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서운 그림 - 아름다운 명화의 섬뜩한 뒷이야기 무서운 그림 1
나카노 교코 지음, 이연식 옮김 / 세미콜론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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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 그림에 이끌려 구입한 책 [무서운 그림]

표지 그림은 사기 도박꾼을 라 투르의 「사기꾼」이라는 그림이다. 표지 제목처럼
여자의 표정이 무섭게 보인다. 한창 철모르는 부잣집 도련님을 사기 도박으로 속이려는
중이기 때문이다.
옆의 포도주 병을 들고 있는 하녀와 한패라 지금 도박 속임수를 위한 신호를 주고받는 중이다.

하지만 이 책에는 이런 노골적으로 무서워 보이는 그림 말고, 그림에 지식이 없는 독자에게
그림이그려진 시대적 배경에서 추측할 수 있는 무서움 혹은 작가 나름의 자의적 해석을
덧붙인 무서운해석을 해준다.

제목처럼 무서운 이야기만 있는 것은 아니고, 작가의 해석이 그림을 무섭게 풀어내려고
애쓰다 보니어색하거나 억지스러운 부분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쉽게 술술 읽히고 그림에 대한 여러가지 지식을 알 수 있어 즐거운 독서가 되었다.

책에 나온 몇가지 그림들을 소개해보기로 하자.

1번, 2번 그림은 발레리나로 유명한 드가의 그림들이다.
발레리나의 모습을 너무나 아름답게 묘사한 그림들이라 나도 평소에 좋아하는 그림들이었는데
이 그림에도 미처 몰랐던 사실들이 숨어있었다.

드가가 한창 발레리나를 그렸던 19세기 후반에는 발레리나들은 현재 우리가 생각하는
예술가와는 전혀 다른 대우를 받고 있었다.
발레를 공연하는 오페라 극장은 사교장의 성격이 강해, 부유한 귀족이나 신사들이
사교의 장소로 활용했다. 오페라 극장은 타락하여 상류층 남성을 위한 창관이 되었고,
그 창관에 상주하고 있는 창녀들은 바로 무용수였다는 것이다.
일하는 여성은 경멸당했던 시대에 가난한 소녀들은 조금이라도 나은 생활을 위해
상류층 남성들을 만나 신분상승을 할 수 있는 무용수라는 직업을 선택했다.
운이 좋아 후원자(요즘 말로 하면 스폰서)를 잘 잡으면 재정적인 후원을 받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위의 그림 두점에는 무대 뒤에, 혹은 막 뒤에 실크햇을 쓴 정장차림의 남성들이 보인다.
이들이 바로 그 후원자 즉 스폰서들인 것이다. 아름다운 발레리나를 그리던 드가조차도
이러한 하류계층인 무용수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어 그의 그림에 나타난 무용수들은
개성도 없고 누가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게 그려져 있다고 이 책의 작가는 말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보니 드가의 그림에는 무용수와 화가와의 따뜻한 인간적 교류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작가는 드가가 돈으로 산 무희들을 무대 뒤에서 바라보는 남성들을 아무런 비판의식
없이,이렇게 아름다운 그림으로 그려냈다는 사실이 이 그림을 무서운 그림으로 선정한
이유라고 말한다.

이 책에서 소개하는 또다른 그림은 틴토레토의 수태고지(4번 그림)이다.
많은 화가들이 즐겨 그린 수태고지는 책을 읽고있던 마리아에게 천사가 나타나
'성령의 힘으로 처녀의 몸인 네가 높으신 분 즉 하느님의 아들 예수를 임신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장면을 말한다.

대부분의 수태고지는 평화로운 장면으로 표현이 된다. 그러한 그림의 대표작으로
소개된 것이 프라 안젤리코의 수태고지(3번 그림)다.

하지만 작가는 틴토레토의 그림이 훨씬 현실적이라 평한다.
난데없이 평화롭게 책을 읽고 있는 처녀에게 갑작스럽게 초자연적인 천사가 나타났다는
사실만으로도 마리아는 놀라자빠질만한데...
그 천사가 전하는 소식이라는 것이 곧 요셉과 결혼을 앞둔 처녀 마리아에게
'처녀의 몸으로 임신했다.'는 사실이니..얼마나 황당했을까?

그래서 틴토레토의 그림에 나타나는 갑작스럽게 창으로 날아들어온 천사 가브리엘은
우람한 근육질로 표현되며, 그 뒤를 따라들어오는 작은 천사들은 한두명이 아니라
벌레처럼 꾸역꾸역해보일 정도로 숫자가 많다. 프라 안젤리코의 그림과는 달리
평화로운 기운보다는 무언가 위협적인 기운이 더 강하다.
마리아의 표정도 현실에 맞게 엄청 놀랍고, 당황스런 표정이 한가득이다.
마리아의 동작을 보면 '에그머니나'하는 마리아의 놀라는 소리가 들리는 듯 하다.

작가는 이 그림이 무서운 것이 바로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좋고 싫고를 따질 짬도 없이
초자연적인 존재에 의해 순식간에 성모가 되어버린 평범한 여인의 당황스러움과
놀라움 때문이라 말한다.

책을 읽고 보니 마리아의 입장에서 보면, 정말 그럴 듯하다고 생각된다.
이렇듯 이 책 곳곳에는 재미난 이야기들이 숨어있다.
강추는 아니어도, 시간이 날 때 재미로 읽어봐도 좋을 책이라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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