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트라빈스키는 러시아에서 태어나 31세 때인 1913년에 서유럽으로 진출했고, 이후 스위스와 프랑스에 26년을 뿌리내리고 살다가 57세 때인 1939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그리고 1971년에 8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 P365
이 논문은 그야말로 20세기 초에 서양 음악계를 강타한 태풍의 눈에 섰던 작곡가의 여정을 정리한 것이었다. 스트라빈스키는 강의를 준비하고 진행하면서 현재 자신이 당도한 시공간의 좌표를 확인했다. 여기서 가장 핵심적인 내용은 바그너에 대한 비판과 모더니즘의 정의, 러시아 음악의 계보 및 소비에트의 현 상황에 대한 진단이었다. 그때까지 스트라빈스키의 음악적 견해를 요약한 『음악의 시학은 유럽을 평정하고 신대륙에 온 작곡가의 야심 찬 출사표이자 청사진이었다. - P369
미국으로 건너온 스트라빈스키는 신고전주의 스타일을 고수했다. 하버드대학 강연으로 나름대로 이론적인 토대를 마련했고, 계속되는 작품도 기존 양식을 확인해 주었다. - P387
다길레프가 자존심 때문에 빚어진 문제로 스트라빈스키와 화해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듯이, 독일 문화의 두 계승자인 쇤베르크와 토마스 만도 같은 길을 갔다. 이제 악마와 12음 기법을 거래할 사람은 옆 동네에서 이들을 지켜보던 스트라빈스키였다.난봉꾼의 행각으로 자신의 개성과 전통을 일치시키는 작업의정점에 도달한 그는 새로운 사냥감을 찾았다. - P406
영리한 스트라빈스키는 이런 상대적인 약점을 간파했다. 그래서 그의 신고전주의는 유연했다. 그는 양식만이 아니라 시스템까지도 패러디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음렬주의를 흡수한 스트라빈스키는 유일무이한 독창성을 유지함으로써 자신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존재임을 다시 한 번 과시한 것이다. 음악적 모국어를 잃고 전통과 단절된 삶을 살아온 그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 P420
그는 방문 전 자신의 러시아행이 향수를 달래려는 것이 아니라 젊은 소련 작곡가들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라고 밝혔지만, 『증언』에서 쇼스타코비치가 말한 바에 따르면 결과는 전자에 가까웠다. - P437
남사당놀이의 마지막은 ‘덜미‘라는 인형극이 장식한다. ‘덜미 잡힌다‘라는 말은 바로 인형 노릇을 하게 된다는 뜻이다. 덜미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이 꼭두각시놀음이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유랑극단에서 꼭두쇠의 각시는 가장 예쁘장한 남정네가 맡게 마련이다. 니진스키다. 발레 뤼스의 삐리였다가 가열과 뜬쇠를 거쳐 이내 꼭두각시가 된 남자. 스트라빈스키도 이와 비슷하다. 그는 음악계 삐리에 불과했지만 그를 알아본 꼭두쇠가 가열을 맡겼고, 가열찬 불새의 비상뒤에는 곧바로 패거리 음악 담당 뜬쇠가 되었다. - P44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