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오래된 책이다. 오늘 이 책의 출판일을 책 뒤에서 뒤져보았더니 1996년 1월 10일 발행이라고 적혀있었다. 이 책을 아는 이는 드물지만 나에게 무척이나 깊은 인상을 남겼다.그것은 이 책의 내용이 참신하다거나 문학적으로 아주 우수하기 때문이 아니다.공학도 출신의 한 사내가 문단에서 인정받는 유수의 계간지 중 하나를 발간하는 '창작과 비평사'의 인정을 받으며 세상에 본격 '과학소설'을 당당히 내밀었기 때문이었다. * 김도현 - 1970년 서울에서 태어나 서울대학교 항공우주공학과를 졸업했다. 1992년 대학4학년 때 '창작과 비평' 겨울호에 단편 '흐린, 새벽 노래'를 발표하며 소설가로 등장한 그는 대학원에서 항공기 비행운동 제어에 관한 석사 논문을 쓰고 현재(1996년)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공학도이기도 하다. - <로그인> 앞 표지 中 - 책장에 꽂혀있는 이 책을 다시 펼친 이유는...어제 누릿한 빛깔의 포장지에 실려온 2002년 '창작과 비평' 겨울호(계간 창작과 비평은 현재 1년 정기구독 중이다)에서 베르나르 베르베르의 소설 '뇌'의 서평을 쓴 '김도현'의 이름을 다시 보았기 때문이다. 그는 고등학교 시절... 나에게...'공학도의 길을 걸으면서도 '문학'을 즐길 수 있을까...' 하는 나의 어줍잖은 생각에 희망을 가져다 주었다. 또한 대학입학과 동시에 공과대학 문학회에 첫 발을 내딛게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김도현씨는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문학회 창립 멤버 중 한 사람이다) 지금껏 내가 글쓰기를 놓지 않은 이유 중의 하나에도 그의 몫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을 터이다. 이곳에서 공과대학 문학회 이야기를 하기는 조금 뻘쭘한 감이 없지 않지만, 사실 내게 공대 문학회의 이미지는 그다지 좋은 인상을 주지 못했다. '공대의 문학회란 얼마나 어설플까...'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던 터였으니... 더구나 처음 갔던 세미나에서는 역사를 새로 가르친답시고, 대한민국의 현대사에 대해 배웠다. 문학은 켜녕...'이승만 정권은 반공이 국시라는 미명하에 미국을 등에 업고 친일파들로 국가기관을 구성하였으며, '빨갱이'라는 말을 휘둘러 양심적이고 비타협적으로 일본제국주의와 싸웠던 인사들을 숙청하였다... 지금까지 이어지는 보수적인 정당들의 기초가 그 당시에 세워졌으며, 학문과 사상의 자유를 억압하는 법률들도 그 당시에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그렇다. 부모님께서 누누히 하지말라고 하시던 '운동권 서클' 이었던 것이다. (군사정권 시절 386세대이신 외삼촌의 시위활동 덕에 '운동권'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계시는 어머니...) 그 뒤로 문학작품에 대해 몇 차례 세미나가 이어졌지만... 난 현대사를 공부하는 시간에는 소리없이 자리를 비워버리곤 했다. - 부끄럽기 짝이 없지만, 그 이후로도 난 단 한번도 대한민국의 현대사를 '제대로' 공부해본 적이 없다. - 하지만 그렇게 신입생의 한 학기가 저물어가고 난 선배들의 '운동권 의식'을 참지 못하고 문학회를 뛰쳐나왔다. 맑스와 고리끼를 이야기하는 그들 속에서 어떻게 순수문학을 즐길 수 있겠는가... 그리곤 새로 보금자리를 마련한 그곳... 大學新聞 어쨌거나 이렇게 철없던 대학 신입생 시절의 추억을 되새길 수 있었던 것도 '김도현'씨 덕이다. 훗... (이제 겨우 1년이 지났을 뿐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