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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판본 하늘과 바람과 별과 詩 - 윤동주 유고시집, 1955년 10주기 기념 증보판 ㅣ 소와다리 초판본 오리지널 디자인
윤동주 지음 / 소와다리 / 2016년 1월
평점 :
◆◆◆
序 詩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기를,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나는 괴로워했다.
별을 노래하는 마음으로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그리고 나한테 주어진 길을
걸어가야겠다.
오늘밤에도 별이 바람에 스치운다.
너무도 유명한 그 시! 바로 그 시!
윤동주 시인이라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시. 그리고 우리에게 너무도 익숙한한컴 타자연습의 바로 그 ‘별 헤는 밤’도 떠오른다.
‘모든 죽어가는 것을 사랑해야지’.. 죽어갈 수 있는 것은 오직 살아있는 것뿐이니 결국 모든 살아있는 것을 사랑해야 한단 말.
역시 언제 들어도 멋있는 문구다.
윤동주 시인이라 하면 서시와 별 헤는 밤 밖에 몰랐는데 이 시집에는 그만큼 좋은 시들이 가득 있었다.
초판본이다보니 한자가 많아서 처음에 일일이 음을 달아놓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대부분 쉬운 한자들이라 그냥 읽으려면 읽을 수도 있겠지만 한자에 신경쓰다보니
읽다가 자꾸 끊겨 감상을 할 수가 없어서 음을 미리 다 써버렸다.
서시에서도 알수있지만 섬세한 표현과 특유의 분위기를 다른 시 곳곳에서도 찾을 수 있었다.
바다의 물결을 잔주름 치마에 비유한다거나 황혼이 물드는 것을 ‘하루가 검푸른 물결에 흐느적 잠긴다’고 표한한다거나
햇빛이 문틈으로 비쳐들어오는 것을 ‘햇살은 미닫이 틈으로 길죽한 일자를 쓰고…지우고…’ 라고 표현한다거나
반딧불을 부서진 달조각으로 표현한 것 등등...표현이 참 예쁘다.
1~3장까지는 이렇게 여운이 길고 왠지 쓸쓸한 분위기였는데 4장은 또 달랐다.
전부 한글로 쓰여졌고 딱딱 떨어지는 음률이 동시 같은 느낌이었다.
앞에 시들과 대조되어 그런 분위기가 더욱 선명했는데 그게 또 왠지 더 슬펐다.
그리고 마지막 5장. 짧은 수필 같은 분위기의 글들이 몇 편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방황과 고뇌, 고민들…그리고 좀 더 구체적인 생각들을 엿볼 수 있었다.
윤동주 시인의 생애에 대해 좀 더 알고싶은 마음도 들었다.
그래서 책도 읽은김에 영화 ‘동주’도 보게되었다. 흑백인 영화에 처음엔 당황했지만
영화를 보고나니 그냥 ‘그렇구나’하고 넘겼던 문구들이 ‘아…이런 마음이었겠구나’하면서 이해가 갔다.
책을 읽은 분들이라면 저 영화도 한번쯤 보면 좋을 것 같다.
물론 당연 영화도 완전 사실은 아닐 것이고, 책 한 권 읽었다고 그 사람에 대해 다 알 수는 없지만
그래도 시를 통해 어떤 사람일지 어렴풋이 알 수 있게된 것 같다.
마무리는 밥먹고 책을 꾸벅꾸벅 졸면서 읽다가 뜨끔했던 시!
P.84
산협의 오후 – 윤동주
내 노래는 오히려
섧은 산울림.
골짜기 길에
떨어진 그림자는
너무나 슬프구나
오후의 명상은
아- 졸려.
◆◆◆
P.6
자화상(自畵像) -윤동주
산모퉁이를 돌아 논가 외딴 우물을 홀로 찾아가선
가만히 들여다봅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습니다.
그리고 한 사나이가 있습니다.
어쩐지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가엾어집니다.
도로가 들여다보니 사나이는 그대로 있습니다.
다시 그 사나이가 미워져 돌아갑니다.
돌아가다 생각하니 그 사나이가 그리워집니다.
우물 속에는 달이 밝고 구름이 흐르고 하늘이
펼치고 파아란 바람이 불고 가을이 있고
추억처럼 사나이가 있습니다.
P.36
길 –윤동주
잃어버렸습니다
무얼 어디다 잃었는지 몰라
두 손이 주머니를 더듬어
길에 나아갑니다.
돌과 돌과 돌이 끝없이 연달아
길은 돌담을 끼고 갑니다.
담은 쇠문을 굳게 닫어
길 우에 긴 그림자를 드리우고
길은 아침에서 저녁으로
저녁에서 아침으로 통했습니다.
돌담을 더듬어 눈물짓다
쳐다보면 하늘은 부끄럽게 푸릅니다.
풀 한포기 없는 내가 이 길을 걷는 것은
담 저쪽에 내가 남어 있는 까닭이고,
내가 사는 것은 다만,
잃은 것을 찾는 까닭입니다.
P.46
사랑스런 추억 – 윤동주
봄이 오던 아침, 서울 어느 쪼그만 정거장에서
희망과 사랑처럼 기차를 기다려,
나는 플랫폼에 간신이 그림자를 떨어뜨리고,
담배를 피웠다.
내 그림자는 담배 연기 그림자를 날리고
비둘기 한 때가 부끄러운 것도 없이
나래 속을 속, 속, 햇빛에 비춰 날았다.
기차는 아무 새로운 소식도 없이
나를 멀리 실어다주어,
봄은 다 가고---동경 교외 어느 조용한 하숙방에서, 옛 거리에 남은 나를 희망과 사랑처럼 그리워한다.
오늘도 기차는 몇 번이나 무의미하게 지나가고
오늘도 나는 누구를 기다려 정거장 가차운 언덕에서 서성거릴게다.
---아아 젊음은 오래 거기 남아 있거라.
P.50
쉽게 씨워진 시 – 윤동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시인(詩人)이란 슬픈 천명(天命)인 줄 알면서도
한 줄 시(詩)를 적어 볼까.
땀내와 사랑내 포근히 품긴
보내 주신 학비 봉투(學費封套)를 받아
대학(大學) 노트를 끼고
늙은 교수(敎授)의 강의(講義) 들으러 간다.
생각해 보면 어린 때 동무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전(沈澱)하는 것일까?
인생(人生)은 살기 어렵다는데
시(詩)가 이렇게 쉽게 씌여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다.
육첩방(六疊房)은 남의 나라
창(窓) 밖에 밤비가 속살거리는데,
등불을 밝혀 어둠을 조금 내몰고,
시대(時代)처럼 올 아츰을 기다리는 최후(最後)의 나.
나는 나에게 작은 손을 내밀어
눈물과 위안(慰安)으로 잡는 최초(最初)의 악수(握手).
P.56
참회록 – 윤동주
파란 녹이 낀 구리 거울 속에
내 얼굴이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왕조의 유물이기에
이다지도 욕될까.
나는 나의 참회(懺悔)의 글을 한 줄에 줄이자.
---만(滿) 이십사년 일개월을
무슨 기쁨을 바라 살아왔던가.
내일이나 모레나 그 어느 즐거운 날에
나는 또 한 줄의 참회록을 써야 한다.
---그때 그 젊은 나이에
왜 그런 부끄런 고백을 했던가.
밤이면 밤마다 나의 거울을
손바닥으로 발바닥으로 닦아보자.
그러면 어느 운석 밑으로 홀로 걸어가는
슬픈 사람의 뒷모양이
거울 속에 나타나 온다.
P.66
아우의 인상화 – 윤동주
붉은 이마에 싸늘한 달이 서리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발걸음을 멈추어
살그머니 앳된 손을 잡으며
너는 자라 무엇이 되려니」
사람이 되지」
아우의 설은 진정코 설은 대답이다.
슬며시 잡았던 손을 놓고
아우의 얼굴을 다시 들여다본다.
싸늘한 달이 붉은 이마에 젖어
아우의 얼굴은 슬픈 그림이다.
P.84
산협의 오후 – 윤동주
내 노래는 오히려
섧은 산울림.
골짜기 길에
떨어진 그림자는
너무나 슬프구나
오후의 명상은
아- 졸려.
P.112
가슴 1 - 윤동주
소리 없는 북,
답답하면 주먹으로
뚜다려 보오.
그래 봐도
후----
가아는 한숨보다 못하오.
P.122
삶과 죽음 –윤동주
삶은 오늘도 죽음의 서곡을 노래하였다.
이 노래가 언제나 끝나랴
세상 사람은-
뼈를 녹여내는 듯한 삶의 노래에
춤을 춘다
사람들은 해가 넘어가기 전
이 노래 끝의 공포를
생각할 사이가 없었다.
하늘 복판에 알새기듯이
이 노래를 부른 자가 누구뇨
그리고 소낙비 그친 뒤같이도
이 노래를 그친자가 누구뇨
죽고 뼈만 남은
죽음의 승리자 衛人들!
P.175
도리켜 생각컨대 나무처럼 행복한 생물은 다시 없을 듯 하다. 굳음에는 이루 비길데 없는 바위에도 그리 탐탁치는 못할망정 자양분이 있다 하거늘 어디로 간들 생의 뿌리를 박지 못하며 어디로 간들 생활의 불평이 있을소냐, 칙칙하면 솔솔 솔바람이 불어오고, 심심하면 새가 와서 노래를 부르다 가고, 촐촐하면 한줄기 비가 오고, 밤이면 수많은 별들과 오손도손 이야기 할수 있고 – 보다 나무는 행동의 방향이란 거치장스런 과제에 봉착하지 않고 인위적으로든 우연으로서든 탄생시켜 준 자리를 지켜 무진무궁한 영양소를 흡취하고 영롱한 햇빛을 받아드려 손쉽게 생활을 영유하고 오로지 하늘만 바라보고 뻗어질수 있는 것이 무엇보다 행복스럽지 않느냐.
이밤도 과제를 풀지 못하야 안타까운 나의 마음에 나무의 마음이 점점 옮아오는돗 하고, 행동할수 이는 자랑을 자랑치 못함에 뼈저리듯 하나 (하략)
P.182
나는 세계관, 인생관, 이런 좀더 큰 문제보다 바람과 구름과 햇빛과 나무와 우정, 이런것들에 더 많이 괴로워해 왔는지도 모르겠습니다.
P.183
내 상도 필연코 그 꼴일텐데 내눈으로 그 꼴을 보지 못하는 것이 다행이다. 만일 다른 사람의 얼굴을 보듯 그렇게 자주 내 얼굴을 대한다고 할 것 같으면 벌서 요사하였을런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