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레슨 인 케미스트리 1
보니 가머스 지음, 심연희 옮김 / 다산책방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여성 과학자라는 말도 쓰면 안 되는 시대에 살고 있어서일까? 처음 몇 장은 약간 울화통이 터졌다. 단지 여성 과학자라는 이유만으로 비커조차 제대로 지급하지 않는 헤이스팅스 분위기를 이해하기 어려웠다. 그러다 아 여긴 1950년대 미국이었지, 여성이 참정권을 얻은 것이 불과 100여 년 전 일이었지 라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지도교수로부터 성폭력을 당했으나 오히려 추문에 휩싸여 쫓겨난 주인공 엘리자베스는 헤이스팅스 연구소에서 비슷한 과학자 캘빈과 사랑에 빠지지만 결혼 대신 당시로서는 파격적인 동거를 택한다. 그러나 임신 한 채 사고로 연인을 잃고 임신했다는 이유로 연구소에서 또다시 쫓겨난 후 홀로 아이를 키운다. 1편은 괴짜 화학자이자 미혼모인 엘리자베스가 TV 요리 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되기 전까지의 이야기다.
엘리자베스는 놀랍도록 현대적이다. 그래서 종종 그녀가 사는 시대가 1950년대 미국이라는 사실을 잊게 한다. 헤이스팅스를 지금의 어느 직장으로 배경을 바꿔도 어색하지 않을 듯하다. 부모로부터 이해받지 못하고 외롭게 자란 그녀는 자신의 캘빈의 도움조차 받길 거부하는데, 그건 누구의 도움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수많은 실험 끝에 도달한 팩트를 잘 알기 때문이다. 100번 거절당했다면 101번째도 거절당할 확률이 높다. 대책 없는 문과생처럼 혹은 도박사처럼 101번째 행운 같은 것을 기대하지 않는다. 특히 자신의 불행에 대해 징징거리지도 않는다. 이런 그녀의 태도가 이 이야기를 끌고 간다.
P.75 "캘빈. 내가 배운 게 하나 있어. 사람들은 자신이 처한 복잡한 문제를 풀 때 언제나 간단한 해결책을 간절히 바란다는 점이야. 볼 수 없고, 만질 수 없고, 설명할 수 없고, 변할 수 없는 걸 믿는 편이 훨씬 쉽거든. 실제로 보이고 만져지고 설명할 수 있는 걸 믿기는 오히려 어려워. 말하자면 실재하는 자기 자신을 믿기가 어렵단 말이지."
P.132 인생은 열심히 노력해서 헤쳐나가면 되는 거라고 계속 믿고 있지 않은가. 물론 노력도 중요하지만, 운도 따라줘야 하는 법인데, 하지만 이제껏 엘리자베스는 운이 좋았던 적이 한 번도 없었기 때문에 그 운이라는 걸 믿으려 하지 않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