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가족이 살아온 동네 이야기 그림책으로 만나는 지리 이야기 1
김향금 지음, 김재홍 그림 / 열린어린이 / 201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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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할머니가 아홉살 땐 북동 마을에 살았고, 우리 엄마는 청계천 주변 동네에서 자랐어. 그리고 이제 막 아홉살이 된 나는 광진구 아파트에 살아. 3대가 각자 살던 곳이 다른데 어린시절 경험한 것들도 모두 다 달라. 100년이 지난 것도 아닌데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많은 것이 변한다는게 놀랍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 그럼 할머니와 엄마, 그리고 내가 사는 이야기를 들어볼래?"

"할머니의 어린시절, 그러니까 아홉살 연이가 살던 곳은 낮은 산에 둘러싸인 자그마한 마을이야. 기와집과 초가집 뒤엔 푸른 나무가 우거진 산이 있고 집 앞엔 밭이 있어. 새벽안개가 자욱한 가운데 어른들은 일하러 나가고, 대문을 활짝 열어놓은 이웃 사람들은 서로의 안부를 물으면서 가족처럼 지내"

옆 집에 밥 숟가락이 몇개인지도 알 만큼 그 시절엔 먼 친척보다 가까운 이웃을 더 잘 알았던것 같다. 농사를 지으며 품앗이도 하고, 경사스러운 일이 있으면 마을 잔치도 하던 정겨움이 있던 시절이다.

하얀 저고리와 검정치마, 그리고 귀가 보일만큼 짧게 깍은 단발머리까지 그 시절 여학생의 모습은 똑같다. 일제시대를 겪은 연이는 학교에서 일본어를 배웠지만 8월에 해방이 되자 한글을 배우기 시작한다.

풍족하지 않은 시절이었지만 우리들의 어린 시절과 마찬가지로, 연이 또한 숙제도 하고 집안일도 돕고 친구들과 소꿉놀이를 하며 행복한 시간을 보낸다.

지금도 시골에선 장이 서곤 하는데 연이에게 오일장은 손꼽아 기다리는 소풍 같은 날이다. 무엇보다 달콤한 팥죽을 먹을수 있었는데, 그만 이웃 마을 사내아이랑 부딪쳐 쏟아져 버렸다. 서럽게 엉엉 우는 연이를 엄마가 달래주고, 잘못을 저지른 사내아이는 미안한 표정으로 도망(?)간다. 그런데 이 사내아이와 연이가 나중에 커서 혼인을 하게 된다. 그 당시엔 양가 어르신들이 짝을 지어줬는데, 이날 만난 양쪽 집안 어른들이 장터 국밥집에서 막걸리를 마시며 혼인을 결정한 것이다. 지금은 상상도 할수 없는 일 이다.

"외할머니가 결혼한 후 서울로 상경했는데, 이 곳이 바로 우리 엄마 근희가 아홉살 때 살던 청계천 부근 동네야. 할머니가 살던 동네처럼 기와집이 많이 보이는데, 좁은 골목을 사이에 두고 빽빽하게 집이 들어서 있어. 그리고 그 안에 많은 가족이 살고 있으니 정말 복잡해 보이지? 조금은 불편할것도 같지만, 할머니 때처럼 이 시절에도 서로 돕고 알아가며 살았던것 같아."


돈을 벌기위해 농촌에서 많은 사람들이 상경하자 도시는 포화상태에 이르렀고 사람들로 넘쳐나게 됐다. 얼마나 많았던지 근희의 반엔 79명의 학생이 있었고 결국 오전반, 오후반 이라는 이부제 수업을 하기에 이른다. 나의 초등학교(그때는 국민학교) 저학년 시절에도 이부제를 했던 기억이 난다. 그땐 그랬지~!!


연이가 산과 들에서 놀았다면, 근희는 좁은 골목에서 놀아야 했다. 그래도 동네 친구들이 많다보니 해가 질때까지 신나게 놀수 있었다. 학교가 끝나면 골목으로 쪼르르 달려나갔고, 그때마다 항상 많은 친구들이 있었기에 즐겁게 놀수 있었던 것 같다.

나도 그렇게 놀았었는데 가끔은 아파트 놀이터로 가서 그네와 시소도 타곤 했었다. 하지만 아파트 주민이 아니라 마음 한구석엔 경비 아저씨가 나타나 뭐라고 하지 않을까 라는 걱정도 있어서 편하겐 놀지 못했던것 같다. 몇번 경비 아저씨가 내쫒은적이 있기 때문이다. 요즘의 아파트 놀이터는 참 한산하지만 말이다.

"이젠 나, 은이가 사는 곳을 소개해줄께. 내가 사는 곳은 광진구로 '12동 503호'아파트에 살고 있어. 누가 이사가고 오는지도 모르고,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누가 사는지도 몰라. 그저 엘리베이터에서 자주 마주치게 되는 이웃끼리 겸연쩍은 인사만 나누는 동네, 그 곳에 방금 생일을 넘겨 아홉살이 된 내가 살아"


아파트 근처는 편의시설이 즐비하다. 연이처럼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오일장을 가는게 아니라, 슈퍼나 마트를 가면 된다. 학원,세탁소,식당 등 필요한 것들이 아파트 주변에 다 있기 때문에 멀리 갈 필요가 없다.

엄마는 은이의 손을 잡고 어린 시절 살던 청계천으로 나들이를 가는데, 너무도 변한 모습에 당황스러워 한다. 아마 할머니도 북동마을에 가면 많이 놀라게 되지 않을까? 많은 개발로 인해 현재 우리의 주거지는 짧은 시간동안 몰라 볼 정도로 변해버렸고, 앞으로도 그 속도는 쉽게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 그리고 변화된 주거지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도 영향을 받아 변하게 될 것이다.

그 다음 세대는 또 어떤 곳에서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게 될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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