론 핸드폰에 카메라 기능도 없던 시절이니 그런 사진을 찍는다는 것 역시 특별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 항상 카메라를 몇 개 정도 가지고 다닙니다. 주로 일회용 카메라예요. 치한뿐 아니라 도둑질을 하거나 학대하는 경우에 증거가 중요하니까요. 정의를 위해서 저는 절대 그들이 빠져나가게 두지 않습니다.”
언제나 무표정하던 노리코가 그때만은 미소를 보였다. 갑자기 생생한 표정과 함께 뺨이 상기되면서 눈이 반짝였다. 가즈키는 약간 놀라긴 했지만 그만큼 노리코가 정의에 불타고 있다는 생각에 감탄했다.
“정말 훌륭한 아이야.”
집에 돌아오는 길에 가즈키의 어머니는 입에 침이 마르도록 노리코를 칭찬했다.
“그렇죠? 정말 존경스러운 친구예요.”
노리코는 정말 대단하고 우리의 훌륭한 자랑거리야.
가즈키는 그녀와 친구라는 사실이 너무나도 기쁜 나머지, 덩치에 걸맞지 않게 깡충깡충 뛰며 걸었다.
가즈키가 그런 노리코가 어딘가 이상하다고 느끼게 된 것은 그로부터 얼마 후였다.
SNS나 핸드폰도 없던 그 당시, 대부분의 여자애들은 수업 시간에 쪽지 돌리기를 했다. 선생님 말씀을 듣는 척하면서 연애 상담이나 가족에 대한 푸념, 노래방에 같이 갈 사람 모집 등 쉬는 시간에 해도 되는 얘기들을 쪽지에 적어서 몰래 돌리며 스릴을 느끼는 재미에 열중하게 되었다. 또한, 당시에는 쪽지나 일기를 교환하는 것이 우정을 쌓는 방법 중 하나여서 여학생들에게는 나름 소중한 것이었다.
고등학생이 된 지 두 달이 조금 넘어 첫 중간고사를 치르면서 친구 관계가 한층 긴밀해지게 되었다. 그날도 수업 중에 몇 명이 노트 필기를 하는 척하면서 쓴 쪽지를 귀여운 모양으로 접어서 주거니 받거니 하고 있었다. 가즈키도 뒤에서 쪽지가 넘어오면 전달해 주기도 했고 유미코로부터 온 쪽지에 답장을 써서 넘기기도 했다.
때마침 수학 시간이라 담당 여자 선생님이 지루한 설명을 하면서 칠판에 공식을 쓰고 있었다.
“선생님!”
수업이 중간 정도 진행되고 있었는데 노리코가 갑자기 손을 번쩍 들고 일어섰다. 우등생인 노리코가 모를 리 없는 수학 공식을 보고 질문을 하다니 이상하네, 라고 생각하던 가즈키는 유미코에게서 온 쪽지의 답장을 쓰고 있었다. 다른 학생들도 노리코의 행동에는 그다지 신경 쓰지 않은 채 몰래 쪽지 쓰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수업 중인데 쪽지가 돌아다닙니다.”
어?
가즈키는 고개를 들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노리코는 손에 흰색 종이쪽지를 들고 있었다. 모두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시선을 노리코에게 집중했다.
“뭐, 쪽지?”
수학 선생님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물었다. 그러더니 노리코의 자리로 다가가 그녀가 들고 있던 리포트 용지를 네 번 접은 쪽지를 건네받았다.
“누구지, 수업 시간에 이런 짓 한 사람이?”
쪽지를 높이 들고 교실 안의 학생들을 둘러보았지만, 모두들 시치미 떼고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런 가운데 가즈키와 유미코, 리호, 레이카는 멍한 표정으로 노리코를 바라보았다.
잠깐, 잠깐만……, 왜 그러는 거야, 노리코?
“선생님.”
노리코가 냉정한 목소리로 말했다. “물어봤자 자백할 사람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건 그렇겠지.”
선생님은 쓴웃음을 지으며 반 학생들에게 말했다. “어쨌든 이건 압수야. 누군지 짐작이 가는 사람은 나중에…….”
거기까지 말하고 있는데, 노리코가 선생님의 손에서 쪽지를 잽싸게 낚아채 갔다.
“낫칭, 무라모토는 아직 솔로가 맞는 거 같아. 걔는 여성스러운 아이를 좋아한대. 낫칭, 머리를 길러 보는 게 어때? 오늘, 그 애 동아리 활동이 끝나는 거 같이 기다려 보자! 토모코가 보냄.”
노리코가 멋대로 쪽지를 펼쳐 낭독해 버리자 교실 전체가 얼어붙었다.
“노리코, 너무해!”
낫칭이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미야하라 나치가 울음을 터뜨리며 교실 밖으로 뛰쳐나갔다.
“낫칭, 기다려!”
쪽지를 썼던 시라키 토모코가 황급히 그녀의 뒤를 쫓아 나갔다. 리놀륨 바닥의 복도 위를 뛰어가는 실내화 소리가 빠른 속도로 멀어져 갔다. 쪽지의 내용에 나온 남학생인 무라모토 히로시는 자기 자리에서 얼굴이 벌겋게 된 채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노리코는 쪽지를 다시 접으면서 환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수업 시간에 쪽지를 주고받은 것 외에 수업 거부라는 죄도 추가되었습니다. 적절한 처분을 부탁드립니다. 이제 수업을 계속 진행해 주세요.”
노리코가 자리에 앉자 분위기에 압도되어 있던 수학 선생님도 평정을 되찾고 헛기침을 했다. 순찰 중이던 다른 선생님과 마주쳤는지, 교실 밖에서 미야하라의 우는 소리와 함께 “양호실에 가는 길입니다.”라고 하는 토모코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 그럼 수업을 계속하자.”
수학 선생님은 다시 교단으로 돌아가 칠판에 공식을 이어서 썼다. 아무렇지도 않은 듯 태연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노리코의 등 뒤에서 술렁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하지만 노리코가 뒤돌아보자 모두 동시에 입을 다물었다.
잠시 후, 수업이 끝나고 점심시간에 같은 반 애들이 노리코에게 보내는 차가운 시선이 불편해서 가즈키 그룹은 옥상으로 이동했다. 같이 도시락을 먹고 있었지만 유미코, 리호, 레이카까지도 당혹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대로 두면 어색한 분위기 때문에 이들 그룹은 붕괴될 것 같았다. 일단 노리코 본인의 입으로 직접 듣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에, 가즈키는 과감하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도대체 왜 그랬던 거야?”
“왜라니? 쪽지가 나한테 와서 적절하게 대처한 것뿐인데.”
노리코는 밥을 먹으면서 태연스럽게 대답했다.
“그렇다 해도 꼭 선생님한테 일러바치지 않아도 됐잖아.”
“일러바치다니, 선생님에게 보고하는 것은 당연 일 아니야? 내가 뭘 잘못한 거지?”
“그게 그러니까…….”
가즈키는 당혹스러웠다.
“쪽지를 돌리는 건, 누구나 하는 거잖아.”
“그래? 가즈키도 해? 설마, 유미코하고 너희들도?”
노리코가 눈살을 찌푸리자 당황한 네 사람은 황급히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그런 거 안 해.” “그래, 맞아.” “물론 안 하지.”
사실은 모두 하고 있었지만 그렇게 얼버무렸다. 그녀들은 부정하는 자신들이 멋쩍은 듯 서로의 얼굴을 마주 보았다.
“아무리 그래도, 쪽지를 모두들 앞에서 읽는 것은 좀 그랬지 않니?”
조심스럽게 말하는 리호를 노리코는 의연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잘못을 한 쪽이 나쁜 거 아니야? 게다가 내용을 읽어 보지 않으면 쪽지가 누구 건지 알 수 없잖아.”
“하지만…… 결국 낫칭을 울리고 말았잖아.”
유미코도 머뭇머뭇하다가 한마디 거들었다.
“울 정도라면 처음부터 그러지 말았어야지.”
“잘못된 것을 따지자면, 마음대로 편지를 읽은 쪽은 어때? 사생활 침해 아니야?”
가즈키의 단호한 말에 리호와 레이카도 그래그래, 하고 맞장구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봉함된 편지가 아니기 때문에 만약 그 둘이 고소를 해도 사생활 침해죄에 해당되지 않아. 게다가 그때는 나에게 전달돼 있었으니까 나는 그것을 읽을 권리가 있었어. 나는 옳은 일을 한 거야.”
노리코의 말은 빈틈이 없었기 때문에 그 누구도 더 이상 반박을 할 수 없었다. 그렇지만 이해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아, 맞다. 혹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