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앞의 생 (특별판)
에밀 아자르 지음, 용경식 옮김 / 문학동네 / 2003년 5월
평점 :
품절


2016-015

2016.04.11 - 04.15

이 책은 소설 이외에도 작가의 연보와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이라는

작가의 유서 비슷한 것도 담겨있다.

이 에밀 아자르의 탄생 배경과 활동도 참 흥미로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조경란 소설가의 서평도 실려있어서 더 좋았다.

<책소개>

1980년 의문의 권총 자살로 생을 마감한 프랑스 작가 로맹 가리와 동일 인물인 에밀 아자르. 자살 후, 그가 남긴 유서를 통해 에밀 아자르는 로맹 가리의 필명이었으며,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간한 네 편의 소설과 한 편의 소설도 그가 쓴 것임이 밝혀졌다. 이 책은 로맹 가리가 1975년 에밀 아자르의 이름으로 출간한 두 번째 소설로 프랑스 공쿠르상 수상에 빛나는, 어린 소년 모모의 슬프지만 아름다운 성장 이야기다. 작가는 악동 같지만 순수한 어린 주인공 모모를 통해 이 세상 누구도 눈길을 주지 않는 밑바닥 삶을 살아가는 불행한 사람들의 슬픔과 고독과 사랑을 그리고 있다.

[인터넷 교보문고 제공]

<저자소개>

참전 중에 쓴 첫 소설 『유럽의 교육』으로 1945년 비평가상을 수상하며 작가로서의 명성을 얻었다. 같은 해 이등 대사 서기관으로 프랑스 외무부에서 근무하였고, 이후 프랑스 외교관으로 불가리아, 페루, 미국 등지에 체류하였다. 1956년에는 『하늘의 뿌리』로 프랑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공쿠르 상을 수상한 바 있다.

그러나 공쿠르 상 수상에 대해 프랑스 문단과 정계는 그를 혹독하게 평가했다. 이후로도 로맹 가리에 대한 평단의 평가가 박해지자, 그는 '에밀 아자르'라는 필명으로 『대 아첨꾼』이라는 책을 출간했는데 당시 프랑스 문단은 이 새로운 작가에 열광했다. 1975년 '에밀 아자르'라는 이름으로 『자기 앞의 생』을 발표하여 한 사람이 한번만 수상할 있다는 공쿠르상을 다시 한 번 수상하였다.

원래 공쿠르 상은 같은 작가에게 두 번 상을 주지 않는 것을 규정으로 하고 있는데, 그가 생을 마감한 후에야 그가 남긴 유서에 의해 로맹 가리와 에밀 아자르가 동일인물이었음이 밝혀지면서 평단에 일대 파문을 일기도 했다.

당시 로맹 가리는 재능이 넘치는 신예 작가 에밀 아자르를 질투하는 한 물 간 작가로 폄하되었으며, 두 사람에 대한 평단의 평은 극과 극을 달렸다.

[예스24 제공]

◆◆◆

‘자기 앞의 생’ 참 많이 들어 본 유명한 책이다. ‘유명한 책=어렵다’는 편견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프랑스 소설’이라는 것부터 좀 낯설었다.

읽기 어려울 거라는 생각과 달리 소설은 술술 읽혔다. 소설의 주인공인 열살 모모의 시선을 따라 이야기가 전개된다.

창녀의 아이로 태어나 로자 아주머니에게 맡겨져 키워진 모모. 부모가 누군지, 어떤 사람들인지도 모르고 자란 모모는 늘 자기자신에 대해

의문을 가지고 관심을 끌기 위해 말썽을 일으킨다.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는 별 볼일 없는 늙은 유태인 여자 로자 아주머니. 젊은 시절 아우슈비츠 수용소에 끌려갔다 풀려나

창녀일로 벌어먹고 살다가 나이가 들어서는 창녀의 아이들을 맡아 기르고 있는 95kg이 넘는 거구의 못생긴 노파이다.

그리고 그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처지의 다양한 이웃들까지.

등장하는 인물만 봐도 결코 밝고 행복한 소설은 아니다. 그런데도 읽는 내내 드는 생각은 막연히 슬프다는 느낌이 아니라

‘울어야 할지 웃어야 할지…’하는 먹먹함이었다.

제목에서부터 알겠지만 에밀 아자르가 말하는 것은 生이다.

그런데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를 보면 도저히 생이 아름답지가 않다. 젊어서도 늙어서도 온갖 고생을 다하던 로자 아주머니는 병이 들어

살아있는 자체가 고통이 되고만다. 모모는 살아갈 날이 많지만 부모도 없고 가족도 없고 그를 돌봐주던 로자 아주머니는 죽어가고

앞날은 막막하기만 하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돌봐주는 것은 그들과 별로 다를 것 없는 처지의 이웃들이다. 그런 로자 아주머니를 끝까지 보살피는 것은 모모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P.337

무시당하는 사람, 모욕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본성의 보호문제가 인간애라는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조경란(소설가) 서평

P.353

가장 프랑스적인 감수성은 소소한 삶의 굴절과 결을 주목하면서 그 아래에서 인간 본질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었고 그들이 표현해낸

것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이지만 결국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기 때문이었다.

모모와 로자 아주머니의 삶이 슬프고 고달팠기 때문에 위에 이 말들이 더 절실히 와 닿았던 것 같다.

결국 그 어떤 생이라도, (모모나 로자 아주머니의 생이라 할지라도) 생을 아름답게 만드는 것은 작가가 말 한대로 바로 ‘인간애’,

다른 말로 ‘사랑’이 아닌가 싶다. 하밀 할아버지의 말처럼 인간은 사랑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다.

95kg이 넘는 거구에 병들어 아무것도 못하는 못생긴 유태인 노파를 그 누구보다도 진심으로 사랑하는 모모가 바로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이 소설은 모모가 이렇게 말하며 끝난다. '사랑해야 한다.'

◆◆◆

P.26

사람들은 그녀가 냉정하다고들 했지만, 세상에 그녀를 돌봐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 혼자 육십오년 동안 온갖 풍상을 견디어왔으니 때로는 그녀를 용서해줘야 한다.

P.63

내가 경험한 바로는, 사람이란 자기가 한 말을 스스로 믿게 되고, 또 살아가는 데는 그런 것이 필요한 것 같다.

P.94

암만 생각해도 이상한 건, 인간 안에 붙박이장처럼 눈물이 내포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인간은 원래 울게 돼 있는 것이다. 그런 점을 염두에 둬야 한다. 인간을 만드신 분은 체면 같은 게 없음이 분명하다.

P.118

나는 시간이 흐르길 기다리며 어느 집 대문 아래 앉아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세상의 어느 것보다도 늙었으므로 걸음걸이가 너무 느렸다.

P.120

나는 마약 같은 너절한 것을 즐기는 녀석들을 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행복해지기 위해서 생의 엉덩이를 핥아대는 짓을 할 생각은 없다. 생을 미화할 생각, 생을 상대할 생각도 없다. 생과 나는 피차 상관이 없는 사이다.

P.147

아줌마는 생이 자기에게서는 별 재미를 못 보았다고 우스갯소리를 하곤 했는데 지금이 바로 그때였다.

P.152

열다섯 살 때의 로자 아줌마는 아름다운 다갈색 머리를 하고 마치 앞날이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열다섯 살의 그녀와 지금의 그녀를 비교하다보면 속이 상해서 배가 다 아플 지경이었다. 생이 그녀를 파괴한 것이다. 나는 수차례 거울 앞에 서서 생이 나를 짓밟고 지나가면 나는 어떤 모습으로 변할까를 상상했다.

P.172

나는 처음에는 그녀가 하느님이 두려운 나머지 종교의식 없이 매장됨으로써 하느님을 벗어나보려는가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게 아니었다. 그녀는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았다. 이미 때가 너무 늦었고,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으므로, 이제 신이 그녀에게 용서를 구하러 올 필요는 없다고 아줌마는 말했다.

P.178

“하밀 할아버지, 하밀 할아버지!”

내가 이렇게 할아버지를 부른 것은 그를 사랑하고 그의 이름을 아는 사람이 아직 있다는 것, 그리고 그에게 그런 이름이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주기 위해서였다.

P.236

여러분도 알겠지만, 한 사람이 다른 한 사람에게 해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나도 미소를 짓고 있었지만, 속으로는 죽을 맛이었다. 이건 아닌데, 생이 이런 건 아닌데, 내 오랜 경험에 비춰보건대 결코 아닌데 하는 생각이 문득문득 뇌리를 스쳐갔다.

P.256

생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것은 아니다.

P.279

지금 생각해보면 그녀는 무척 아름다웠던 것 같다. 아름답다는 것은 우리가 누구를 어떻게 생각하는가에 달려 있는 것이다.

/에밀 아자르의 삶과 죽음

P.327

어쩌면 나는 무의식중에 거기에 동의했는지도 모르겠다. 그것이 더 편한 일이니까. 말하자면 틀은 완전히 만들어져 있었고, 나는 그곳에 안주하기만 하면 되었던 것이다.

P.337

[하늘의 뿌리]와 [그로칼랭]은, 겉으로는 아주 달라 보이지만, 두 소설은 모두 고독하다고 비명을 지르는 한 사람의 목소리이다. 중략

[그로칼랭]에서와 마찬가지로 [하늘의 뿌리]에서도, 무시당하는 사람, 모욕당하는 사람이 없도록 하기 위한 ‘본성의 보호’ 문제가 인간애라는 차원에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 조경란(소설가) 서평

P.353

‘가장 프랑스적인 감수성은 소소한 삶의 굴절과 결을 주목하면서 그 아래에서 인간 본질의 문제를 제기하기 때문’이었고 그들이 표현해낸 것은 고독하고 쓸쓸한 삶의 풍경이지만 결국 가장 큰 관심의 대상은 삶에 대한 무한하고도 깊은 애정이기 때문이었다.

P.354

‘살아야 했다구. 알아들었어? 물론, 너나 나나 도대체 어디에 쓸모가 있었겠니? 그래도 살아야 할걸 그랬다구. 뭣 때문이냐구? 아무것 때문에도 아니지. ….. 그냥 여기 있기 위해서라도. 파도처럼, 자갈돌처럼. 파도와 함께, 자갈돌들과 함께. 빛과 함께. 모든 것과 다 함께.’

-인생의 어떤 노래 中

P.356

나는 내 이름에 붙은 ‘결정적인 이미지’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꿈을 오랫동안 버리지 못했다. 자신의 이름을 사랑하게 되기까지 너무나 많은 시간이 걸렸다. 마치 인생과 사랑을 이해하게 되는 나이만큼이나.

P.361

사신 속의 처녀는 앞날이 충만하고 행복하기만 하리라는 듯한 미소를 짓고 있었고 이제 모모는 생은 그러한 것들로만 채워지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고 있었다. 모모는 로자 아줌마를 파괴해가는 것은 다름아닌 生이라고 생각했고 그것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느끼게 했다.

P.362

새롭게 살아갈 낯선 땅을 찾아가던 길에 모모는 문득 하밀 할아버지가 노망들기 전에 해주었던 말을 떠올린다. 사람은 사랑할 사람 없이는 살 수 없다, 는 그 말을. 그리고 모모는 깨닫는다. 손에 쥔 달걀 하나, 그것이 바로 인생이라는 것을. 그리고 자신이 가장 사랑했던 사람, 로자 아줌마를 죽인 것은 생이지만 그녀를 이 세상에 태어나게 한 것도 바로 그 신비롭고 경이로운 生이란 사실 또한. 그건 모모의 깨달음이자 곧 이 책을 읽는 우리들의 깨달음이기도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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