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 속의 남자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08년 9월
평점 :
절판


이런 걸 초현실주의적 기법이라고 해야 하나. 전직 칼럼니스트이자 서평가인 주인공 브릴은 일흔이 넘었으며 교통사고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처지다. 아내가 죽은 뒤 이혼한 딸 미리엄과 남자친구가 죽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카티야와 함께 살고 있다. 

손녀 카티야는 남자친구가 이라크전쟁에 참가했다가 죽임을 당하는 비디오를 본 뒤 다른 영상들로 그 기억을 지우려는 듯 종일 영화비디오만 때리고 있고, 브릴은 불면의 밤에 상처받은 세 식구의 현실을 지우려는 듯 공상을 이어간다. 그러나 브릴이 이어가는 이야기는 브릴 자신의 현실과 맞물린 듯한 상황으로 전개된다.

그의 공상 속에서 미국은 내전 중이다. 9.11과 이라크전쟁을 대체한 듯한 내전으로 미국민의 삶은 삭막하고 피폐하다. 이 참혹한 전쟁을 확실하게 끝낼 수 있는 해결책은 단 하나! 내전 이야기를 머릿속에서 공상하는 당사자인 주인공 브릴을 죽이는 것이다. 브릴을 죽이는 임무를 맡은 브릭은 당연히 브릴이 만들어낸 인물이다. 그런데 브릴의 공상 속에서 브릭을 매혹시키는 버지니아는 소설 후반부 브릴의 추억속에서 다시 등장한다. 즉 브릴은 자신의 자아이기도 한 브릭으로 하여금 자신을 죽이는 또다른 현실을 만들어내어 자신의 현실을 견뎌가는 셈이다. 

브릴이 자신의 현실을 잊기 위해, 혹은 견디기 위해 전쟁을 공상한다는 이 이야기는 미국이 저지르고 있는 이라크전쟁 역시 미국의 현실속 진짜 문제들을 덮기 위해 만들어낸 것일 수 있다는 걸로도 읽혀진다. 재밌는 건 전쟁을 종식시키는 확실한 해결책이 전쟁을 공상해낸 당사자를 처형한다는 것이고...

그 결과는 독자의 기대를 배반(?)한 채 소설전반부에서 끝나고, 후반부에서는 브릴과 미리엄, 카티야 세 식구의 과거 기억을 축으로 펼쳐가는 일상이 다뤄진다. 아내 소니아에 대한 브릴의 추억과 미리엄의 평전, 그리고 이라크에서 운전병으로 근무하다 납치된 뒤 목이 잘려 죽은 남자친구에 대한 죄책감으로 괴로워하는 카디야의 기억들로 얽힌 일상이 계속되는 가운데, 여느 때와 같은 불면의 밤 브릴과 카티야는 각자 끌어안고 있던 속내를 터놓게 된다. 그리고 새벽녘 미리엄이 함께한 가운데 이야기는 일단 마무리를 짓는다.

오독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시점이 '새벽'이고, 미리엄이 찾아들 무렵 카티야가 곤한 잠에 빠지고, 그리고 세 식구가 아침밥을 든든히 먹기위해 외출을 하는 걸로 끝나는 장면은 미리엄이 브릴에게 보여준 시의 구절을 작가의 메시지로 읽게 한다. '이 괴상한 세상은 계속 굴러가고 있어요'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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