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노 영화 역사를 만나다
연동원 지음 / 연경문화사(연경미디어) / 2006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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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영화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영화에 대한 책을 읽는 것은 좋아한다. 원래 '꿈보다 해몽'이 더 재미있지 않던가! 게다가 우리나라에서 내로라하는 글쟁이 치고 영화에 대한 책이나 글을 안 쓴 글쟁이도 드물다. 그래서 영화에 대한 책도 참 많다. 내가 아는 사람만 해도 이른바 전문 영화 비평가 외에도 법학 교수, 언어학자, 의사, 소설가, 신학자도 있다. 현대문학 전공하는 선후배들 중에서도 영화 비평 관련 책을 쓴 사람도 많다. (그래서 나는 가끔 '요즘 현대문학으로 교수 되려면 기본 영화평론가 자격증은 필수로 구비해야 하나보다.' 그런 생각을 한다.)

 

  특히 나는 내가 볼 일이 별로 없거나 전혀 없는 장르의 영화를 소재로 쓴 글을 좋아한다. 공포영화나 SF, 그리고 이른바 B급 영화를 주제로 쓴 글들을 좋아한다. 나는 내가 이해할 수는 없는 세계이지만 남들이 어떻게 그 세계를 만들고 어떻게 이해하고 좋아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좋다.  이 책을 선택한 이유도 위와 같은 맥락에서이다. 그리고 나는 다큐멘터리 영화 <인사이드 딥스로트>를 재미있게 봤다.

 

  이 책은 서양사 전공자가 쓴 '미국 포르노 영화의 역사'이다. 나야 포르노 영화에 대해 아는 바가 없으니 저자가 하는 말이 다 맞다고 치고 그냥 책만 읽으면 되는데 저자의 글솜씨가 좋아서 책장은 아주 잘 넘어간다. 저자 본인이 포르노 산업 종사자도 아니고 포르노에 덕을 많이 쌓으신 오덕후도 아니어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심리와 경제 행위에 대한 직접적 분석은 없다. 또한  저자가 캘리포니아에 가서 포르노 산업을 직접 취재, 관찰한 책도 아니니까 '그 바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실제로 어떻게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지에 대한 내용도 부족하다. 그리고 '하드코어'한 내용도 없다. 

 

  대신 이 책에는'역사적 증거'가 있다. 상당한 양의 인명과 영화명과 영화사명의 데이터가 여기 들어 있고 연표와 관계도가 들어있다. '하드코어'가 궁금하다면 이 책을 펴 들고 구글에서 한참 검색해서 독자들이 각자 원하는 취형대로 이 책의 CD롬 부록을 만들 수도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VH1의 다큐멘터리 Greatest 시리즈가 생각났다. 나는 VH1의 다큐멘터리를 좋아한다. VH1의 다큐멘터리는 히스토리채널이나 디스커버리채널의 다큐멘터리처럼 무겁거나 집요하지 않다. VH1의 시청자 수준에 딱 맞는 깊이로 흥겨운 팝음악과 함께 다큐멘터리를 꾸민다. 이 책도 그렇다. 정치학, 경제학, 사회학, 인류학, 심리학, 철학, gender study 등 미국 포르노 영화에 대해 파고 들어가면 골치아플 문제가 정말 많은데 이 책은 읽는 사람 피곤하지 않을 수준으로 평이하게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이건 좋고 이건 나쁘다'는 식의 가치 판단의 문장이 아니라 사실 서술의 문장을 써서 독자가 우선 책을 다 읽은 다음에 이를 어떻게 풀어야 하는 것이 좋은지 생각을 하게 한다. "제가 할 수 있는 이야기는 여기까지입니다. 나머지 문제에 대해서는 독자 여러분들이 고민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에필로그에 이 책의 개정판을 쓰겠다는 약속을 했다. 저자가 그 약속을 지켜서 이 주제에 대한 더 재미있는 책을 읽을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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