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전 손택 - 영혼과 매혹
다니엘 슈라이버 지음, 한재호 옮김 / 글항아리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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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손택을 이해할 수 있으려면


2020.11.10




이 책을 다 읽었다고 해서 수전 손택을 잘 알게 되진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평생을 같이 산 사람도 잘 모르겠단 생각이 들 때가 있는데, 평전을 읽고 그 사람을 완벽하게 파악했다고 하면 그만한 거짓말도 없을 것이다.

 

수전 손택-영혼과 매혹은 수전 손택을, 아니 수전 손택이 평생 추구해왔던 수전 손택 프로젝트를 읽어내는 보고서같은 책이다. 이 책에는 수전 손택의 전 생애를 놓고 그의 사상적 기반이 어디서 기원했는지, 그가 겪은 일이 무엇이었고 그에게 일어난 사상의 변화가 어떤 텍스트로 표현되었는지, 그리고 무엇보다도 손택 자신이 몰랐던 수전 손택은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말한다


예를 들면 이런 대목이다.

 

손택이 작가로서의 야심을 정식화하는 과정은 자기회의를 통해 확고한 동기를 부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하지만 놀랍게도 대다수 작가의 자아상을 채우는 영감이나 창의력, 고취에 관한 생각은 찾아볼 수 없다. 손택은 무엇보다 작가의역할에 흥미가 있었고, 이를 통해 자신의 불안정하고 문제적인 자아를 달래려 했다. (중략) 할 말이 있기 때문에 글을 쓰는 여느 작가들과 달리, 손택은 할 말을 찾아내기 위해서 글을 쓰고자 했다. 이 글에서 인상적인 부분은 손택이 그 의도를 명료하게 말한다는 것, 허영심을 솔직히 인정한다는 것, 그리고 스스로에게 엄청난 부담을 지운다는 것이다.”(102)

 

손택은 이 상황의 모순을 전혀 보지 못했다. 젊은 작가 시절에 매력적인 인물사진을 일부 활용해 자신을 광고한 그가 이제는 그 매체를 비판적으로 분석하고 있었던 것이다.”(271)

 

평전의 기능은 본인이 아닌 다른 사람이 그 대상을 치밀하고 치열하게 읽어내려 시도한다는 점에 있다. 저자 다니엘 슈라이버가 손택에 대해 자신의 의견을, 온전히 자신의 의견이 아닌 객관적인 태도로 정연하게 쓰려고 시도하면서 한 문장을 써내는 데 성공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자료를 뒤졌을지, 얼마나 고민하고 생각했을지, 얼마나 많은 정황과 문맥을 고려해야 했을지 생각하면 이 평전에 걸린 무게가 사뭇 두렵다


게다가 평전의 대상이 수전 손택인 이상, 그러니까 시대를 통과하여 지성의 아이콘이 된 사람의 생애를 읽어낸다는 것은 그가 살았던 시대의 지성의 흐름을 읽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책을 읽으면 1960년대부터 2000년대 초까지의 문화적 흐름을 수전 손택이라는 지성을 기준으로 마치 항공샷으로 찍은 풍광을 보듯이 보게 된다


독자인 나는 수전 손택이라는 지성을 단단하고 정연한 시선과 문체로 담아낸 광경을 안락의자에 앉아 읽다가 등을 곧추세웠다. 살아 숨 쉬는 지성을 목격한 사람이 으레 그러듯이.

 

기억은 연약한 것이다.”(28)

 

기억은 연약한 것이고, 수전 손택에 대한 기억도 예외는 아니다. 손택이 사망한 2004년으로부터 16년이 흘렀다. 손택을 잃은 미국 사회에선 너무나 많은 일이 일어났다


오바마가 당선되었고, 재선에 성공했으나 그 직후의 대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도널드 트럼프와 맞붙었고 트럼프가 대통령이 되었다(이날 나는 친구들과 술을 퍼마시고 한바탕 울었다. 이 글을 쓰는 지금은 미국 대선 뉴스를 틀어놓고 있다). 


이후 4년 동안 미국은 대체로 부정적인 의미에서의 혼란에 빠졌다. 이 시기에 손택을 읽는다는 것은 지성에 대한 그리움이며 목마름일 수밖에 없다. 미국 사회는 아직 수전 손택을 기억하고 있을까


우리는 언제 다시 수전 손택을, 그의 지성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 책을 읽고 수전 손택을 고스란히 알 수는 없었다.  하지만 더 많은 궁금증에 시달리게 되었다.


(다음에 나올 수전 손택 평전도 구입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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