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스토옙스키는 유럽을 잠식하고 있는 유물론적 세계관에 우려를 나타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 나오는 그 유명한 ‘대심문관‘ 장에서 이반 카라마조프는 예수를 괴롭히는 한 스페인 심문관 이야기를 한다. 이 대목을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세속적 안위를 위해 의미를 포기해 버린 인간 군상을 묘사한다. 대심문관 장에는 이런 대목이 등장한다. "그대들은 세월이 지나면 인류가 성인들의 입을 빌려 더 이상 범죄는 없고 따라서 죄악도 없으며 오직 굶주림만 남았다고 선포하게 되리라는 걸 아는가?" 도스토옙스키는 독재자의 출현이 굶주림에 대한 해결책이 될 것이라고 넌지시 말한다. 굶주리는 사람들을 만족시키는 지도자는 신적 존재로 숭배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인간이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머지 하나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자유를 이용해 그분을 찾지 못할 것이라 생각했다. 그 대신 사람들은 소아증으로 회귀하는 동시에, 먹을 것에 대한 걱정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순종의 아늑함을 제공해 주는, 그리고 죄악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속삭여 주는 지도자들을 따라다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카라마조프 형제들』에서 이반 표도로비치는 "우리는 허약한 자들, 그저 애처로운 어린애들에 불과하지만 어린아이의 행복이 그 어떤 것보다 달콤하다는 걸 그들에게 증명할 것이다" 라고 말하는데, 이 구절은 도스토옙스키의 철학을 반영한 것이다. - P218

인간은 이성과 과학이 가져다줄 수 있는 이상의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존재들이다. 인간은 이성과 과학이 바라는 대로 개인의 이익만을 앞세우는 동물 같은 존재가 아니라 그 이상이다. 도스토옙스키는 유대 기독교적 가치와 그리스적 목적론과 단절된 과학적 유물론이 전 세계를 불살라 버리는 화마火魔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그 결과 피와 고통, 공포와 혼란을 동반한 허무의 시대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본 것이다. 도스토옙스키에게 있어 하나님의 죽음은 곧 인간의 죽음이었다. - P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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