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은 땅에 빛나는
강동수 지음 / 해성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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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동수 작가의 신작 '검은 땅에 빛나는'의 주인공 최영숙은 1927년 스물두 살의 나이로 혼자서 서전(스웨덴)으로 건너가 스톡홀름대학 경제학부에 입학한 실존 인물이다. 이 소설이 아니었으면 조선에 이런 당찬 여자가 있었다는 걸 아는 사람은 드물었을 것이다. 그는 스톡홀름대학 경제학사로 조선의 미래를 위해 헌신하겠다는 결심으로 스웨덴 황태자의 신임에 안주하지 않았고, 귀국길에 만난 인도 청년실업가와의 결혼을 포기했다. 픽션이 아니라 이게 팩트에 기반한 소설이라는 것을 생각하면 현실에서 이런 선택을 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이다. 100년의 시간을 뛰어넘을 젊은 패기의 아이콘이라 해도 어색하지 않다. 
 조선의 땅을 밟기 전까지 결연했던 그의 의지는 그러나 조선의 현실을 뛰어넘지 못했다. 조선의 노동자와 여성들의 인권을 위해 이 한 몸 불사르고자 했던 최영숙은 조선의 인습 앞에서 맥없이 무너졌다. 이 총명하고 순정하며 사유가 빛나는 젊은 여성의 삶을 이렇게 끝내버려도 되나 싶게 소설의 결말은 허망했다. 그러나 어쩌랴. 이 소설의 출발 자체가 실존인물이었던 최영숙의 일대기인 것을. 아무래도 최영숙의 이른 죽음으로 펼쳐내지 못한 꿈은 2017년 현실을 사는 독자의 몫이어야 할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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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 동안의 고독 - 1982년 노벨문학상 수상작 문학사상 세계문학 6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지음, 안정효 옮김, 김욱동 해설 / 문학사상사 / 200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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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백년동안의 고독`을 산 게 30년 전이다. 누군가에게 선물하기 위해 이 책을 사서 약속장소에 간 그날 그 사람은 오지 않았고, `백년동안의 고독`은 내게 남았다. 며칠간 그 책을 읽고, 또 읽고, 이후 자주 이 책을 읽었다. 30년 만에 다시 `백년 동안의 책`을 샀다. 청춘의 환상 같은 이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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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 힐링에서 스탠딩으로!
유시민 지음 / 생각의길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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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살 것인가

-정치를 떠나 삶으로 망명한 지식소매상, 유시민 선언서


 

 

정치판에서는 능력보다 논리가 우선이다. '어제는 어제의 논리가 있고, 오늘은 오늘의 논리가 있다'는 입장을 고수하면 싸움에서 거의 무적이다. 강자라서 무적이 아니라 뻔뻔해서 그런 것이다. 어제의 논리를 초지일관 지키면서 임하는 싸움은 패배의 가능성이 높다. 피터지게 버티면서 임전무퇴해봐야 남는 건 초연함을 가장한 쓰라린 상처뿐이다.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

 

여기 뻔뻔한 논리싸움에서 밀린 패배자가 있다.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지향하고 정의와 평등, 자유의 가치가 훼손당하는 데 대한 분노를 참지 못해 정치의 바리케이드 안으로 뛰어들었던 사람. 정치가라기보다 정치 논객의 이미지가 더 잘 어울리는 유시민이 그 주인공이다. 정치판을 떠날 무렵, 그에 대한 세상의 평판은 호의적이지 않았다. '정당 브레이커'라는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그는 그 평판을 받아들였고, 인정했다. 처음부터 이길 수 없는 입장에서, 승산 없는 싸움을 하고, 목표로 했던 성과를 거두지 못한 채 패배를 자인하며 물러났다.

 

그리고 유시민은 지식소매상으로 돌아왔다. 몇 년 전 유시민의 경제학 카페를 내면서 지식소매상을 자처한 바 있는 그가, 이번엔 아주 전격적으로 자신의 신분을 나타내는 명찰에 지식소매상을 새겨서 내밀었다. 그의 손에는 지식소매상다운 무기가 들려있었다. 고수의 내공이 느껴지는 원론적인 명제가 새겨진 무기, 어떻게 살 것인가가 그것이다.

 

이 책은 어떻게 살고, 어떻게 죽을 것인지, 삶과 죽음 사이를 무엇으로 채워야 할지를 털어놓고 있는 일종의 고백적 에세이다, 2013313, 초판을 찍은 책은 닷새 뒤, 2쇄를 찍었고 무려 10만 부가 팔려나갔다. 10만부는 결코 만만한 부수가 아니다. 방송의 새로운 트렌드로 자리 잡은 팟캐스트가 정치적 활동과 관계된 책들의 판매고를 뚝뚝 떨어지고 있는 출판시장에서는!

 

백만부 판매의 신화를 기록한 거꾸로 읽는 세계사를 비롯해 내는 책마다 마니아 독자층을 확보해온 막강한 글발 덕분일까. 아니면 지식소매상을 선언한 유시민의 심적 변화를 궁금해 하는 시민이 그만큼 많아서일까. 이유야 어떻든 10만부를 넘어선 뒤로도 책은 꾸준히 잘 나가고 있다. 초반에 확 붐을 일으켰다 금방 시들해지는 책의 경우 중고서점을 뒤지면 정가의 절반 이하에 책을 구입할 수 있는데, 어떻게 살 것인가의 중고가는 건재하다. 책을 구입한 10만 명의 독자가 책을 손에 쥐고 있다는 뜻이다.

 

도대체 어떤 내용이기에?

내용 자체만 놓고 볼 때, 솔직히 소장하고서 두고두고 읽어볼 만한 정도의 책은 아닌 듯하다. 책은 프롤로그와 본론, 에필로그로 이뤄진다. 이 가운데 유시민이 이번 책을 내게 된 동기가 집약된 게 1장이다. 여기서 유시민은 세상의 질서와 잣대를 벗어나 록음악에 올인한 크라잉넛을 과하게 내세운다. 그들처럼 살고 싶다는 메시지를 반복해서 전한다. 마음 가는 대로 살자! 사회적 기준에 구애받지 말고,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즐겁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라! 누군가 정해준 꿈이 아니라 나 자신의 꿈을 꾸자! 유시민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청소년들의 그 흔한 캠프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캐치프레이즈와 크게 다르지 않다.

 

소박하다면 소박하달 수 있는 꿈을 털어놓는 내용에 맞추어선지 문장 또한 평이하고 느슨하다. 가쁘게 치닫는 논쟁투가 아니라 자연스러운 호흡이 배어나는 문장이라 여유 같은 게 느껴진다. 그러나 유시민 특유의 문장 맛은 덜했다. 정치논객으로 활약하던 당시, 상대방의 허점을 가차 없이 파고들어 논리정연하게 주장을 관철시키던 날카로운 어법을 이번 책에서도 기대했던 탓일지 모르지만.

 

그렇다면 이 책의 어떤 매력이 사람들을 사로잡았을까. 유시민의 이름값으로 치부하기에는 사실 그는 한물 간 정치인 아닌가. 그럼 혹시 대선 이후 대한민국을 휩쓴 이른바 멘붕상태가 원인인가? 정신이 무너질 정도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어떻게 살 것인가하는 질문 자체가 힘을 발휘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이 지점에서 책의 진가에 대한 논의는 결국 유시민이라는 논객, 지식소매상으로 귀착된다.

 

그는 이 책에서 나답게 살기의 진수를 보여준 크라잉넛에 견주어 55살 중년에 이른 자신의 인생을 평가한다. ‘닥치는 대로열심히 살았지만, 그것은 그가 원하는 삶이 아니었으며 옳다고 믿는 방식도 아니었다고 한다. 그러면서 이제부터라도 내 마음이 가는 대로 살고,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기쁘게 살고싶다는 결심을 장황하게 늘어놓는다. 죽음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는 글은 한 편 한 편이 다 아름다운 에세이인데, 의도하지 않았겠으나 정치권에서 받은 상처에서 아직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내면이 드러난다.

 

유시민이 과연 이렇게 여린 감성의 소유자였던가. 뜻밖이라는 느낌은 다행히(?) 그가 취한 삶의 스탠스에 대한 기대로 대체된다. ‘나답게’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살고 싶다면서 그가 제시한 삶의 방식은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라이다. 그가 지식소매상으로서 남은 생을 설계하기로 한 이유 또한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기 위해서다. 연대의 한 방법으로 정치를 선택했듯, 이제는 글쓰기를 통해 사회적 선을 추구하는 사람들과 기쁘게 연대하고 싶다고 그는 말한다. ‘글쓰기와 연대의 삶!’ 결국 이것이 유시민이 이 책을 통해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의 핵심이다.


 

 

어떻게 살 것인가 - 유시민이라는 텍스트

 

누구나 어렵지 않게 꿈을 이야기하고, 열정을 이야기하고, 연대를 이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유시민이 살아온 삶의 무게와 진정성을 가지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내가 원하는 대로 살고 싶다는 바람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가지는 꿈이다. 이 소박한 꿈이 글쓰기와 정치(젊었을 적에는 운동) 사이를 오가며 숨 가쁘게 달려온 삶의 한 고비에서 고백되었을 때, 그 말은 다른 무게를 가지고 독자 앞에 다가간다.

 

어떻게 살 것인가.

유시민이 던진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그가 책에 담아놓은 말과 말 속에 숨어있다. 삶에 대해, 죽음에 대해, 놀이와 일과 사랑과 연대에 대해 그가 털어놓은 말의 함의는 유시민이라는 한 풍운아가 그려나가는 삶의 밑그림에서 찾아야 한다. 이 책의 진짜 텍스트는 정치를 떠나 삶으로 망명한 유시민, 바로 그 자신일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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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발의 제니
강동수 지음 / 실천문학사 / 201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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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한때는 누군가에게 금발의 제니였을까? 찬란했던 청춘의 날들에 누군가는 내 금발의 제니였을까? ‘제국익문사’의 작가 강동수의 두 번째 소설집 ‘금발의 제니’를 읽으면서 그런 생각을 했다. 소설집 안에 실린 ‘수도원 부근’을 읽으면서, ‘호반에서 만나다’를 읽으면서 쓸쓸하게, 적막하게 웃었다. 아마도 나 역시 누군가의 제니였을 거니까. 누군가는 나의 제니였고, 한때 제니였던 중년의 우리는 새벽녘 베란다에 서서 ‘금발의 제니’를 반추하는 작가 강동수처럼 청춘의 한 시절을 건너왔으니까.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 그 쓸쓸함의 정체 

몇 년 전 강동수 작가가 낀 여럿의 소주자리에서 풋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다들 <금발의 제니>에 등장하는 첫사랑쯤보다 더 어린 나이 귓볼 발개지는 연정 한 자락씩을 고백했던 것인데, 중년이 되어 우연한 재회를 가졌다는 이에게 강동수 작가가 건넸던 말 한마디가 기억에 남는다. 쓸쓸해서 어떻게 그 마른 만남을 가졌느냐고.
 

그 자리에서 들은 다른 이야기보다 이상하게 그 말의 여운이 오래 남더니, <금발의 제니>을 읽으면서 알 것 같았다. 신문사 논설위원이자 보수적인 가장의 체통을 겨울담요처럼 걸치고 있는 중년의 사내와 별을 노래하고픈 천진한 심성이 천성인 소년의 부조화 같은.
 

이런저런 술자리에서 곧잘 드러내던 그의 고백의 연장선으로 <금발의 제니>를 보더라도, 7편의 소설을 관통하는 건 ‘촉촉한 윤기와 바스러짐’이다. 금발의 제니들은 청춘의 자체발광으로 찬란했으나 생의 너덜길을 건너오는 동안 아름다웠던 모습은 윤기 없이 바스러진다. 서로의 후줄근한 모습을 바라보며 ‘오래전 책갈피에 넣어둔 마른 야생화 같은 묵은 그리움이 살아나는 것’을 느끼지만, ‘담뱃불을 끄듯 마음속에서 솟아오른 격정을 눌러끄고 만다’. 세월은 이미 지나가 버린 것이다. 욕망도 그리움도 회한의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그래서 마른키스로밖에 만날 수 없는 과거와의 재회는, 어지간히 허망한데, 이 지점에서 작가는 무심한 어조로 별을 노래한다. 별을 노래하되, 물론 중년답게 말이다.
 

아름다웠던 금발의 제니에 대해 꺼져가는 불씨가 살아나듯 일어나는 욕망을 담뱃불 눌러 끄듯 꺼버리는 무기력한 중년은 삶의 덧없음과 함께 아름다움의 근원을 눈치채버린 자의 쓸쓸함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쓸쓸함의 정체는 싱싱하고 팽팽했던 젊음이 물기 없이 바스러진 중년으로 되어가는 과정에서 사랑이 사라지고, 욕망과 기쁨과 분노가 사라져 간 시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 강동수가 풀어내는 쓸쓸함은 금발의 제니들이 살아온 시간 저편에서 여전히 빛나고 있는 별을 그들이 잊지 않았다는 데서 기인한다.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2010년 오영수문학상 수상작인 '수도원 부근'에서 작가는 청춘의 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중년의 시간을 그리고 있다. 어릴 때 ‘나’와 같은 성당에 다녔던 안드레아와 체칠리아는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그러나 안드레아는 수사가 되었고, 체칠리아는 수녀원에 가서 종신서원을 했다. 소설가로 나오는 ‘나’는 안드레아가 재벌의 레저단지 개발에 반대해 단식 투쟁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를 찾아간다. 그리고 안드레아로부터 체칠리아 소식을 듣는다. 체칠리아는 수녀원에서 나와 달동네에 사는 남자와 결혼해 그의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있다. 
 

두 친구가 살아온 내력이 펼쳐지는 것과 병행해 수도원 현장은 용역깡패들이 들이닥쳐 행패를 부리는 사태를 맞는다. 안드레아는 그들이 던진 돌에 이마를 맞아 피를 흘리면서도 그들과의 대치를 계속하겠다는 뜻을 굽히지 않는다. 이길 수 없는 싸움이라는 것을 나도 알고 안드레아도 알고 있지만(두 사람의 이야기 속에 등장하는 체칠리아도 알고 있었으리라), 별이 흐르듯 우주를 돌아가는 시간처럼 스스로가 선택하는 모양새인 운명 또한 도무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다.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

결국 '나'는 아무것도 해주지 못한 채 수도원을 떠난다. 그리고 국도 쪽으로 길을 잡는다(옆길로 잠깐 새자면, 소설집 <금발의 제니>는 독립적인 7편의 단편을 다루고 있지만 화자가 서성이는 배경에서 튀어나오는 키워드로 서로 연결되어 있다. 일테면 ‘수도원부근’ 마지막에서 ‘국도’ 쪽으로 길을 잡은 ‘나’의 발걸음은 아들의 사고소식을 듣고 ‘7번 국도’로 들어서는 중년남자의 막막한 길로 이어진다. 그리고 소설 마지막 문장, ‘갑자기 몰아닥친 한낮의 어둠에 나는 눈을 비볐다’는 ‘명왕성이란 이름에서 왜행성 132340으로 격하돼 아내의 궤도에서 퇴출당한 전직시인의 후줄근한 시간을 그린 ‘청조문학회 일본 방문기’에 겹쳐진다.) 

구비를 돌자 수도원 뒷산이 보였다. 산자락에 걸린 호수가 반짝이고 있었다. 그때였다. 그 옛날 체칠리아가 술에 취해 중얼거리던 말이 떠오른 것은.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다.
그게 칸트의 말이었던가 아니었던가. 기억나지 않았다.

멀리 있지만, 그러나 역으로 분명한 것은 아름다운 것을 놓지 않는 한, 무력하게 지친 중년의 시간 속에서 잊지 않고 바라보는 한 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 존재해 있다는 것이다. 하고 보면 청춘이 중년보다 스스로 아름다운 건, 별이 얼마나 아득하고 멀리 있는지 몰랐기 때문은 아닐까. 
 

결국 작가 강동수가 <금발의 제니>를 통해 일관되게 다루고 있는 것은 ‘별과의 거리’일진대, 현재의 시간을 단단히 붙잡고 있지 않았다면 결코 가능한 작업이 아니었을 성싶다. ‘아름다운 것은 멀리 있는’ 만큼, 한 번의 여행이 끝나도 길은 다시 시작되는 것이리라. 
 

여간해서 눈치 채기 어렵지만, 작가와 이런저런 일로 어울리며 감지한, 놀라울 정도의 자기애로 스스로의 삶에 몰두하여 급기야 스스로 별이 되기도 하는 천진함을 소설의 군불로 삼는 작가 강동수의 다음 여정이 자못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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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온한 식탁 - 2011 한국도서관협회 우수문학도서, 2011 부산작가상 수상도서
나여경 지음 / 산지니 / 201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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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법 도박장, 사기 매매를 전문으로 하는 부동산 사무실, 주방장과 서빙이 툭하면 눈과 배가 맞아 사고를 치는 식당주인, 개 교배 전문가의 세계, 바텐더를 하는 여성...  

하나같이  보통이 넘는, 혹은 보통이 못되는 인물들이다. 이런 인물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소설집 '불온한 식탁'을 낸 사람은 내가 개인적으로 잘 아는(부산작가회의와 부산소설가협회 모임에서 함께 어울린) 나여경 작가다. 

나여경 작가, 하면 떠올리게 되는 게 소처럼 끔벅거리는 크고 예쁜 눈. 누가 봐도 그 미모에 입을 대지 않고는 견디지 못하는 나여경 작가의 소설적 자장이 어떤 색깔일까, 살짝 궁금했던 건 내가 나작가처럼 예쁜 여자로 살아보지 못한 때문이다. 이거 농담이 아니다.  

으~쨌든, 단편 몇 편을 뜨문뜨문 읽으며 간만 봤던 그녀의 소설세계를 지대로, 통째로 맛봐주겠다는 불온한 마음으로 책을 펼쳐들었더랬다. 빈약한 체력으로 격무에 시달려 12시 되기 전에 잠에 빠져드는 게 요즘 내 라이프스타일인데. 책을 펼쳐든 이날  나는 7편의 소설을 다 읽어치웠다. 더미의 변명, 금요일의 썸머타임, 돈크라이, 태풍을 기르는 방법, 정오의 붉은 꽃, 쥐의 성(成), 즐거운 인생까지 읽고나니, 새벽 3시. 놀랐다기보다 어안이 벙벙했다.  

아니, 이 예쁜 여자가! 예뻐도 예쁜척 안하고 일희일비 하지 않는 덤덤한 성격에 주변을 두루 살피는 성정까지 갖춘 이 참한 여성작가가 우째 이리 어두운 시공간의 삶을 속속들이 알 수 있었더란 말인가! 하는 경외감과 의구심과 약간의 배신감이 밀려왔다. 부러움 내지 질투심은 물론이고... 아무튼.

내게는 이 소설집에 나오는 인물들이 낯설다. 새로워서 낯선 게 아니라-뉴스나 영화 속에서 종종 등장하는 게 이런 인물들이니까- 이 인물들이 사는 방식이 낯설고, 이들이 취하는 태도, 이들이 속해있는 공간의 분위기, 리듬, 감성이 낯설다. 불온하다기보다는 불안한 이들의 일상이 낯설다. 불안한 삶, 불안한 시간을 사는 인물들은 원래 그 존재 자체가 낯선 법이다. 

낯설어서 멀찌감치 떨어져 무관심한 예의로 외면했던 인물들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여경 작가의 손에서 반죽이 되어 내 앞의 '불온한 식탁'에 올라왔고, 덕분에 작가를 아는 독자의 행운으로 나는 불온한 독서를 했다.

솔직히 인정할 밖에 없어 하는 말인데, 나여경 작가, 대단하오! 그리고 축하하오! 식탁을 맛나게 비우고 내놓는 점수는 별 네 개 반. 다섯 개 다 주기에는 내가 좀 예쁜여자한테는 박한 편이라 ㅎㅎ  

  

 

아참, 게다가 이 특이한 소설속 인물들의 행동을 묘사하는 이 박진감 넘치는 표현이라니!

 

곰이 뜬 건 그때였다. 멀리서 헤드라이트 빛이 보였다. 곰이다, 외치는 함성과 급히 뛰는 구둣발 소리, 냄새를 맡은 우리 애들이 대문을 걸어 잠그는 소리가 뒤섞여 들렸다. 나는 집 뒤로 달렸다. 예상대로 비상문이 열리고 범털 형님이 호위를 받으며 뛰어나왔다. 우선 범털 형님을 차에 태워 보낸 후 다른 보살들을 위해 비상문을 열었다. 이미 마당으로 진입한 두 명의 곰이 보였다. 어쩔 수 없이 그들과 맞설 수밖에 없었다. 나를 보자 순간 멈칫하던 한 명의 곰이 먼저 주먹을 날렸다. 급히 고개를 옆으로 피하며 발을 올려 곰의 옆구리를 강타했다. 짧은 신음과 함께 중심을 잃은 곰을 발로 차 넘어뜨렸다. 몸을 돌려 뛰려는 내 등으로 불구덩이 쏟아진 듯 통증이 느껴졌다. 곰이 내 등을 향해 내려친 각목이 반 토막 나며 멀리 튀어 달아났다. 몸을 낮췄다가 나를 향해 다가오는 곰의 복부를 구둣발로 찍었으나 헛발질이었다. 중심을 잃고 쓰러진 내게 곰이 다가왔다. 급한 대로 돌을 주워 던졌다. 이마를 움켜진 곰의 손가락 사이로 흐르는 피가 보였다. 
-「더미의 변명」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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