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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부터 천국입니다
임영태 지음 / 문이당 / 2005년 9월
평점 :
개띠에 얽힌 안좋은 추억이 있어선가, 병술년으로 해가 바뀌고 자주 악몽을 꾼다. 적막한 꿈속 세상에서 유일한 등장인물인 나는 잔뜩 겁먹은 채 정체를 알 수 없는 뭔가에 쫓기고 있다. 꿈속의 존재로, 동시에 꿈속의 나를 바라보는 존재로 나는 이중의 고통을 느낀다. 꿈을 꾸는 동안 내가 느꼈던 불안과 공포는 잠에서 깨는 순간 말짱하게 사라지는데, 불안과 공포의 감각은 꿈을 꾼 나에게로 전이된 듯 아침나절 내내 기분도 몸도 개운치 않다. 나는 아마도 '지금' '여기' 있는 내가 온전한 나인 게 아니라는 막연한 느낌에 빠져버리는 게 분명하다.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에 대한 의문과 그에 대한 해답을 찾고있는 소설, <여기부터 천국입니다>를 신문의 신간소개란에서 본 게 지난해 10월이던가. 잘 기억나지 않지만 '나'를 인지하는 내가 나의 생물학적 원체에 의해 복제된 존재일 경우 나는 '나'인가라는 소개말을 본 거 같다. ‘나'라는 존재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를 너무나도 정직하게 소설형식으로 다룬 작가의 무모한(?) 주제선택에 경탄하며 나는 악몽에서 깨어난 뒤의, 요컨대 나는 내가 아닐 수도 있다는 개운치 않았던 기분을 떠올렸다. 그럼에도 진작 책을 사보지 않고 미뤘던 건 서평이 실린 시점이 황우석 관련뉴스가 신문지상을 도배하다시피 하던 무렵이라 일단 ‘복제’라는 용어자체가 지긋지긋해서였다. 나는 한번 더 악몽속을 헤맸고, 꿈속의 나를 지켜본 날 서점에 전화를 걸어 책을 주문했다.
개인적인 관심에서 손에 들기는 했지만, ‘코마’부터 ‘돌연변이’와 ‘바이러스’를 거쳐 ‘복제인간’까지 한때 내가 빼놓지 않고 읽었던 로빈쿡의 메디컬 스릴러 소설에서 스릴을 뺀 좀 맥빠진 작품이겠거니 여긴 내 짐작은 완전히 빗나갔다. 소설은 자아찾기의 미로를 헤매는 주인공 남기웅의 좌충우돌이 숨가쁘게 전개되는 가운데 복제인간의 정체성을 놓고 밀고 당기듯 이어지는 이정미와의 관계가 연민과 웃음을 끌어내는 소설적 장치로 빛을 발하면서 손에서 책을 놓을 수 없게 했다.
이정미는 신이 아담과 이브를 창조했듯 연구소에서 남기웅과 짝을 맞춰 복제해 낸 여자 복제인간이다. 복제세계의 아담인 남기웅과 달리 이브인 그녀는 자신의 정체성을 인정하는 데, 혹은 스스로를 납득시키는 데 성공한 듯 보인다. 생물학적 실체는 텅빈 기호이며 사유하고 기억하고 행동하도록 명령하는 문화적 주체가 '나'의 본질이다. '나'의 본질은 그대로인 채 생물학적 실체일 뿐인 몸을 바꿔입으면서 '나'는 건강한 상태로 새로 태어나는 것이다. 남기웅이 복제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을 인정하도록 도와주려는 이정미의 논리는 복제인간을 연구하고 개발해 낸 연구소의 목적을 드러낸다. 바로 영생불사다.
연구소의 목적은 이즈음 과학선진국을 자처하는 나라에서 국가정책의 하나로 진행되는 듯 보이는 줄기세포 연구의 숨은 목적을 아울러 떠올리게 한다. 병의 치유를 위한 것이라는 줄기세포 연구가, 그리고 복제기술이 끊임없이 윤리적 논란의 대상이 되는 건 영원히 늙지 않고 싱싱한 몸으로 살고싶은, 신의 섭리든 자연의 순리든 생명체계를 거스르는 인간의 욕망이 담겨있기 때문이리라.
영생불사. 여기서부터 마침내 천국은 실현된다고 믿는 연구소 과학자의 논리에 의한다면, 어떤 대가도 치르지 않고 복제된 몸으로 바꿔입은 남기웅은 행운아다. 거기다 남기웅에게는 원체의 남기웅과 복제된 남기웅 둘 중 한쪽만의 생존을 선택케 하는 기회도 주어진다. 그 결과? 남기웅은 놀랍게도, 아니 어쩌면 당연하게도 원체를 버리고 현재의 나를 선택한다. 그런데 문제는 선택했다고 해서 복제된 남기웅을 나의 본질로 인정할 수 있는 건 아니라는 데 있다.
나에 대한 의문은 계속해서 그를 괴롭힌다. 복제인간 남기웅은 그의 의지로 저지르는 행위와 기억들로써 새롭게 인지되는 정체성을 구축하기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극단으로 자신을 몰아간다. 그리고 남기웅은 마침내 복제인간으로서의 자신을 받아들인다. 내가 가짜고, 나의 감각이 가짜고, 내 말과 행동과 나와 관계맺는 세계가 가짜라 하더라도, ‘지금, 여기서’ 그 가짜의 삶을 ‘살고있는’ 나는 본질(원체)에 앞서 한 인간으로 존재한다는, 존재에 대한 긍정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남기웅의 긍정은 다행인지 불행인지 흔쾌하지 않다. 작가 임영태는 ‘복제는 원체에 의해서만 이루어지며, 복제된 나는 다시 복제되지 않는다’는 차이를 둠으로써 영혼의 존재성으로 초점을 옮겨간다. 여기서 나는 누구인가, 무엇이 나를 나이게 하는가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는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삶의 태도로 확장된다. 그리고 그 해답은 독자 개개인에게 맡겨진다.
머지않아 우리는 소설속 남기웅처럼, 혹은 메피스토의 유혹 앞에 섰던 파우스트처럼 선택을 해야 할지 모른다. 고통스럽고 비루하지만 영혼을 지닌 인간의 삶을 살 것인가, 영혼을 상실한 대가로 얻는 영원한 젊음과 건강을 누릴 것인가. 부활의 종소리와 함께 카르페 디엠의 축사가 울리는 ‘천국’은 이미 당신과 내가 선택해야 할 몫으로 던져져 있는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