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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강 - 한홍구의 한국 현대사 이야기 ㅣ 한홍구의 현대사 특강 1
한홍구 지음 / 한겨레출판 / 2009년 3월
평점 :
역사의 한복판에서 길을 묻다
역사학자 한홍구는 저서에서 지금 대한민국에 듫끓는 얽히고 섥힌 문제들을 몇가지 큰 주제로 정리하고 있다. 뉴라이트와 건국절논란, 간첩논란, 공사의 지대가 되어버린 강산, 민영화문제, 정국을 뒤흔드는 괴담, 사교육에서 지난 촛불의 의미까지- 한홍구는 꼼꼼하게 그리고 지금의 사회를 어지럽히는 문제를 족집게처럼 풀어, 특유의 시원시원하고 명쾌한 어투로 강의를 펼친다.
한홍구가 꼽은 대한민국의 문제들은 사실, 이미 여러번 한국의 고질적인 문제로 지적되오던 것이다. 그러기에 그가 열거하고 있는 몇가지 주제들은 한국의 근현대사와 긴밀한 연관관계를 보이고 있다. 이 책의 가장 큰 미덕은 단순히 현재의 문제를 진단하는데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과연 그 고질병이 어디서 기원하였는가, 근현대사적 지식과 역사를 통해 심도있는 분석 및 대안을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현대사를 관통하는 대부분의 문제들은 '그때 해야할 일을 미처 다 처리하지 못한' 데에서 기원하고 있다. 한홍구가 전작에 걸쳐 가장 목소리높여 꼽는 가장 중요한 문제는 지난 과거에 친일파 청산을 하지 못한 점이다. 현재 사회를 뚜렷히 나누고 있는 (극단적인) 진보/보수의 문제도 여기서부터 기원한다. 어느 나라나 진보와 보수가 있기 마련이지만 미국의 개입으로 인해 청산되어야 할 친일파들이 친미극우로 달라붙으면서, 거기서 대통령을 비롯 정치적 실세가 이어져오면서 사상적 대립의 골이 깊어진 것이다. 친일파 청산 실패와 더불어 한 궤를 이루고 있는 문제는 남북이 갈라지고, 이때까지 분단된 정국으로 살고 있는 대한민국의 특수적 현실이다. 진보주의자가 좌빨, 빨갱이라는 언어에 포섭되어 그야말로 보수/진보의 개념은 자의적으로 해석되기에 이른다. 치우친 언사를 자랑하면서도, 아직도 자신이 중도 혹은 진보적이라고 착각하는 매체나 인사들의 기원 역시 이쯤에서 찾아볼 수 있겠다.
친일파들이 잡게 된 전쟁 이후의 한국정치는 기득권을 잃지 않으려는 그들의 안간힘과 순전히 개인적 이익만을 위한 정치적 행보로 한국사회 고질병을 유발하기에 이른다. 진보쪽 인사들을 껏하면 "너 빨갱이지?"식으로 몰아붙여 남아나지 않을 정도로 처단하고, 강남 땅을 그때부터 일구기 시작했으며, 헌법은 콧방귀로 날리고 간첩 등을 운운하며 괴담을 양산하기에 이른다.
잠시 생각해보자. 위 단락은 전쟁 초기 친일파들의 정치행보를 요약한 것인데, 어쩐지 쓰면서도 낯설지 않는 정국이다. 가끔씩 잊혀질만하면 등장하는 (의심스러운) 간첩소식, 무턱대고 DDOS의 배후를 북한으로 짚어버리는 난감한 정부, 남아나지 않을정도로 토목공사질을 일삼는 현정국, 쉴새없이 교체되고 일렁이는 사회 괴담까지- 올해들어 참 많이 들은 관용구(?), 역사후퇴의 증거들을 하나하나 확인하게 되는 안타까운 순간이다.
민주화정부라고 불렸던 김대중, 노무현 정권 '역시' 다른 정권과 마찬가지로 불명예스러운 일, 안타까운 일을 많이 겪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정부가 의의가 있는 것은, 적어도 이제까지 한국사회의 문제를 인식하고 그것이 민주적으로 해결, 발전되는 방향으로 노력해왔다는 것이다. 과거청산작업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인혁당사건이 무죄로 판명되었고,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나름의 노력으로 그동안의 정국에 비해 한걸음 나아갔다는 사실은 인정해야 한다.
헌데 그 모든 것들이 다시 한걸음 물러섰다. 인권위원장은 사퇴하기에 이르렀고, 정권 교체후 뉴스에서 과거청산위 소식이나, 인권위 등의 (좋은의미의) 소식은 들은 바가 없다. 게다가 건국절 논란으로 지금의 헌법을 완전히 부정하려는 시도까지 서슴치 않는다. 놀라운 일이 아닌가. 한 순간에 모든 것이 그때와 같아지거나 더한 상태다.
이 책에는 우리가 그저 문제라고 생각했던 문제가 실제론 어떤 모양이고 그 심각성은 얼마나 큰지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곳곳에 놀랍고 어처구니 없는 일 투성이지만, 여기서 감탄만 하고 넘어갈 일이 아니다. 한홍구는 준비해야 한다고 했다. 어찌되었건 정권은 다시 바뀌게 되어있다. 우리가 현재 한국사회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해야 우리의 할 일을 알 것이다. 문제의 원인을 알아야 해결책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다.
얘기해도 얘기해도 들어주지 않는 국민의 목소리가 괴담까지 이르는 현 상황을 정부가 하루빨리 인식하고 부디 자만을 내려놓고 겸손해져야하는 것이 첫째라지만, 우리가 그것을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 진정한 민주주의를 꿈꾸기 위해서는 분명 국민된 우리에게도 할 일이 있다. 이 책이 그 모색할 동기가 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이 책이 의미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
우리는, 지금부터라도 알고 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