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아트 - 예술의 최전선
진중권 엮음 / 휴머니스트 / 2009년 6월
평점 :
품절


 로이 애스콧의 미디어아트 개념에는 수많은 신조어들이 있다. 그 신조어들을 제대로 이해해야 아마도 그의 미학이 이해될 것 같다. 개념들을 중심으로 짚어본다. (굵은 글씨는 내 생각)

1. 인터랙티비티에 대해.

로이 애스콧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미디어아트에서 상호작용과 관련해선 항상 나오는 이야기다. "의미와 체험은 부분적으로 관객에 의해 창조됩니다. 여기서 예술가는 인터랙티비티가 발생하는 콘텍스트의 제공자에 가까워집니다."(p44) 뭐 그닥 새로운 얘긴 아니다. 바르트의 '저자의 죽음'이나 '작품에서 텍스트로'와 관련된 이야기들의 연장선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애스콧에게서는 더 유물론적 태도가 있는데 - 이건 아마 벤야민의 영향으로 보이기도 하는데 - 가령 이런 관점들, "예술작품은 시스템의 한 부분", "관객의 행동이, 그들의 개념적, 물리적 행동이 작품의 물리적 본성에 영향을 끼칩니다"(p44)란 대목들. 더 나아가서 애스콧은 미디어아트란 작품이라기 보다는 사람들의 인식과 감각기관의 일부이고, 예술(미디어)이란 개념 자체가 변화되는 일부로 보는 것 같다.

작가와 관객과 작품을 고정되어 나누지 말고 역전도 시켜보고 관객이 작품을 쓰도록도 해 보고 작품도 계속 변형시켜보는 작업?

2. 텔레노이아

"그것은 일종의 축복을 일컫는 거예요"(p46) 여기엔 두 가지 의미가 있는데 하나는 기술축복, 다른 하나는 공동체의 축제. 서구의 경우 과도한 프라이버시의 개념으로부터 억압된, 그로부터의 해방된 공동체. 뭐 대략 이런 뜻이다. "그 누가 나에 대해, 또는 이것에 대해 아는 것을 원하지 않아란 두려움을 우리는 파라노이아라 부르죠. 그런데 네트워킹의 효과는 제가 텔레노이아라 부르는 축복을 가져오죠." 그는 페이스북을 한 예로 이야기한다. 그가 이야기하는 기술은 여기서 물리적 기계만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고 '촉촉한' 미디어라고 말하는 생물학적인 것과의 융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흥미로운 지점 중 하나 "우리가 서로를 (명사가 아니라) 동사로 여긴다면 우리는 행복할 겁니다."(p49) 심광현 선생이 문화과학에서 자주 하는 이야기 중 하나로 "문명도 문화도 인간이 만든 건데, 차이는 문명은 '명사'이고 문화는 '동사'"라고 했던 이야기가 기억난다. 관련된 이야기로 보인다. 사람이든 사물이든 역사와 시스템 안에서 변하는 존재인데, 오리는 종종 고정된 사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작품 안에서도. "나는 동사다."

동사로서의 인간과 사물. 

3. 하이퍼코텍스

"웹은 그냥 도서관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일부입니다." 웹과 실재가 분리된 세계가 아니란 것. 또 신체에 대한 기술의 개입을 권력개입이라 비판하는 폴 비릴리오에 대해 "가련한 늙은이"라 칭하며 "인공과 자연의 분리는 당신도 알고 있듯이 서구의 이분법적인 사고에서 나옵니다. 특히 비릴리오가 그 사고를 구현하고 있지요"라 비판한다. (p55) "이것은 도시고 저것은 시골이라고 구별하는 것은 더 이상 의미가 없습니다." 흠 "네트워크의 일부"가 된다는 것을 "느낀다"는 것. (p58)

공동체와 네트워크에 대한 상상!!!

4. 웜홀

다른 차원의 시공간을 연결해 시간여행이 가능하게 해 주는 장치에 대한 고안. "실험실로, 숲으로, 산으로, 또는 그 밖의 어떤 것으로든 웜홀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지요. 웜홀링은 또 다른 우주에 즉각적으로 접근한다는 생각입니다. "(p64) 하이퍼링크에 대한 것.

이것은 아마도 미디어아트를 창작할 때 항상 고려해야할 부분일 것 같다. 어딘가 한 곳에 정지되어있는 것이 아니라 유연하게 다른 장소로 연결될 수 있는 상상이란 지점에서.

5. 자아의 상실이 아닌 자아의 복수성.

프로이드의 무의식의 존재로부터 더 나아가는 이야긴데, 모든 사람은 여러 개의 자아를 가지고 있단 얘기다. "우리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은 '자아들'을 창조하는 것이지 하나의 자아를 창조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해요."(p66)

뭐 아주 새로운 이야기라 할 순 없겠다. 음. 이걸 단순히 세컨드 라이프나 아바타, 웹 안에서의 그러니까 가상현실에서의 다중자아로만 생각하면 재미없을 것 같고, 그 변화를 모두 포함한 장, 바로 현실에서 다중자아로 생각할 때 훤씬 풍부한 사유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6. 아포리아

애스콧의 개념 중에서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 중 하나가 '아포리아(Aporia)'다. 아포리아란 불확실성, 모순, 연속성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비연속적 문제를 뜻한다. "모순으로 가득 찬 아포리아의 상태에 있을 때, 그것을 누군가 때려눕히거나 쏘아 죽이는 식으로 풀어서는 안됩니다."(p70) 푸하하. "아포리아는 우리가 처한 조건입니다." "아포리아를 두려워하는 사람들은 통제를 함으로써 권력을 잡으려는 이들입니다."(p72)

굳이 미디어아트를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아포리아'는 모든 예술작품, 모든 삶의 태도에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서구 근대의 분과예술의 벽을 넘기 위해서도, 바로 이 모순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두려워해선 안된다. 이는 '옹달샘'을 만들면서 우리가 하지 못하고 봉합했던 지점이기도 하다. 

그의 현행 미디어아트에 대한 비판에 귀기울여보자. "창에 브라인드좀 달아야 할 것 같아. 그리고 벽에 파워포인터가 더 많아야 할 것 같아. 가능한 많이"(p74) 미디어아트의 현실이 이렇다는 거다. 더 많은 장치를 세우고, 떼깔 반지르하게 만들고, 스펙터클 만들려는 시도들. 그게 미디어아트가 아닌데 많은 아티스크가 그렇게 하고 있단 거다. 

이 얘기 들으며 '옹달샘' 만들며 나도 그런 생각이 없지 않았다는 걸 안다. 부끄러워진다. 조금이나마 관객들을 즐겁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변명해 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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