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월 호세 에밀리오는 시인 후안 헬만이 죽자, 40년 동안 계속 써오던 "목록 Inventario"이라는 이름의 칼럼을 이 시인에 대해 쓰기로 한다. 멕시코와 아르헨티나라는 먼 거리를 가로지른 여행객이자 망명자였던 후안 헬만에 대하여, 무엇보다 절친한 친구였던 그의 시와 아르헨티나에 대하여, 또 라틴아메리카에서 오랜 논쟁거리인 문명과 야만에 대하여. 


피로 얼룩진 현대사의 장면장면에 자신과 가까운 이를 주인공으로 세우는 일은 상상만으로 피로하고도 고통스러운 작업이다. 일어날 사건과 결과를 아니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시인을 찾아 들이닥친 군인들은 곧 그의 아들을 잡아갈 테고, 사후 13년이 지나야 신원은 밝혀질 테고, 만삭의 며느리도 딸을 낳은 후 목숨을 잃을 테고, 그 갓난쟁이는 잔인하게도 군인가족에게 입양될 테고...... 삶에는 눈을 질끈 감고 싶은 순간이 너무나 많지만, 어떻게든 마주해야 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과장도 없이, 언제나처럼 담백하고 절제된 칼럼은 마감시간을 조금 넘길 때까지 수정에 수정을 거듭하여 그의 손을 떠나간다. 잠시 후 긴장이 풀린 탓인지 호세 에밀리오는 서재에서 책에 걸려 넘어지면서 머리에 충격을 입는다. 바닥에까지 이리저리 어지럽게 놓인 그의 책들을 보며, 무질서한 스스로를 위로하던 많은 사람들에게도 충격. 

 

                   



시와 중단편 모두에서 일가를 이루었고 번역가로서 구축한 세계도 만만치 않지만, 일간지의 특집판에서 시작하여 시사주간지로 매체가 바뀌어도 "목록"은 무기명 칼럼으로 실험을 거듭한다. 굳이 말하자면, 칼럼에서는 주로 세계와 작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넓고도 깊으며, 작가의 시선으로 만들어낸 또다른 세계. 


"후안 헬만의 여행"을 담당자에게 넘긴 다음 날 호세 에밀리오는 입원했고 하루 뒤 세상을 떠났다. 1월 26일, 그의 마지막 칼럼이 시사주간지 엘 프로세소 El Proceso를 통해 배포된 것과 같은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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