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요 미메시스 그래픽노블
크레이그 톰슨 지음, 박여영 옮김 / 미메시스 / 2012년 11월
평점 :
절판


도서관에 '이 책에 발등이 찍히면 최소 전치 3주는 나오겠다.' 싶은 두꺼운 책이 있었다. 책을 펼쳐보니 만화책(요즘은 그래픽노블이라는 외국어로 부르는 그 종류의 만화책)이었다. 만화는 표지처럼 아주 어두웠다. 위스콘신에 사는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소년이 나온다. 이 만화는 그 소년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다가 그냥 불행한 청년이 되는 과정을 그린다. 그리고 그의 불행 강도를 조금 낮춰 준 것은 가족도 학교도 교회도 아닌 미시간 주 어퍼 페닌슐라에서 온 역시 불행한 소녀였다. 

 

'위스콘신에 사는 불행한 소년이 한 소녀를 만나서 어른이 되었다.'는 문장을 쓰니 <That's 70s Show>가 생각난다. 폭력적인 아버지와 답답한 어머니, 사회부적응 소년이라는 점에서 이 만화는  <That's 70s Show>와 비슷한 구석도 있다. 다만 <That's 70s Show>의 주인공은 친구들이 있지만 <담요>의 주인공은 철저하게 외톨이이다. 그 모진 세월을 함께 자란 동생과도 연대감이나 형제애를 만들지 못했다. 만화를 보면 그나마 동생은 현실을 인정하고 사회에 적응하고 가정을 이룬다. 주인공은 그렇지 못했다.

 

주인공은 진짜로 세상에서 가장 불행했고 그 불행에 의해 몸과 마음이 다 병들었다. 그 병을 치료하지 않으면 주인공은 생존 자체가 힘든 상황이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 육신을 지닌 예수를 보내서 사람을 만지게 한 것처럼, 주인공을 병에서 끌어낸 것은 성경 말씀이나 기도와 묵상이 아니라 피와 살이 있고 기쁨과 슬픔을 자아내는 한 소녀와의 사랑이었다. 그리고 병이 나으면 그만 먹어야 하는 약처럼 소녀와의 관계는 소년의 문제가 조금 나아지면서 끊어지게 된다. 

 

<담요>를 보면서 주인공 소년이 불행한 이유에 대해 계속 생각했다. 객관적인 '불행 기록'으로 보자면 <길 위에서 하버드까지>의 주인공도 이 책 주인공 못지 않게 불행했다. 그런데 하버드에 간 리즈는 왜 성취 지향의 인생을 선택했고, <담요>의 주인공은 '지독하게 불행하다가 조금 덜 불행한' 상태로 살게 되었는지 생각하게 된다.

 

내가 내린 결론은 리즈 머리의 부모는 본인들은 약물중독, 마약상에 성매매를 했어도 본인들은 대학 교육을 받았고, 자기 딸들도 고급 교육을 받기 원했고 정말 금쪽같이 위했고, 딸들의 상태를 살피고 딸들과 의사소통을 지속했으며 딸들의 자존감을 높였다. 반면에 <담요> 주인공의 부모는 기독교 맹신에 아들들과 의사소통을 거부했고, 가난이 인격과 자존감을 파괴하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였고, 아들들에게 폭력을 휘둘렀고 방임했다. 지독하게 가난한 것은 동일하지만 미국 중서부의 무식하고 폭력적인 기독교 맹신 노동자의 아들보다 뉴욕의 약물중독자이지만 엘리트의 딸이 삶의 희망을 이야기한다는 것에서 '좋은 부모'가 무엇인지 자꾸 생각하게 된다. 여하튼 읽은 시간 보다 읽고 나서 생각하는 시간이 더 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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