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혐’이란 ‘극단적인 혐오’나 ‘궁극의 혐오‘ 따위를 줄인 말이다(실은 잘 모른다). 극단적인 혐오로 인해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비극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가 어쩌다 나에게 내뱉은 멍청한 말 한 마디로 존재 자체를 혐오해도 되는가? 엄밀히 말하자면 그 누구도 그자신으로 혐오당해서는 안 된다(그래도 넌 극혐이야). - P41
사랑이 결여된 인간은 정치도 법도 분노도 용서도 올바르게 행할 수 없다. 사랑으로 그것을 다룰 때 인간은 이 세계에 인간의 존엄을 해치지 않는 정치와 법을 세우고 분노와 용서가 인간을장악하지 않을 수 있도록 계도한다. 이것이 내가 이해한 마사 누스바움의 주장이다(사실상 호소에 가깝다). 나는 그 사랑 때문에 마사 누스바움의 모든 저작을 사랑한다. - P63
내가 했던 모든 연애는 나를 혼자서 걷게 했다. 걷는 것 말고 다른 좋은 방법을 알지 못했다. 걷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효과가 없었다. 걸음을 멈추는 순간 나는 그를 죽이러 가고 말 것을 알았다. 그래서 무조건 걸었다. - P70
언제든 그만 살면 되니까. 이 생각은 그러나 여전히 내게서 유효하다. 언제든 그만 살면 된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나는 살 수가 없다. - P95
나는 스스로 죽는 것보다 죽지 못하고 타의에 의해 계속해서 살아 있는 것이 더 무섭다. - P100
용서는 받고 싶은 쪽에만 있는 것이다. 용서는 받고 싶은 것이지 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 무엇을? 인간을. - P1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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