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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와 벌 1 ㅣ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4
표도르 도스토예프스키 지음, 김연경 옮김 / 민음사 / 2012년 3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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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은 고전만의 매력이 있긴 하지만 그래도 역시 읽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장황한 대화라던지, 낯선 시대배경이라던지, 익숙하지 않은 말투라던지.
영화도 소설도 마찬가지로 배경이 되는 시대상이나 문화적 특성을 같이 알아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는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교양으로 들었던 ‘러시아 문학의 이해’가 참 재미있는 수업이었음을 다시 느낀다.
정확히는 모르지만 소설을 읽으면서 느껴지는 시대상을 말해보자면,
소위 좀 배웠다고 하는 어설픈 지식인들은 스스로를 대단히 특별하다고 여기며 자신만의 이론을 주장하며 ‘계몽’을 외치고,
반면 아직 계급 사회에서 벗어나지 못한 소시민들은 그런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과거의 향수에 젖어있는 상태. 정도일 것 같다.
그 사이에 시골에서 상트페테르부르크, 즉 도시로 올라와 대학에 다니다 가난에 못 이겨 학업을 중단하고
마치 ‘관’과 같은 골방에서 스스로에게 침잠하던 라스콜니코프(로지온, 로쟈)가
어떻게 ‘죄’를 짓고 어떻게 고뇌하다 어떻게 벌을 받는지를 그리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 있는가?’하는 질문에서부터 시작된다.
P.123
“(…)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라, 그리고 그 돈의 도움으로 나중에 전 인류와 공공의 사업을 위해 헌신하라. 네 생각은 어때, 하나의 하찮은 범죄가 수천 개의 선한 일로 무마될 수는 없을까? 하나의 생명을 희생시켜 수천 개의 생명을 부패와 해체에서 구원하는 거지. 하나의 죽음과 백 개의 생명을 서로 맞바꾸는 건데, 사실 이거야말로 대수학이지 뭐야! (…)”
P.469
저는 다만 저의 주된 사상을 믿을 뿐입니다. 그것은 바로, 인간이 자연의 법칙에 따라 대체로 두 부류로 나뉜다는 것입니다. 하나는 하급 부류(평범한 사람들), 즉 오로지 자신과 비슷한 자들을 생산하는 데만 기여하는, 말하자면 재료이며, 다른 하나는 본질적으로 사람들, 즉 자신이 속한 무리에서 새로운 말을 할 수 있는 천부적 재능이나 능력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중략) 두 번째 부류는 전부 법률을 넘어서는 자들, 그 능력에 따라 파괴자이거나 그런 경향이 있는 자들입니다. (중략) 하지만 자신의 이념을 위해 시체라도, 피라도 뛰어넘어야 한다면 그는, 제 생각으로는, 내면의 양심에 따라 스스로에게 피를 뛰어넘는 것을 허용할 수 있으되 그건 어디까지나 이념과 그것의 규모에 따른 것이라는 점-이 점을 유념하십시오.
인간은 두 종류, 평범한 자와 비범한 자로 나뉘며 그 중 비범하게 태어난 사람들,
즉 나폴레옹 같은 자들은 자신의 한 단계 높은 이념을 위해서라면 피를 봐서라도, 즉 누군가를 해하더라도
양심이 그것을 허락할 것이고 자신의 신념에 따라 의연하게 행동할 것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논제를 실험해보기 위해 라스콜니코프는 스스로의 논리가 아마도 완벽하다고 믿게되고 일은 저질러지게 된다.
그리고 문제는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범죄를 저지르고는 불안에 떨던 라스콜니코프는 예심판사의 의심을 사게되고
그의 심리적 압박을 받게 된다. 그 와중에 그는 가족을 위해 몸을 팔지만 누구보다도 선하며 타인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내놓을것만 같은 ‘소냐’를 만나게 된다.
내심 자신을 ‘비범한 자’일 것이라고 자신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사실 자신이 전혀 ‘비범한 자’의 영역에 들지 못함을 깨닫게 되고
괴로움에 몸부림치다 모든 사실을 소냐에게 털어놓는다.
우여곡절 끝에 결국 자살이냐 자수냐의 기로에서 소냐의 설득대로 자수를 선택한 라스콜니코프는 시베리아로 유형을 가게된다.
그리고 소냐 또한 그를 위해 기꺼이 유형지로 따라간다.
그런데 그렇게 벌을 받으면서도 그는 자신의 죄를 전혀 받아들이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P.395
여기에도 역시 그 나름으로 이론이 하나 있었는데-그저 그런 이론인데- 그것에 따르면 사람은, 그러니까 재료와 특별한 사람들, 즉 자신들의 드높은 처지 덕분에 법률의 구애도 받지 않을뿐더러 오히려 재료 혹은 쓰레기나 다름없는 나머지 사람들을 위해 직접 법률을 만드는 부류의 사람들로 나누어진다는 겁니다. (중략) 나폴레옹에 흠뻑 빠졌는데, 즉 원래는 몹시 많은 천재적인 인간들이 개개의 악은 개의치도 않았고 심사숙고할 것도 없이 그냥 넘고 지나갔다는 사실에 흠뻑 빠졌던 겁니다. 아무래도 자기도 천재적인 인간이라고 상상했던 모양, 즉 얼마간은 그렇게 확신했던 모양입니다. 자기는 이론을 정립할 줄은 알았지만 심사숙고할 것도 없이 그냥 뛰어넘는 법은 몰랐다, 그럴 능력이 없었다, 고로 천재적인 인간이 아니다, 하는 생각 때문에 심적인 괴로움이 컸으며 지금도 괴로워하고 있습니다.
P.486
삭발한 머리와 족쇄가 수치스러웠던 것은 아니다. 자존심에 심한 상처를 입었고 그 상처받은 자존심 때문에 병이 났던 것이다. 오, 만약 스스로 죄를 인정할 수 있었다면 얼마나 행복했을까! 그랬다면 모든 것을, 수치와 치욕마저도 견뎌 낼 수 있었으리라. 하지만 자신을 아무리 엄중하게 심판하고 양심을 모질게 다져봐도 지난 일에서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 외에는 유달리 끔찍한 죄를 도무지 발견할 수 없었다. 그가 수치스러워한 것은 다름 아니라 그, 즉 라스콜니코프라는 인간이 운명의 어떤 맹목적인 선고에 따라 그토록 맹목적이고 허망하고 먹먹하고 어리석게 파멸했으며 만약 스스로를 조금이라도 진정시킬 마음이 있다면 저 무슨 선고의 ‘어처구니없음’과 타협하고 그것에 굴복해야 한다는 점이었다.
P.487
그래, 나의 행동이 무엇 때문에 그들에게 그토록 추악하게 여겨지는 것일까?’ 그가 스스로에게 말했다. ‘그것이 악행이기 때문에? ‘악행’이라는 말은 대체 무엇을 뜻하는가? 나의 양심은 평온하다. 물론, 형사상의 범죄를 저질렀다. 물론, 법조항이 파괴됐고 피를 보았으니, 뭐 그렇다면 법조항에 대한 대가로 내 머리를 가져가시라……그걸로 충분하지 않은가!
자신의 죄는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실책밖에 되지않는다고 생각한다.
여기서 솔직히 사이코패스가 아닌가 생각할 정도였다…
그렇게 괴로워하던 라스콜니코프는 유영지에 갇힌 여러 사람들이 자신과 다름을 관찰하고
어떤 암시를 주는 꿈을 꾸게 된다.
그러다 어느날 갑자기 노역을 하러 온 곳에서 멀리 초원과 강에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던 라스콜니코프는
그를 따라 혹독한 유영지 까지 따라와준 소냐가 손을 내미는 순간 무언가를 깨닫게 된다.
P.498
그는 오직 느낄 따름이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
인간을 비범한 자와 그렇지 않은 자로 나누는 ‘변증법 이론’ 대신에 ‘삶’이 도래했다는.
범죄 이전과 이후로 끊임없이 이어지는 방황과 심리전 그리고 감정의 흐름을 따라가다보면 나까지 같이 피폐해지는 느낌이었다.
아주 오래된 고전임에도 지금에 대입해보아도 전혀 녹슬지 않은 것 같은 주제의식과 상황설정이라는 점이 또 참 놀랍다.
또 여기에 등장하는 인간군상 하나하나가 참 흥미로웠다. 다만
'그는 오직 느낄 따름이었다. 변증법 대신에 삶이 도래했고, 의식 속에서는 뭔가 완전히 다른 것이 생겨나야 했다.'
는 문구를 아직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 유감이다. 솔직히 말하자면 그 문장 전까지는 그럭저럭 잘 따라갔는데
이 문장 전후의 라스콜니코프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쫓아갈 수 없었다. 해설을 찾아보는 것도 좋지만
다시 읽어보며 다시 곱씹는 것도 좋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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