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그 이상의 이야기

레판토 해전 ㅣ 시오노 나나미의 저작들 4
시오노 나나미 지음, 최은석 옮김 / 한길사 / 2002년 9월

레판토 해전을 끝으로 시오노 나나미의 전쟁 3부작을 마무리지었다. 하나의 전쟁이, 아니 중요한 한번의 전투가, 전투 이상의 많은 것을 담고 있다는 것은 세 편 전체를 통해 느껴지는 것이다. 레판토 해전에도 단순한 전쟁이상의 것들이 많이 담겨있다.

이 한번의 해상(海上)회전을 통해 그 이전과 이후의 유럽세계의 판도가 바뀐다. 이때까지 패배를 모르고 달려오던 투르크가 후퇴하기 시작하고, 승자임에도 많은 손해를 입은 베네치아도 쇠퇴일로에 놓이게 된다. 반면에 스페인은 이 회전에서의 승리와, 광대한 영토를 바탕으로 무적함대를 거느리고 지중해 최강자로 나선다. 그러나 레판토 해전에서 등장한 신무기인 갈레아차(포를 많이 실은 범선)의 영향으로 함포로 무장한 영국해군에게 패배하게 되고 이후는 대영제국의 시대가 열린다. 이 과정에서 지중해의 영화는 이제 끝이 나고, 지구의 중심은 대서양으로 옮겨가게 된다.

전쟁에 참여하는 인물들의 다양한 인간성도 하나의 관전포인트이다. 십자군 깃발아래 모였지만 영악하게 자국의 이익만 추구하는 펠리페 2세(스페인왕), 젊은 혈기의 이상주의자 돈 후안(스페인 왕의 동생), 십자군이라는 몽상에 사로잡힌 피우스5세(교황), 막가파 전제군주인 술탄 셀림(투르크의 술탄), 노련한 외교인 바르바로(콘스탄티노플 주재 베네치아 대사), 열혈애국주의자 베니에로(베네치아 함대 총사령관), 이런 인물들에 비해 이성적이고, 중심이 서 있다고 할 수 있는 인물 바르바리고(베네치아 함대 부사령관), 이 다양한 캐릭터들이 엮어가는 역사는 어느 소설 못지않은 흡입력을 가진 이야기다.

저자가 내가 관심을 가지는 이슬람의 반대편 진영에 서서 서술하고 있는 점은 아쉽기도하다. 하지만 對투르크 전쟁에서 베네치아인들의 단결과 애국심의 묘사는 감동을 자아낼 정도였다.

여담이지만, 로마인 이야기와, 전쟁 3부작을 읽으면서, 남자의 인생 황금기는 20대가 아니고 바로 40, 50대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이때가 일생에서 힘이 가장 셀 때이고(정치력과, 경험과, 지식의 면에서) 또 그 능력을 바탕으로 중책을 맡아 하게 되는 때이다. 역사속의 대부분의 인물들은 바로 이 때에 무엇을 했느냐에 따라 평가받는다. 40년을 갈고 닦고 경험을 쌓아서 내가 이 사회에 할 일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점을 생각해 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