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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제7회 젊은작가상 수상작품집
김금희 외 지음 / 문학동네 / 2016년 4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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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들을 모아놓은 소설집. 단편이지만 가볍게 읽을만한 것은 아니었다.
단편이라고 하면 짧아서 쉽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단편 소설이 더 어렵지 않을까?
그 짧은 이야기 안에 서사, 구조, 인물, 주제의식, 미학을 다 담아내야 하니까.
한 작가의 소설집은 읽어봤어도 이렇게 여러 작가의 소설이 담긴 소설집은 처음이었다.
7편의 단편 소설들이 들어있는데 각각 다른 작가의 각각 전혀 다른 느낌의 소설이라 소설책 7권을 연달아 읽은 느낌이다.
소설이 하나씩 넘어갈 때마다 온도차가 얼마나 심한지…
감상도 소설마다 적자니 7배라 여기 다 적진 못하겠고 직접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D
각 단편마다, 그리고 책에 끝자락에도 해설이 왕창 붙어있는데 (소설 반! 해설 반!)
읽다보니 소설도 소설이지만해설이란게 생각보다 어렵고 대단한 것 같다.
숨겨진 구조를 파악하고 저자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끄집어내야 하니 그것도 보통일이 아닐 것 같다.
「너무 한낮의 연애」 「선릉 산책」 「알바생 자르기」 「새해」가 특히 기억에 남는다.
그들의 이 후, 이전 소설들이 궁금하고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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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18
이제 필용이 상대해야 할 것들은 시설이 아닌가? 시설들에게는 말이 없고 시설들에게는 응시가 없다.
시설물들에게는 관계가 없고 시설들에게는 터치가 없다. 필용의 얼굴에서는 서서히 무언가가 지워지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양 입가를 팽팽하게 견인하고 있던 긴장이 사라졌다.
그 긴장은 언제라도 무슨 존칭, 무슨 웃음, 무슨 헛기침, 무슨 지시, 무슨 권유, 무슨 답변 등을 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당분간은 필요 없었다.
P.25
“아니, 그러니까 네가 어제 말한 그것 말이야. 오늘도 지속되고 있느냐고?”
그렇게 말하고 나서 필용은 자신이 긴장하는 걸 느꼈다. 왜 긴장하나? 필용은 그런 자신이 어처구니없었다.
“그렇죠, 오늘도.”
양희는 어제처럼 무심하게 대답했는데 그 말을 듣자 필용은 실제로 탁자가 흔들릴 만큼 몸을 떨었다.
“오늘도 어떻다고?”
“사랑하죠, 오늘도.”
필용은 태연을 연기하면서도 어떤 기쁨, 대체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는 기쁨을 느꼈다. 불가해한 기쁨이었다.
P.53
자기연민도, 자기냉소도 없이, 그저 ‘살아간다는 것’. 그것을 비웃이 않는 태도.
김금희의 이번 소설 속 목소리가 작품 면면에 부여하는 리듬은 그와 같은 삶을 대하는 태도를 구현하기 위해 바쳐진다.
P.119
한두운은 나를 빤히 봤다. 기분 탓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 그의 얼굴에서 어떤 반응이 비쳤다.
여차하면 놓칠 뻔한 작은 미소가 고요히 떠올랐다 빠르게 사라졌다.
이 생각은 스스로 생각해도 상당한 비약이지만 나는 그가 내 마음을 꿰뚫어본 다음에 웃은 것이라는 근거 없는 판단을 했다.
응답하는 눈빛이랄까. 그런 생각이 들자 기분이 좀 이상해졌다.
P.181
혜미가 회사에서 “그 아가씨” 혹은 “여자아이”라고 불리며, 언제든 더 싼 노동에 의해 손쉽게 대체될 수 있다는 현실이야말로 이 사태의 본질인데 말이다.
P.203
어쩌면 소설이라는 도구는 인간 군상 속에 매몰되어 있는 개인을 입체적으로 발굴해내는 흙손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로 입체적 개인을 평면에 눌러 인간 군상 속에 숨기는 압착기인지도 모르겠다.
P.297
오늘날 문학은 현실이 가상을 잃은 황무지일지언정 나름의 방식으로 그럴듯한 가상을 직조해내야 하는 가련한 처지에 놓여 있다.
‘이쪽으로 이렇게 가면 확실하다’는 식의 물증 하나 없는데도 마치 확신에 판 듯이 모래먼지를 일으키며 꿋꿋이 문장들의 발자국을 옮겨야 하는 셈인데,
미치지 않고서야 그 누가 있지도 않은 확신에 사로잡혀 걸음을 옮기겠는가?
P.311
김금희의 「너무 한낮의 연애」의 핵을 틀어쥔 인물은, 이 사회에 ‘필수적인 용도’를 갖기 위해 ‘필사적으로 용’을 쓰는 남자,
그럼에도 왠지 ‘필요’를 비웃는 듯한 뉘앙스의 이름을 가진 남자 ‘필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