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대가족, 오늘만은 무사히!
나카지마 교코 지음, 승미 옮김 / 예담 / 2016년 6월
평점 :
품절


◆◆◆



이혼한 미혼모에 개인파산의 중년, 알츠하이머를 앓는 노모와 그런 노모를 간호하는 노부부,

히키코모리 장남과 왕따가 될까봐 전전긍긍하는 손자까지.

한 인물의 이야기만 해도 하나씩 소설이 나올 것 같은 이 구구절절한 가족이 바로 어쩌다 (다시)대가족이 된 한 가족이다.


이들의 사정을 듣기만 해도 벌써 우울해지고 음울할 것 같지만 막상 읽어보면 의외로(?) 그리 심각하지 않은 긴장감 없는 분위기다.

그렇다고 생각없이 유쾌하기만 하냐면 또 그렇지도 않다.


P.230


“같이 살다 보니까 너무나 사소한 일에 부글부글 끓게 되더라고요. 내가 이렇게 인성이 덜된 사람이었나 싶기도 하고,

저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져요.”


“그건 오히려 여사님이 고상한 분이시라 그런 겁니다. 예술에 대해 논할 때 쓰는 표현 중에

신은 사사로운 부분에 깃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중요한 사실은 모두 작은 부분에서 드러나는 법이지요.

그걸 간파할 수 있는 것은 정신이 섬세하시기 때문일 겁니다.”


멱살잡이가 일어나진 않더라도 이 가족도 나름대로의 갈등을 겪고 있다. 

비단 이 가족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로 다툰다’는 것은 어느 가정이나 있을 것이다.

남들이었다면 괜찮았을 행동이, “‘내’가족이라면 이래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 때문에

사소하게 넘어갈수도 있는 부분들도 크게 느껴지지 않나 싶다.


이쯤에서 ‘가족이라는 병’이라는 책의 문구가 떠오른다


가족이라는 병 中


P.6


절친한 친구나 친분이 깊은 지인과는 서로를 이해하려 애쓰기 때문인지, 오히려 대화가 잘 통하고 잘 아는 경우도 많다.

정에 끌리지 않고 이성으로 판단하니까 정확하게 파악할 수도 있다.

그런 반면, 한 지붕 하래 긴 세월을 함께 산 가족에 대해서는 과연 뭘 알고 있는지 모호하다.


P.13


그러니 단란하고 화목한 가족이라는 환상이 아니라, 한 사람 한 사람이 개인의 인격을 되찾는 것,

그것이 진정 가족이 무엇인지를 아는 지름길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갈등은 존재하지만, 이 골치 아픈 대가족은 서로 부대끼면서 점점 변화하고 맞춰가고 결국 스스로 갈 길을 찾아 나아간다.

중년의 나이에 실직, 파산하고 장인, 장모 집에 얹혀사는 사위가 지금까지 해온 일이 자신의 일이 아니었음을 깨닫고

자신의 적성이 무엇일까 찾아가고, 뜻하지 않은 이혼과 임신으로 막막해진 둘째 딸이 홀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다짐하고,

있는 듯 없는 듯 집안에서 세상과 거리를 두고 살던 히키코모리 장남이 인연을 만나면서 조금씩 세상 밖으로 나가려고 하는 등

분명 그 골치 아픈 가족들이 맞지만 어딘가 조금씩 변한 모습을 이야기 끝에서 찾아볼 수 있다.


과연 그들이 가족이라는 울타리 안에 있지 않았다면, 오로지 의지할 곳이 그들 자신 뿐이었다면

그런 상황 속에서 그렇게 씩씩하게 나아갈 수 있었을까?

(좀 못미덥긴 하지만…) 가족들의 서포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들이 휘둘리지 않고 자신의 길을 걸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혼이나 파산 등 어쩌면 일생일대의 실패라고 할 수 있는 폭풍을 만나 밀려나온 개개인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피난처로 ‘가족’을 택했던 것 아닐까 싶다.


너무 많은 이야기를 담아내려다(가족 한 명당 하나의 소설이 나올만큼) 보니

약간 싱겁게 끝난듯한 느낌이 있지만 그래도 재미있는 소설이었다.



◆◆◆









P.53


지금 생각하면, 이 기회를 놓치면 영영 아기를 낳지 못할 수 있다는 강박관념도 문제였다.

당연한 말일 수도 있지만, 모든 일은 그렇게 ‘계획대로’흘러가지 않기 때문이다.

그걸 알면서도 도모에는 계획을 좋아했다.

학창 시절에 사귀었던 남자친구는 “너는 계획 중동이야”라는 말을 남기고 떠나갔다. 그때 그 말을 좀 더 곱씹어봤더라면 좋았을 텐데.

도모에는 연애든 뭐든 혼자 결정하는 것을 좋아했다. 연애할 남자를 결정했고, 먼저 좋아한다고 고백했고, 관계를 정리하는 것도 도모에였다.

도모에는 데이트 장소와 결혼식 날짜마저 혼자서 결정했다.

의지를 가지고 노력만 한다면 웬만한 것들은 다 손에 넣을 수 있다고 생각했고, 실제로 모두 다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아기만 빼면.


 


P.60


물론 어쨌건 간에 도모에와는 상관없는 일이었다.

물 한잔을 단숨에 들이켜고 도모에는 별 생각 없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내뱉었다.

“태아여, 저것이 네 아비다!”


 


P.80


인간에게는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보다 해결하고자 하는 마음이 있는지가 중요한 것이다.


 


P.107


“지금 무슨 얘기를 하는 거야?


“이 집안 남자들은 모두가 다 그렇다고. 의지라는 것이 말할 수도 없을 만큼 약해.

두 갈래로 나누어진 길이 있는데 하나는 쉬운 길이고 또 하나는 어려운 길이라면 저들은 틀림없이 쉬운 길을 선택할 거야.

물이 낮은 곳으로 흘러가듯 자연스럽게 흘러가버리는 거지.”


 


P.143


가쓰로는 이 집안의 엄연한 장남이다. 딸 둘이 줄줄이 태어난 후에 갖게 된 대망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기대가 있어야 했다. 있을 법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았다.


 


P.223


딸들은 엄마가 좀 쉬길 바라는 마음이었겠지만, 언제 쉬고 언제 외출할지는 내 마음대로 결정하라 수 있도록 신경을 꺼줬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자기들이 쉬는 날이라서 엄마는 외출하라고 하는 건 순서가 틀려먹었다는 말이다.


 

 

P.303


가족의 한 일원이 다른 사람의 일을 속속들이 알고 있을 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저는 알고 있습니다.

알고자 하면 일개 고양이마저도 주인의 지병부터 버릇, 그의 친구들의 연애 사정까지 모두 알 수 있지요. (중략)


여기까지 쓴 후에 류타로는 자신이 쓴 글을 몇 번이나 다시 읽으며 기쁨에 젖어 들었다.

그리고 프롤로그는 여기서 마치고 이제 본편으로 들어가볼까, 하고 생각한 순간 류타로는 난관에 부딪히고 말았다.


그는 알지 못했다.


어렴풋이는 알고 있지만, 정확한 내막은 알 수 없었다.

첫째 딸네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둘째 딸과 그 이상한 머리 색깔의 남자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무엇보다 아들은 어떻게 해서 그 아가씨에게 접근했는지.

모든 것은 베일에 싸여 있었고, 그래서 류타로는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다.


“뭐야, 이건 고양이 이하잖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