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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강머리 앤 세트 - 빨강머리 앤 100주년 공식 기념판
루시 M. 몽고메리 외 지음, 엘리자베스 롤린스 에펄리 엮음, 강주헌 외 옮김 / 세종(세종서적) / 2008년 10월
평점 :
절판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처음 읽기 전에는 '캐나다 작가 버지 윌슨이 과연 원작의 느낌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어린시절의 이야기를 잘 풀어나갈 수 있을까?' 내심 걱정이 많이 되었다.
어린시절 만화책들이 정식판이 아닌 해적판으로 출판되던 시절... 엉뚱하게도 오래도록 후속편이 나오지 않았을 경우 유령작가가 짠! 등장하여 본편과는 다른 엉뚱한 스토리의 이야기를 써서 만들었던 만화책들을 읽고 실망했던 적도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역시 캐나다 빨강머리 앤 협회가 공식 인정한 것처럼 버지 윌슨은 빨강머리 앤의 탄생부터 초록지붕 집에 오기 전까지 이야기를 다행히도 근사하게 풀어냈다.
주근깨 빼빼 마른 우리의 빨강머리 앤의 어린 시절은 루시 M 몽고메리의 원작에서 간간히 짧은 이야기로 밖에 등장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짧은 이야기들을 모아 살을 붙여 프린세스 에드워드 섬에 오기 전까지 불쌍한 고아로 살아온 앤의 눈물 겨운 인생 스토리가 이 책 안에 생생하게 살아있다.
이 책을 읽으면, 어떻게 앤이 어린 아이에 그토록 풍부한 어휘를 사용하게 되었는지, 다이애나의 동생 미니메이의 후두염을 낫게 만들었지, 타인을 바라보는 따뜻한 시선을 어떻게 가지게 되었는지, 또 나중에 부모가 모두 세상을 떠난 불쌍한 쌍둥이 남매 데이빗과 도라를 그토록 잘 키워낼 수 있었는지에 대한 배경을 알 수 있게 된다.
하지만 책에서 흘러나오는 어린 시절의 앤의 이야기는 내가 그 어린 앤을 데려가 키워주고 싶을 정도로 눈물 겹다. 고아이지만 끔찍히도 고아원에 보내지는 것이 두려운 앤은 술주정뱅이 토마스 아저씨부터 삶이 고단한 토마스 아주머니, 늘 지쳐있는 해먼드 부부와 함께 수많은 어린 아기들을 키워내며 살아 왔다. 짧은 인생에 걸맞지 않은 인생 역정은 어린 나이 비해 조숙한 우리의 앤을 만들어냈다.
그런 인생이 바탕이 되어있기에 사랑스러운 앤은 우리의 마음 속에 이렇게 영원히 살아있나보다.
책을 읽으면서 코끝이 찡해지기도 하는 경험을 여러번 했다. 네살부터 벌써 아이를 돌보고, 설겆이부터 빨래까지 집안일을 해야했던 앤의 모습은 마음껏 어리광을 피우고 자랐던 내 어린시절과 참으로 비교된다. 그래도 꿋꿋히 바르게만 자라주는 기특한 앤.
'빨강머리 앤이 어렸을 적에' 을 읽은 뒤 곧바로 다시 우리가 잘 아는 '빨강머리 앤'을 읽으니 더욱더 앤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물론 원작과는 연결되지 않는 부분도 눈에 보이기는 한다. 처음 프린스에드워드 섬에 도착해서 남자아이가 아니기 때문에 앤을 다시 고아원으로 보내기 위해 스펜서 부인에게 가기위해, 마릴라와 앤이 마차를 타고 갈 때 앤이 이야기했던 내용이나 원작에 살짝쿵씩 보이는 어린시절 앤의 이야기와는 약간 차이가 있긴 하다.
앤의 학교생활 기간이 생각보다 길다던가, 앤이 가지고 있는 손잡이 자꾸 빠지는 가방이라던가, 기도를 접해보지 못했던 모습, 기차에 치여죽었다는 토마스씨 등의 소소한 부분이 원작과는 사뭇 다르기도 하다. 하지만 이 정도는 그냥 애교로 봐주고 싶다. 기존 작품을 그대로 재현해내기에는 버지 윌슨도 아쉬웠을 것이다. 작가로서의 자기의 역량을 담고 싶어서 재미있는 요소들을 만들기 위해 원작과는 조금 다른 설정을 한 것이로 생각하고 싶다.(버지 윌슨도 빨강머리 앤의 더 어린시절 이야기를 위해서 원작을 수백번은 읽었을 것이므로...)
어린시절 이야기는, 빨강머리 앤을 이미 읽은 어린 자녀나 조카들에게도 선물하면 참 좋아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