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명랑한 은둔자
캐럴라인 냅 지음, 김명남 옮김 / 바다출판사 / 2020년 9월
평점 :
굉장한 내적 친밀감을 느꼈다. 나는 태생이 천성적으로 외향적이진 않지만, 그렇지만 외향적임과 큰 목소리가 유리한 한국 사회에서 그렇게 되도록 길러졌던 것 같다. 혼자있는 것을 좋아한다고 해서, 자기 목소리를 크게 내지 않는다고 해서 그 사람의 주장과 생각이 없는 것은 아닌데, 무시당하기 일쑤인 상황들은 나같은 사람들을 무척이나 당황스럽게 만든다.
책날개에서 이 책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캐럴라인 냅은 이 책 <<명랑한 은둔자>에서 혼자 살고 혼자 일했고, 가족과 친구와 개와 소중한 관계를 맺으며 자기 앞의 고독을 외면하지 않았던 삶을 이야기한다. 자신의 강함과 약함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결국 삶의 명랑을 깨달은 저자로부터, 우리는 만난 적 없지만 오래 이어온 듯한 우정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그의 재능이다.”
캐럴라인 냅은 1959년에 태어나 2002년에 42세의 나이로 사망한 미국 작가다. 기자 - 전업 작가로 살다가 폐암으로 죽었다. 우리엄마와 같은 해에 태어났고, 2002년이면 내가 고3이었던...🤭
생전에 세 권의 책과 사후에 두 권의 책. 냅의 글은 그게 전부다. 모든 글이 회고록의 성격을 띠는 에세이다. 냅은 주로 자신이 20대와 30대에 겪었던 극심한 거식증과 알코올 의존증에 대해서 말한다. 자신이 그로부터 어떻게 빠져나왔는지를 말한다. 부모와의 어려웠던 관계, 하지만 냅이 33세였던 해에 아버지가 뇌종양으로 사망하고 그로부터 일 년 뒤에 어머니도 암으로 사망하는 과정에서 느꼈던 슬픔,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남자에게 집착하면서 느꼈던 자기혐오와 분노, 그보다 나은 남자와 무한히 더 나은 개를 만나서 느낀 애정과 평화, 혼자 살고 혼자 일하는 여성으로서 겪는 세상의 답답함에 대해서 말한다. 자신의 강박적 성격과 책상물림의 유약함을 유쾌하게 비웃고, 값비싼 시행착오를 통해 깨우친 사소한 삶의 요령들을 소중하게 기록한다. 두렵고 벅찬 과제처럼 느껴지지만 이따금 우정, 자기 이해, 성숙과 같은 소중한 선물을 안기는 세상을 크게 또 작게 들여다 본다. 냅은 가볍고 진지하다. 웃기고 슬프다. 시작은 지나치게 예민하고 결말은 어이없게 관대하다. 자의식이 강하지만, 자기 연민이나 자아 비대는 없다. 그리고 늘 글 쓰는 자신에게 정직하다. _7쪽
옮긴이의 말 부분이다. 이 책에 대한 소개를 아주 잘 정리해 주고 있다. ‘홀로 - 함께 - 떠나보냄 - 바깥 - 안’의 다섯개 챕터를 통해 여러가지 자기 생각들을 독자들에게 전한다. 그냥 상념으로 떠나 보낼 수 있는 것들을 무겁게 시작하는 듯 하지만 마지막 문장은 전혀 무겁지 않다. 그래서 더 이 책에 매력이 있다. 이 책이 그토록 한국에서 많은 인기를 얻은데는 그동안 터놓고 말하지 못했던 부분들 그러니까 나는 이렇게 생각하는데, 그렇다고 말하긴 좀 그렇고, 하지만 나에겐 커다란 부분이고, 그런데 말하려니 좀 부끄러운 것 같기도 하고... 그런 부분들을 작가님이 가감없이 글로 잘 펼쳐내 주어서가 아닐까.
2020년의 마지막 책이자 2021년의 첫책이기도 한 이 책. 만나게 되어 정말 즐거웠다. 하지만 작가님이 살아 계시지 않아 그녀의 글을 또 만날 수 없다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