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 피크닉 민음 경장편 2
이홍 지음 / 민음사 / 2009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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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정한 강남'이 존재하려면 '강북'이 있어야 한다. 이 두 지역(단순하게 한강을 사이에 둔 다른 지역이라기 보다는 이제는, 아예 다른 사회라고 봐도 좋다고 생각한다.)은 빛과 그림자처럼 서로에게 등을 기댄체 존속되어 진다.  

  그렇다면 어디가 빛이고 어디가 그림자인 것일까? 

  은영, 은비, 은재 세 남매는 무던히 노력한다. 대한민국 강남의 한 가운데인 압구정동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 위해서. 첫째인 은영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주는 일류대학에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또 그와 같은 번듯한 회사에 취직을 하기 위해 취직 관련 사이트의 주의사항을 영어 단어처럼 달달 외우고, 틈날때 마다 과외수업을 나가서 돈많아 행복한 어린 학생들을 가리친다.  

  둘째 은비는 하늘이 내린 축복과도 같은 아름다운 미모로 삶의 고통을 헤쳐나간다. 어쩌면 은비의 철없고 정상이 아닌 것 같은 생활 패턴이 그녀를 단순하게 속물로 보이게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은비를 단순하게 얼굴 믿고 설치는 철딱서니로 단정지을 수 있을까? 그녀는 자신의 생활의 뒤틀림을 아주 잘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만 둘 수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자신에게 가진것은 보기좋은 얼굴과 몸매, 타고난 '끼'가 다 이니까. '자신이 가진것을 활용하여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낸다.' 요즘 젊은이들에게 요구되는 것들 아닌가? 은비는 자신이 가진것을 활용하여 압구정동에서 누구에도 꿀리지 않을 만큼 자신을 꾸민다. 그리고 그러한 것들-백, 구두, 트레이닝 복, 호스트 바에서 거침없이 열 수 있는 지갑의 두께-로 부터 안식을 느낀다.   

  막내이자 유일한 남자인 은재는 게임중독에 걸린 고등학생이다. 모두들 이름만 대면 알만 한 집안의 아들, 딸들이 버글거리는 고등학교 속에서 그는 언제나 혼자다. 세 남매 중 가장 공허하고 외로운 영혼을 가진 것이 바로 은재일 것이다. 그는 타인과 따스한 관계 형성을 잘 하지 못한다. 그는 게임 속에서 몬스터 캐릭터를 죽일때에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그들의 비명소리와 붉은 피를 듣고 볼 때에만 자신이 살아있다는 것을 어렴풋이 느낀다. 무언가를 파괴하는 행위로만 자신의 존재를 확인하는 것이다. 슬픈 일이다. 그래서 그는 아무에게도 쉽게 마음을 열지 않는다. 자신을 왕따 시키는 같은 학교 학생들에게 아무말 하지 않는다. 자신을 한심하게 쳐다보는 선생에게 반항하지 않는다. 그는 언제나 조용하게 그곳에 존재하기만 할 뿐이다. 아주 약간의 일상생활을 감내하면서. 그리고 일반인에 비하면 아주 적은 일상생활이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일지도 모른다.  

   이렇게 그들을 자신을 부각시키고, 이용하고, 숨겨가면서 강남이라는 '초하이소사이어티'에 '상주'하기 위해 아등바등 거린다. 하지만 그들 모두 강남이라는 빛속에 숨어들어간 하나의 얼룩에 지나지 않는다. 태생이 강북이기에 그들에게 카프회의 회원자격, 아무 대가 없는 루이뷔통 신상백, 편안한 일상은 주어지지 않는다.  

  그러한 것은 은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난 이들에겐 아무것도 아닌 취업을 위해 호텔에서 옷을 벗는 은영과, 300만원짜리 백을 위해 킹카오빠들에게 자신의 젖가슴을 내주다가 되려 당한 은비와, 유일하게 자신을 이해해주던 인주와 관계의 끝을 그녀의 아이와 함께 맞이하게 된 은재의 모습을 보면 더 확연하게 들어난다. 

  특히 킹카오빠들과 위험한 줄다리기를 하던 은비로 인해 세남매는 아주 무거운 세 개의 가방을 각자 짊어지게 되었다. 강남에서 성형외과를 운영하는, 진짜 강남인은 죽어서도 그들 셋을 두렵고, 피곤하게 장악하여 지배한다. 

 

소설의 끝은 각자의 자리에서 아직도 가방을 메고 있는 세 남매의 모습이다. 말없이 공허를 담고 다니던 은재는 어린 시절 아빠가 보여준 트리를 바라보고 있다. 다른 두 누나들이 어디서 무엇을 하는지 그는 알지 못한다. 

  자본주의 시대에 가장 빛나는 미덕인 재력과 여유로 인해 만들어진 강남이라는 거대한 트리. 반짝반짝 빛나는 인조 빛의 세계를 바라보며 은재는 어둠속에 스며들어 있다. 가방은 점점 무거워 질 것인데, 누나들이 와야만 이 성탄절이 끝날것이란 것을 은재는 안다. 하지만. 과연 언제? 얼마나 더 지나야? 

 

  빛과 그림자. 철저한 인공의 빛과 그로인해 드리워진 그림자. 그림자는 빛속에 합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하지만 그러한다 해도, 탄생부터 귀족적인 인공의 빛 속에 있으면 그들을 따라한 그림자는 표시가 날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우월성을 더욱 강조하기 위해 진짜 명품은 짝퉁의 존재를 눈감아 주지만 그들이 같은 수준이 되는 것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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