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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3부작 열린책들 세계문학 38
폴 오스터 지음, 황보석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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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오스터Paul Auster,『뉴욕 3부작 The New York Trilogy』 

《말로 존재하는 인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자신의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다. 영화에서 감독이 주연과 연출을 겸하지 않는 경우를 제외하고, 카메오 출연은 별다른 이유가 없거나 일종의 소격효과이기도 하다. – 단, 관객이 감독을 알아볼 경우 -. 대체로 문학 작품 속에서 작가가 그것 안에 등장하기도 한다. 자신의 일화를 토대로 글을 쓰거나 등장인물 중 한 명에게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여 독자들을 엿보는 경우이다.『뉴욕 3부작』은 3편의 중편이 얽혀 있는 장편소설이다. 이것에는 히치콕 감독보다도 지은 이가 훨씬 더 많이 등장한다. 심지어 자전적 소설을 쓴 듯한 인상을 받을 수도 있다. 대개 독자가 작가의 일생을 모르더라도 내용을 통해 작가의 등장을 금새 파악할 수 있다. 한 인물이 작가와 너무도 닮았기 때문이다. 폴 오스터는『뉴욕 3부작』에서 마치 자전적 소설을 썼다고 할 정도로 작품 속에서 완전히 자신을 드러낸다. 



  사람은 태어나는 순간, 살아가면서, 죽는 순간 존재의 의미를 확인한다. 삶은 존재와 유사한 의미이기도 하다. 존재의 증명 방식은 이외에도 여러 방식이 있다. 예를 들어 작가는 작품으로 존재를 확인한다. 소설가는 이야기를 풀어가면서 그것을 세상에 표출한다. 세상에는 소설가가 풀어낸 이야기가 떠돌아 다닌다. 그것을 취하는 건 독자이며, 손에 움켜쥐거나 눈으로 확인한 이야기는 작가의 말이다. 단, 이것은 작가가 아닌 사람들이 이해하기도 하고 그렇지 못하기도 하다.  

 『뉴욕 3부작』은 말에 관해 여러 이야기를 언급한다.「유리의 도시」에서 ‘매일 방에서 시를 쓰고, 혼자서 갖가지 말들을 만들어내고, 몇 가지 일들을 기억해 낸다고 한다. 시인이 되고 난 다음에 다른 일을 할 것이라고 하기도 한다. 때와 상관 없이 할 말이 떨어지기 때문이라고 한다.’ 더불어 ‘얘기를 하고 있다. 말들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다고 등장인물들의 입을 통해서 말과 이야기에 관한 생각을 풀어주기도 한다.’ 말과 이야기를 ‘말’이라고 뭉뚱그려 본다면, 인간은 할 말이 있어야 한다. - 인간이 말을 못한다고 하더라도, 다른 형태로 이야기를 하기도 한다. – 그것은 작가가 아니더라도 인간이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생각이며, 생각에 필요한 기억이며, 존재의 형태이다.  

  말은 인간의 입으로 내뱉기도 하지만 단어로 붙여지기도 한다. 이것은 음성 언어와 문자 언어를 동일하게 하여 의미를 부여하는 형태로 서로가 서로에 대한 존재를 확인하는 방법이다. 흔히 익명이라는 형태는 존재를 감추면서 당사자를 드러내지 않으려고 한다.「유령들」에서 블루 • 블랙 • 화이트 등의 특정한 단어를 사용하여 실체를 흐릿하게 한다. 타인이 자신을 못 알아보게 하려는 의도된 행위이다. 다만 의자 • 책상 • 라디오가 아니라 색깔과 관련한 단어를 사용하여 특정 색이 뜻하는 일반적인 의미를 인물에 부여하기도 한다. 독수리라고 하면, 떠오르는 일반적인 연상이 있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 독수리와 연상이 합치되지만, 독수리에게 호랑이라고 붙이는 순간 음성 언어 • 문자 언어 • 의미가 붕괴될 것이다. 단어와 의미는 인간 사회에서 각각의 명칭을 부여하고 의미를 띤 존재로 자리매김시키기 때문이다. 인간은 말로 이루어진 공간에서 존재하는 동물이라고 할 수 있다.  

 혀
  범죄나 간첩을 잡으면, 입부터 틀어막는다. 그건 치아로 혀를 잘라 자살하거나 말을 하지 않기 위한 극단의 방법이다. 인간이 말을 하려면 혀(舌 • tongue)가 필요하다. Tongue라는 단어는 혀뿐만 아니라 언어라는 의미도 있다. 말을 하려거나 언어를 조절하려면, 혀가 있어야 한다. 혀는 인간의 신체 일부이면서, 사회에서 통용되는 말을 하기 위한 도구이기도 하다. 두 명의 사람이 대화를 한다면, 다른 두 개의 혀가 작동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비약이겠지만「유리의 도시」에서 스틸먼 부인이 퀸의 입 안으로 혀를 깊숙이 밀어 넣어 키스를 하였다. 나중에 퀸은 스틸먼 부인에 대한 욕정을 품기도 하지만 혀가 말을 토해내지 않고 다른 행위를 함으로써 음성 대화가 아닌 감정의 대화를 한다. 
 

존재
  폴 오스터의『뉴욕 3부작』은 말로써 존재하는 사람을 보여준다. 내가 뱉은 말들이 세상에 떠돌고 그것이 무형의 개체를 만들어낸다. 그것은 다시 타자에게 투영되어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기도 한다. 생김새가 전혀 다르다고 해서 다른 인간이 아니라 말을 하는 동일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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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우연과 생성의 문학 -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
    from 사하, 시즌 2 2011-08-22 12:48 
    우연의 남발은 소설 창작 개론서에서는 금기이지만 폴 오스터에게는 미학이다. ‘뉴욕 3부작’ 중 ‘유리의 도시’는 잘못 걸려온 전화가, ‘잠겨있는 방’은 옛 친구의 부인으로부터 온 편지가 사건의 발단이 된다. 그 이후 사건의 전개도 시치미 뚝 떼고 우연으로 점철된다. 장편소설 ‘달의 궁전’에서는 주인공이 한 맹인에게 책 읽어주는 사람으로 취업하는데, 그 맹인이 오래전에 버린 아들이 죽은 줄 알았던 주인공 친아버지로 밝혀진다. 줄거리만 놓고 보면 막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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