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계속해보겠습니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14년 11월
평점 :
◆◆◆
계속해보겠습니다.
‘꼭 해내고야 말겠다’는 아주 적극적인 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포기해버리는 낙담이 담긴 말도 아닌, 미묘하게 희망찬
말이다.
소라, 나나, 나기. 불완전하면서도 불안한 존재, 편부모 가정에서 자랐다는 공통점을 가진 세 사람이 ‘나나’의 임신으로
조금씩 변해가는 모습을 그려간다.
애자는 허망하게 남편을 잃고 스스로 죽어간다. 그녀의 딸들뿐만 아니라 그녀 자신조차 돌보지 않고 서서히 죽어간다.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들을 인생에 가득 채우고 세계란 원한으로 가득하며 그런 세계에 사는 일은 고통스러울 뿐이라고 말한다.
어차피 살다가도 어느 순간 허망하게 죽을 뿐이므로 열심히 살아갈 필요가 없다고 딸들에게 끝없이 세뇌한다. 그리고 그녀의 딸들은 그런
환경 속에서 자라난다.
그러던 어느 날, 나나는 임신을 하게 되고 소라는 나나가 애자처럼 될까봐 두렵다. 소라에게 아기를 낳는다는 것은 엄마가
된다는 것이고 엄마가 된다는 것은 애자가 되는 것이다. 나나도 생각이 많다. 아이의 아버지인 모세씨와 결혼하지 않을 것이라고 결정하곤
이기적인 결심일지 고민한다. ‘내 고통에 관해서만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저기 분명한 고통에 관한 것은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는
것’이 나나가 가장 혐오하는 ‘애자와 가장 가까운 마음’이기 때문이다. 나나와 소라의 애자에 대한 생각은 참 복잡하다.
소라, 나나, 나기 세 사람의 시점으로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의식으로 이야기를 풀어간다. 1인칭
시점의 '의식의 흐름'대로 흘러가는 듯한 서술 때문에 어느새 동화되어 읽게 된다. 남편을 잃고 서서히 죽어가며 그 외의 것들은 신경쓰지 않는 애자와 그녀의 두 딸, 소라와 나나. 모세씨와 그 기묘한
가족. 남편이 죽은 후 홀로 아들을 키우고 소라와 나나를 돌봐주었던 순자. 모세의 아이를 가져 곧 엄마가 될 나나까지, 이 글에는 참 여러 부모가
나온다.
그리고 여기서 던지는 화두는 ‘나는 태어나길 잘했는가?’ 이다.
그런 나나와 소라는 서서히 변해간다. 다음 문장에서도 알 수 있었다.
P.221
나는 예전엔 이런
뉴스를 들으면 지구가 망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별다른 감상이
없었거든.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어. 아기가
태어났는데 세상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모처럼 낳았고 모처럼 태어났는데
그냥, 세계가 끝나버린다면.
엄마가 되는 것에 익숙해져가는 나나와 소라. 그리고 결국 그들이 내린 결론이 바로 ‘계속해보겠습니다’이다. 정답이야
없겠지만 그것이 정답인 것처럼 느껴지고 그들을 응원하고 싶어지는 것이 참 묘하다. 이 소설에서 또 눈에 띄는 것은 ‘소리’에 대한 묘사가 많고 예쁘다는 것이다. 소리로 풍경을 그려보게 된다. 나나가 모세씨와의 결혼을 거절하는 모습과 그 이유도 참 인상 깊었다. 사소해보이지만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나나가
그것을 후회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지만 용기있는 선택이었던 것 같다. 편부모, 미혼모라는 무거운 주제를 미혼모 본인과 그 주변사람들
개인의 내밀한 시점으로 서술하는 것이 독특했다. 나와는 멀어 보이지만 내 주위에 존재할 것이 분명한 그들이기에 이 소설이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
P.43
순자씨는 시장에서 과일을 팔아 번
돈으로 나기와 둘이서 살아가고 있었다. 일찍 집을 나선 뒤 종일 바깥에서 지내다가 해가 지고도 한참 뒤에야 집으로 돌아오는 일이었다. 피곤했을
것이다. 한겨울에 사과궤짝을 들다가 뇌출혈로 죽고 만 남편이 남긴 빚도 상당해 경제적인 면으로도 간단하지 않은 생활이었다. 그런데도 아침이면
어김없이 신발장 위에 나나와 내 몫의 도시락까지, 납작하게 얹혀 있었다. 나나와 내가 급식으로 점심을 먹을 수 있는 학교로 진학할 때까지,
육년이나.
정말 맛있었지.
특별하게 화려한 반찬도
없었는데.
도대체 비결이 뭐냐고 나는 그녀에게
물었다. 순자씨는 나를 한번 쓱 바라보더니 연륜, 이라고 대답했다. 나이를 말하는 거냐고 묻자 단순하게 그런 것은 아니라고 그녀는
말했다.
새끼를 먹여본
손맛이지.
그런 연륜, 하고
그녀는 덧붙였다.
P.136
있지.
애자는 거두절미, 행복하니, 하고
묻습니다.
이쪽의 대답은 기다리지 않고,
아기를 가져서 행복하니, 하고 다시 묻습니다.
행복하니. 행복하니.
행복하니.
행복하니.
저주처럼 몇번이고 반복되는 질문을
듣습니다.
……왜 행복하냐고 물을까.
애자는 아이를 낳고,
행복했을까.
소라와 나나를 낳고,
행복했을까.
행복했으므로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해서 행복하냐고 묻고 있는 걸까. 얼음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머리끝부터 서서히 차가워집니다.
P.142
비로소 자각했습니다.
나는 내 고통에 관해서만 맹렬하게
생각하고 있었을 뿐, 저기 분명한 고통에 관한 것은 생각해보려고 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그거야말로 나나가 가장 혐오하는 애자와 가장 가까운
마음이라는 것을. 그 옛날, 나기 오라버니가 나나의 뺨을 때려 가르쳐준 것을 완전하게, 잊고 있었다는 것을.
P.147
없어요,라고 말하는 모세씨에게
모세씨는 궁금한 적 없었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아버지는 왜 요강을 남의 손으로 비울까, 어머니는 왜 남의 요강을 비울까, 그런 걸 묻고 대답을
듣고 싶었던 적이……거기까지 말했을 때, 남이라뇨, 하고 모세씨가 말했습니다.
남이라고 할 수 있나.
남이 아니에요?
어떻게 남이죠?
남인데.
가족인데.
가족은 남이 아닌가요?
남이 아니죠.
단호하게 말하고 모세씨는 포크로
찍은 당근을 입에 넣고 오독오독 씹었습니다. 그 모습이 유별나게 낯설어 한동안 바라보았습니다. 남이 아니라니 모세씨는 진심인
걸까. 남이 아니라서 모든 걸 다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다 알고 있으니까 더 알 필요도 궁금하게 여길 필요도 없다고 생각하는 걸까.
하지만 나나는 모르는것투성이인데. 애자에게도 소라에게도 나기 오라버니에게도 지금 이 순간 모세씨에게도, 모르는 것이 잔뜩인데.
가족이라도, 모르는것투성이.
P.182
이기적인건가. 모세씨가 나더러
그랬어. 이기적인 사람이래. 아이가 받을 사회적인 대미지라나 그런 걸 왜 생각해보지 않는냐고 했는데 나는 정말 그런 걸 덜 생각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남들이 뭐라고 말하든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생각을 덜 했으므로 자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인지도 모르겠어. 내가
무언가를 각오했다는 이유로 아기까지 무언가를 각오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리는 것은 아닐까. 이러쿵저러쿵, 세계라는 것이
있으니까. 아니 도대체 세계라는 것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잖아. 세계는 어때? 괜찮아? 아기를 낳아도 괜찮아, 라고 생각할 수
있을 만큼은 괜찮아? 나를 왜 태어나게 했어, 아기가 그렇게 말하면 어떡하지? 저기, 인간의 수명은 보통 팔십년이잖아. 그런데 내내 불행할
뿐이라면 어쩌지? 나 때문에 태어난 아기가, 삼십년이고 사십년이고 불행할 뿐이라면 어떡하지? 괜히 태어났어, 라고 생각한다면? 생각하고 생각해도
생각할 것이 남아 있는 것 같아. 그래서 더 생각하고 싶은데, 그런데 생각을 더 하다보면 이렇게 생각하는 것이 좋은가, 정말 좋은가, 그런
생각까지 하게 돼. 있잖아, 모두들 어떻게 하는 걸까. 모두들 어떻게 아기를 만들어? 어떻게 아기를 낳아? 모두 이런 걸 부지런히 생각하며
아기를 만드는 거야? 실은 모두들 부지런하게 이런 걸 고민한 결과로 아기를 낳고 살 결심을 하는 거야?
P.200
그 사람들보다 나나가 훨씬
건강하다고 나는 생각해 누가 뭐래도. 나나는 건강해. 그리고 대견해. 나나도 대견하고 나도 대견하고 나기도 대견해. 그 사람들 말대로라면 나나도
나도 나기도 편부모 상황에서 자랐잖아. 이 정도로 자랐잖아.
P.221
나는 예전엔 이런 뉴스를 들으면
지구가 망하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별다른 감상이 없었거든. 그런데 요즘엔 그렇게 생각할 수가 없어. 아기가 태어났는데 세상이
그렇게 끝나버리면 너무 억울하잖아. 모처럼 낳았고 모처럼 태어났는데 그냥, 세계가 끝나버린다면.
P.227
애자는 요즘도 밤에 전화를
걸어옵니다.
가엾게도.
애쓰지 마.
의미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
덧없어.
아무래도 좋을 일과 아무래도 좋을
것.
목숨이란 하찮게 중단되게 마련이고
죽고 나면 사람의 일생이란 그뿐,이라고 그녀는 말하고 나나는 대체로 동의합니다. 인간이란 덧없고 하찮습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사랑스럽다고
나나는 생각합니다.
그 하찮음으로 어떻게든 살아가고
있으니까.
즐거워하고나 슬퍼하거나 하며,
버텨가고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