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말 - 작고 - 외롭고 - 빛나는
박애희 지음 / 열림원 / 202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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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도 나도 열이 38도가 넘던 날이었다. 유치원을 하루 쉬게 된 아이가 뜨거워진 이마를 내게 기대며 말했다. "그러니까, 오늘은 우리만 휴가네!" 아픈 순간에도 기어이 찾아내는 오늘의 행복. 아이 덕에 그날은 힘들었던 날이 아닌, 우리만의 특별한 휴가로 곱게 기억에 남았다.

-아기였던 아이가 어린이로 자라 '대화'라는 걸 하게 되면서, 나는 자주 감탄했다. 아이는 어른인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일상의 행복들을 연금술사처럼 잘 건져냈다. 그때마다 작고 사소한 순간들이 반짝였다.

-여리지만 용감하고, 엉뚱하지만 사랑스럽고, 똑똑하지만 외롭고, 제멋대로지만 다정하고, 어설프지만 당당한 어린이들을 만날 때면 때로는 웃음이 났고, 때로는 설렜고, 때로는 울컥했다.

-물론 아이들의 질문은 종종 맥락에 맞지 않을 때도, 다아는 뻔한 것일 때도, 지나치게 장난스러울 때도 많다. 그래도 아이들의 질문을 어른들이 너그러운 마음으로 품어주어야 하는 건 아이들의 성장을 위해서다. "왜 그렇게 해야 할까?" "이게 정말 가장 좋은 방법일까?" 질문을 통해 자신만의 생각을 정리해나가는 경험은 아이들을 수동적인 삶에서 주도적인 삶으로 나아가게 할 테니 말이다.

-세상을 위해서도 질문은 필요하다. 상식과 규칙에 대해 의심하는 질문이 없다면, 눈에 보이는 것들의 이면을 의심하며 탐구하는 물음표가 없다면, 불합리한 부분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지금의 세상을 살 수 있을까. 앞선 세대의 수많은 질문 덕분에 우리는 더 나아진 세상에서 같은 실수와 후회를 조금이나마 덜 반복하고 있는 건 아닐까. ~~~ "그냥 그런 거야." "그러려니 해." 아이를 키우면서 그 말이 두려워지기 시작했다. 그 말을 듣고 자란 아이들이 어느 날 세상의 결함을 발견했을 때, 부조리한 수간에 맞닥뜨렸을 때, 불합리한 상황에 마주쳤을 때 질문과 이의 대신 침묵과 체념을 선택하며 그것이 자신을 지켜줄 거라 혹시라도 믿게 될까 봐.

-행복은 삶을 제대로 느낄 때 찾아온다. ~~~ 그들은 우리에게 보여준다. 행복한 사람이란 자기 자신과 잘 놀 줄 아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 누구의 시선도 상관하지 않고, 투명하게 나의 욕망을 들여다보며, 내가 좋아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는 어린이는 그래서 하루에 500번 넘게 웃는다.(어른들은 평균 열 번).

-~~~ 소원을 품고 꿈을 꾸는 어린이들을 좌절시키는 건 어른들이 정해놓은 틀이다. 여기서 벗어나면 위험해. 아직은 너 혼자 할 수 없어. 그래 봤자 소용없어. 더 크면 할 수 있어. 하지만 어린이들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

-기적은 멀리 있어도, 행복은 가까이에 있다. 그리고 시련과 좌절 속에서도 삶은 여전히 빛난다. ~~~ 희망과 기대를 배시하는 삶의 여정속에서도 어떻게든 의미를 찾아내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라는 것을 말이다.

-아이는 가끔 걸음을 멈춰 하늘을 올려다보았던 모양이다. 그러다 엄마 생각이 났겠지. 지금 아니면 안 된다고 그렇게 말해도 맨날 "잠깐만" "조금 이따가" "나중에"라는 말을 반복하며 바쁜 척만 하는 엄마가.

-자신을 사랑하는 힘과 순수를 잃고 싶지 않은 의지를 가진 아이들은 어른들이 믿고 기다려주기만 한다면 언제고 자신에게 가장 좋은 자리를 스스로 찾아간다는 것을 말이다.

-마치 날 때부터 그런 아이인 것처럼, 보이는 문제가 아이의 전부인 것처럼, 아이들을 쉽게 예단하며 수군거리는 어른들의 말이 아이에게 하나의 낙인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어른들은 종종 잊는다.

-~~~ 아이들은 언제나 지금의 내가 가장 중요하다. 지금의 아이가 내가 알던 아이가 아니라는 것에 깜짝깜짝 놀라고, 그때는 그랬지, 하며 추억 속에서 허우적대는 건 언제나 어른들 몫이다. ~~~ 몸과 마음이 훌쩍 자란 아이가 내 앞에 섰을 때 부끄럽지 않은 어른으로 마주 서러면, 나 또한 어제의 나를 버리고 날마다 새로워져야 할 것이다.

-~~~ 인생이란 여행은 목적지보다 방향이 더 중요한 것일지 모른다고. 원하는 목표에 다다를 수 있을지 없을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삶은 나의 의지만으로 굴러가는 것이 아니라는 걸 살아보면 누구나 절감한다. 하지만 어느 방향으로 어떻게 갈 것인지 그것만큼은 우리가 정할 수 있다. 내가 원하는 것을 나만의 방식으로 사랑하려는 마음은 지킬 수 있는 거다. "어떻게'라고 묻는다면 동구의 말을 빌려 자신 있게 말하고 싶다. 언제나 즐겁게.

-그래서 요즘 다시 생각해보는 나의 장래 희망 중 하나는 이런 것이다. 말보다 행동으로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 누군가 이야기할 때까지 가만히 들어주되 앞서서 질문하지 않는 사람. 파도처럼 차르르 밀려왔다 스르르 물러갈 때를 아는 사람.

-~~~ 그리워했던 만큼 힘들었던 만큼 괴로웠던 만큼 행복은 더 진하고 값지다. ~~~

-우리가 원하는 진짜 어른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볼 수 있다고 믿고, 자신들이 모르는 걸 우리가 알 수 있다고 믿으며, 자신들이 느끼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느낄 수 있다고 인정하는 사람이었다.

-~~~ 관계의 상당 부분은 ‘운’이 작용한다는 한 초등학교 선생님의 말씀(이성종, 당신 아들, 문제없어요))을 기억하는 것도 관계에 허덕일 때 도움이 될 수 있다. 복잡하고 어렵게 생각하는 대신 그저 운이 나빴응 뿐이라고 문제에 단순하게 접근할 수 있어야 감정을 빠르게 회복하고 일상으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이다.

-~~~ 자신을 괴롭히는 말들을 애써 찾아가며 상처 입은 마음을 다시 헤집는 것보다 차라리 상처 준 상대를 속으로 원망하고 미워하는 게 낫다. 내가 가장 사랑하고 아껴야 하는 존재는 바로 나니까. 용서고 이해고 뭐고 내가 나를 아끼고 사랑한 다음에야 할 수 있는 일이다. 그래서 나는 상처 받고 나서 습관처럼 내가 나를 할퀴려고 할 때면 일부러 이 말을 생각한다. "It's not your faul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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