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김없이 찾아왔다. 지금은 보다 잔잔한 통증이 밀려오고 있을 뿐이다. 주기적으로


 두통을 통 모르고 살았던 터, 난감하다. 느닷없이 시작된(분명 잠깐이 아니다) 이 신경쓰임이 어쩐지 고객苦客같다. 서서히 붕괴되고 있는 듯 싶다.


두통이 찾아와 글을 남긴다, 내심 그런 증상들, 그러니까 일상을 견디지 못해 앓고 있는 일상스러운 질병들을 기다리기도 했었다. 왜? 분명 유년 한 켠에서는 통증이 곧 삶의 감각이라고 믿는 우김이 남아있기 때문에? 뭐가 되었든. 이곳, 서울은 사람이 너무 많아 금방 지치고 말아버린다. 너무 많은 사람과 너무 좁은 길에게서 느끼는 갑갑함은 마치 나의 머리가 느끼는 두통과 분명 닮아있다. 서로가, 갇혀있다. 그리고 그 속에서 치열하다. 빠져나올 수 없어서 숨을 돌리지 못한다. 너무 많은 생각과 너무 많은 의심, 그러나 너무 좁은 희망. 그 지면에서 서성거리는 나의 '눈'은 서로를 닮게 만드는 통로이자 조각가, 아니.


 그만, 사람이 많아졌으면 나눠 쉬는 공기가 조금은 여유로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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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밤,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 외국에서 온 편지들을 갈가리 찢는 중이다. 도착하는 모든 편지를 수취인 불명으로 남기고 싶었지만 그러기 위해서 얌전한 당신에게 멀쩡한 편지들을 쥐어줘야 하겠지만. 벌써 나의 손은 포악하게 운동 중이다. 그와 동시에 나의 눈은 벌써 우편함을 수차례 다녀갔다. 그새 당도한 편지가 있지 않을까, 병적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어쩌면 금단증상을 낳았고, 나는 당신을 죽이려는 징후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벌써 기억이 놓쳐버린 곳까지 손님의 부재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곳에서 나는 기다린다. 아니, 짐승처럼 호시탐탐 경계의 파노라마를 펼쳐내고 있다. 아주 지독한 냄새가 주변을 가로막고 있어서 어차피 졸졸 굶고 있는 중이지만, 허기는 먹이를 - 긴장은 허약을, 그리하여 추억같은 희망에 사활을 내던지고 있는 중이다. 생존의 기로는 벌써 빗겨간 듯 하다. 오래동안 갇혀있었으므로, 반쯤은 빈사의 상태로, 또 다른 반쯤은 중독의 상태로 족족 당도하는 당신의 편지를 잘근잘근 씹었던 것이다. 하지만 당신은, 아무래도 정말 당신이 아닌 듯 하다. 내가 당신이라고 지칭했던 이유는 외로워서였다. 굶주림에 허덕이는 짐승은 흔적 하나에도 사활을 걸 수 있는 법이다. 그것이 당최 무엇이든 간에 필사적으로 매달려보지 않고서 무심한 척 지나칠 수는 없는 것이다. 하지만 포만에 익숙한 짐승은 아무래도 관심이 없는 법이다.


 오, 정말로 이것이 당신의 흔적인가? 나는 반갑게 그 편지를 뜯어보지 않을 수 없었지. 하지만 내용은 비어 있었고, 그것은 도리어 아무도 읽을 수 없는 그런 종류의 편지가 되어버렸지. 그때 나에게 몇걸음의 인내가 허용 되었더라면! 하지만 그 편지의 출현이 이내 나를 중독에 빠뜨렸지 뭐람. 고립된 이 지방으로 자꾸만 수취인 불명의 편지들이 반송되곤 한다. 편지는 언제나 보내는 이와 받는 이를 기술하도록 약속했지만 수취인 불명반송을 겪어버린 편지는 미아처럼, 고아처럼 나의 중심을 배회하기 시작한 것이다. 하루에 수십번을, 찢는다. 갈가리 찢고서 태워 날린다. 바람이 불지는 않지만 그래도 나약한 나의 입김으로 몇걸음 떠나보낼 수 있어서. 보낼 수 있어서- 편지를 내보낼 수 있어서. 그렇게 나의 손은 온갖 상처와 검은 재에 뒤범벅 되어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되었지만, 지금도 열심히 움직이고 있다. 또 나의 눈은 얼마나 부지런히 편지를 회수하는가! 이 모든 일련의 수행들이 나를 더욱 훌륭하게 만들 수만 있다면 그래도 희망은 오는가? 


 이 밤, 나는 당신을 죽이려고

저 바깥의 나라에서 도착한 편지들을 열심히 찢는 중이다. 이렇게 당신을 죽일 수 있을까? 아니, 당신들을, 끊임없이 나타나는 복제된 쌍둥이의 쌍둥이의 쌍둥이의...당신들! 나의 운동으로 열심히 재생산되는 이 상품들! 나는 언제 계약 해제를 맞이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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