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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우개
권윤주 지음 / 열린책들 / 2009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두 편의 외국 기행부터 스노우 캣의 행보는,조금 더 차분해지고 내적으로 침잠해 가는 과정이었던 것 같다. -그것은 첫번째 시리즈인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를 확인해 볼 적에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혼자놀기'의 경우 어느정도 공감을 기대하는 작가의 흔적이 엿보이는데-연재가 웹에서 시작했다는 것을 보아도- 오랫만에 만나는 이 '지우개'에서는 스노우캣의 유머러스한 풍자 보다는 나르시즘적 멜랑콜리에 조금 더 무게 중심이 옮겨진 것으로 보여지기도 한다.
그렇다면, 이 '지우개'를 통해 세상을 보는 성찰이 더욱 깊어졌다고 언급할 수 있을까? 확실하게 장담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끌어온 (지독한)'개인성'과 '은둔'의 카테고리들이 이번 작품에서도 변함없이, 일관되게 관통되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분명한 사실은 시간의 텀에도 불구하고 소재에 대한 동어반복만이 보여졌다면 처음의 의문은 제시하지 조차 않았을 것이다.
지우개라는 사물의 용도를 독특하게 치환시켜 투영하는 모습은 일견 공격을 내사시켜 반응하는 매우 사적이며 심지어는 반사회적 정서의 표출로만 비추어 질 수도 있겠으나, 그것은 달리 말하면 평소 무심코 넘기거나 지나쳐버리는 관례, 즉 사람들 사이에서 암묵적으로 동의된 사회적 관습이나 규범들, 습속들이 다양한 개인을 고려하지 못하며 때로는 폭력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소모품으로써 상징되는 지우개를 통해 드러낸다.
곳곳에서 볼 수 있듯이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는 여전하지만 '지우개'에서는 보통의 사회를 향해 한층 더 예리한 일침을 가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 사회적'깊이'를 조금 더 가늠해 볼 수 있는 부분은 지우개 시리즈는 미사일이 투하되자 자신의 모습(존재)를 지우는 광경을 묘사한 작품에서 드러나는 데, 그 장면은 내게 있어서 너무나 뚜렷하게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 투하 장면과 겹쳐졌다.
초창기 그가 주목받았던 것은 인터넷의 발달과 함께-포스트 모더니즘 시대를 맞이하여-대두되는 개인성과 보다 정서적인 감흥에 대한 세대들의 공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그가 이러한 소재를 통해 계속 작업을 이어나가기 위해서는 세계와 지속적으로 소통하고 교류해야 할 것은 자명해 보인다. -물론 그것은 그의 삶이나 인간에 대한 성찰-관찰이 아니라-도 수반되어야 한다. 마땅히 그래야만 스노우캣의 혼자놀기는 지속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