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릴 코널리가 저널리즘은 한 번만 고민하는 것이요 문학은 다시 보는 것으로 정의한 데 따르면, 통조림은 저널리즘적(액체를
‘ 담은, 한번 쓰고 버릴 용기)이었다가, 워홀이 액자에 넣음으로써
‘문학의 반열(벽에 진열하고 반복해서 관람하는 것)로 격상된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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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자신이 쓴 ‘미리 약속 기계‘를 벽에 던져 부숴 버렸어요."
매미가 지잉지잉 울고 있다. 벳쇼가 가만히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아직도 그를 볼 수가 없었다. 하얀 모자를 쓴 작은 소녀가,
할아버지처럼 보이는 남자 옆에서 아장아장 걷고 있다. 피사체로는 더할 나위 없었지만 나는 움직일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하면 좋았을 것 같아?"
벳쇼가 조용한 목소리로 내게 물었다.
"언제 그것을 실행할 수 있을지 알 수 없어지고, 도망칠 수도없게 된 그는 그것을 부숴 버리는 것 외에 어떻게 하면 좋았을것 같아?"
"좌절해야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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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은 자신을 중심으로 주변의 것을 움직이거나 바꾸려 하지 않는다. 자신이 뿌리내린 그 환경에 순응하고 긴 시간 동안 변화하는 주변 환경에 맞춰 스스로 변화한다. 그 변화의 결과는 형태로 나타난다. 그런 식물의 형태를 기록한다는 건 단지 겉모습을 그리는 게 아니라 종의 역사, 다시 말해 그들의 삶을 이해하고 기록하는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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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는 원예식물의 식물세밀화 기록이 거의 없다시피 하다. 하지만 분명한 건 사진이 이상적인 식물 기록은 아니라는 점이다. 사진으로는 식물의 종특징을 정확히 표현해낼 수 없다.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 그대로 담기는 사진에는식물 개체 각각의 변이가 모두 드러나기 때문이다. 반면 식물세밀화에서는 그 종의 보편적이고 대표적인 특징은 드러내되, 개체의 환경 변이 등은 축소해 표현한다. 덕분에 식물을 더 쉽게 식별할 수 있고, 특징을 잡아내기도 용이하다. 식물연구가 발달한 미국과 영국, 일본에서 여전히 새로운 식물을 소개할 때 사진이아닌 그림으로 발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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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이들 옆에는 같은 세이지라도 형태가 완전히 다른, 어쩌면 램스이어와비슷한 형태의 커먼세이지가 있었다. 커먼세이지의 잎에는 자잘한 흰 털이 나 있다. 루페로 자세히 들여다보니, 잎에 난 건 털이 아닌 얇은 가시였다. 뾰족하고 얇은 가시가 잎에 박혀 있는 모습을 본 뒤에는어쩐지 만지기가 망설여졌다. 털처럼 보일 만큼 얇아 아프진 않지만 잎을 만질 때마다 루페 속렌즈를 꽉 채우고 있던 길고 가느다란 가시가떠올랐다. 사람들은 보송한 잎을 기분 좋게 만지고 있었다. 이럴 땐 그저 모르는 게 낫겠다 싶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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