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벨의 도시 - 상 - Arche-type(절판 예정)
정지원(김지원)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8년 7월
평점 :
절판


천사와 악마, 뱀파이어와 사이보그, 환상과 기계 문명이 공존한다. 그 세계는 낯설다 못 해 기괴하기까지 하다.

프롤로그를 제외하고 이 책에 담긴 여섯개의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연결되어 있지만, 떼어놓고 읽어도 무방할 만큼 독립된 이야기로 볼 수도 있다. 각각의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인물도 모두 다르다.

하지만, 그 모두를 관통하는 하나의 주제, 그것은 사랑이다. 가장 흔한 이야기이면서 가장 절실한 것이기도 하다.

거대 도시 캐피탈을 중심으로 살아가는 인간과 온갖 이종족들의 모습은 비이성적이고 불합리하고 비윤리적이기까지 하다. 악마를 사랑하는 천사에서부터 동성애자까지, 그들은 사회 통념이나 심지어 선악 구분 조차도 뛰어 넘어 사랑 그 자체에 충실했다고도 볼 수 있다. 그렇다고 그들 앞에 장미빛 미래나 거창한 희망 따위는 보이지 않는다. 거룩한 희생이나 감미로운 노래로 치장할 만큼 그들의 사랑이 아름답기만 한 것도 아니다.

하지만, 상관 없지 않을까. 어차피 빛과 어둠, 선과 악, 희망과 절망, 아름다움과 추함의 구분 조차 모호해진 그 세계에서 그들이 믿을 것은 아무 것도 없어 보인다. 단지, 자신 안의 순수한 감정에 충실할 뿐.

기괴하다고 표현했지만, 순식간에 한 권을 다 읽어버릴 만큼 몰입하게 되는 것은 아마도 책 속의 세계가 현실을 묘하게 닮아 있기 때문이 아닐까. 선행과 희생에 대한 보상이나 '오래오래 행복하게 살았다'식의 해피엔딩은 동화책에서나 나오는 얘기다. 정작 현실은 어느 판타지 소설보다도 판타스틱하고 불합리와 부조리가 판친다. 심지어 사랑까지도 남의 눈을 의식하고 온갖 제도와 관습에 얾매인다. 오히려 종종 순수한 사랑이 비난받고 비웃음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모든 것이 파괴되고 빛조차 사라진 세계에서 홀로 피는 꽃 처럼, 오직 그들만의 사랑, 그들만의 이야기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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