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동사니
에쿠니 가오리 지음, 신유희 옮김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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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하지 않은 인생은 없다. 그리고 완벽하지 않은 사랑도 없다.

일생을 완벽하다고 자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사람은 누구나 미숙한 존재다. 그 미숙한 껍찔을 하나씩 벗어내고 완벽해지기 위한 노력을 쏟기 때문에, 그나마 조금씩 완벽에 가까워진다.에쿠니가오리의 '잡동사니'에 그려지는 두 여자의 자아와 사랑은 미숙하기가 그지없다. 혹자는 이 소설에 윤리적인 잣대를 들이댈 것이고, 혹자는 인정은 하지만 이해는 할 수 없다고 말할것이다.언제나 그래왔듯이 에쿠니가오리는 뜨거운감자를 들고 독자의 곁으로 돌아왔다. 우리곁에는 절대로 소설속에 등장하는 사랑이 없다고 자부할 수 있는가. 내 주변에 삶들이 이상한건지, 정말 내가 이상한 나라에 살고있는건지, 유부남과 미성년자의 불륜관계만 빼면 그다지 놀라운 얘기도 아닌듯 느껴진다. 물론 맘 놓고 축복해줄 수 있는 사랑인가에 대해서는 나역시 이견이 없는 것이 사실이지만:-) 마흔다섯의 평범하지만 평범하지만은 않은 여자 슈코, 그녀는 번역가 일을 하며 사랑하는 남편 하라와 함께 살고있다. 남편은 슈코를 너무나 사랑하지만 그와는 별개로 다른여자들도 사랑한다.

 

"만약 슬퍼해줄 사람이 없다면, 나는 그 누구와도 잘 수 있다고 봐." 남편에게 그 말을 한 것은 몇 년 전이었을 것이다. 우리는 부엌에 있었고 흘러넘친 우유가 바닥을 적시고 있었다. 다소 격식을 차려야 하는 자리에서 방금 돌아온 터라 둘 다 코트와 머플러를 두른 채였다. 말다툼은 돌아오는 택시 안에서부터 계속되어 남편은 질린 얼굴울, 나는 원한에 찬 표정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불가능해." 남편은 벌써 몇 번이나 한 말을 다시 한 번 되풀이했다. "슈코가 누구와 자든 난 슬퍼할 수 없어." 나는 히스테리를 부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난, 어느 누구와도 자지 않았어." 나는 양팔을 벌린 체 고함을 지르며 두 발로 부엌 바닥을 쿵쿵 굴렀다. "알아." 남편은 힘없이 인정했다. 그 무렵 우리 사이에는 말다툼이 끊이지 않았다. 나는 매일 울거나 소리쳤고, 목소리도 마음도 메마르고 금이 가 있었다. "당신이 외간 여자와 자면 나는 슬프단 말이야." 어리석게도 나는 설명하려고 했다. 비참한 듯이 울먹이는 목소리로. "어째서?" 냉담한 눈으로 날 바라보던 남편의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 55p~56p (본문중에서)

 

겉으로 보기에 슈코는 의연하다. 행복한 결혼생활을 하는 여자로 보일것이고, 부부는 결혼 후 시간이 꽤 흘렀지만 아직도 열정적으로 서로를 갈망하는 것으로 보일것이다. 하지만 슈코 자신은 불안하다. 언제 남편이 자신의 곁을 떠날지 알 수 없고, 끝없이 벗어나고 싶어서하면서 동시에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고 싶어한다. 그녀가 마흔 다섯의 나이에 사랑에 관하여 얻은 모든 교훈은 모두 정사를 통해 배운 것이라 말한다. [사람이 사람을 소유할 수는 있어도 독차지 할 수는 없다는 것. 그럼에도 어떻게 해서든 독차지하고 싶다면, 원치 않는 것들까지 포함한 그 사람의 모든 것을 소유하는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남편의 여자 친구들이라든지......] 위 본문의 내용뒤에 슈코가 마시지 못하는 우유를 삼키고 남편에게 칭찬을 받았다는 이유로 기분 좋아하는 장면이 이어진다. 하라의 불륜을 단순히 그 만의 개인적인 프라이버시로 인정해주는 것은 슈코에게 비린내 나는 우유를 마시는것과 다르지 않았던것이다.

 

 

 

 

 

이혼한 엄마와 살고 있는 미미는 열다섯살이다. 미미의 엄마는 마치 사랑하기 위해 사는 여자처럼, 연애가 잘 진행될 때는 활기차고 생동감이 넘치지만, 연애가 잘 되지 않을 때는 생활 자체가 무너져버리는 여자다. 미미의 아빠는 비교적 자유로운 연애관을 가지고 있어서, 여행지에서의 원나잇 스태드 상대를 찾는다던가, 잠깐의 유희를 제공해 줄 파트너를 물색하는 데 조금의 망설임도 없다.그것이 딸과 함께 정기적으로 떠나는 여행중의 헤프닝이라고 할지라도.

미미는 부모를 통해 사랑에 대한 개념적인 것들의 대부분을 채득했다. 그래서 경험이 전무한 상태에서도 그녀의 사랑방식은 호기심을 빙자해 일방적이다. 그것은 아빠의 가게에서 일하는 점원이면서 아빠의 친구 아들인 와타루를 대하는 그녀의 태도에서도 엿볼 수 있다.

부모의 이혼 후 쭉 미국에서 자란 미미는 엄마와 일본으로 함께 돌아온 후 일본어로 번역된 외국영화의 자막이 탐탁치 않다고 느껴 장래의 꿈을 영상자막번역으로 정했다고 한다. 여기에서 단편적이지만 그녀의 성향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녀가 생각하는 의미와 다른부분이 있다라고 한다면 납득이 되는 선 까지는 받아들이려고 하고,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은 바꾸려고 하는 의지가 있다는 점. 지금까지 누군가가 그렇게 해왔기에 막연히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아니라고 생각되는 부분은 분명히 개선한다는 점이다. 그것은 그녀의 애정 전선에도 적용이된다.

슈코를 푸켓에서 처음 만나, 그저 아빠가 흥미를 보이는 여자정도로만 생각했던 미미는, 일상에 좀 더 가까운 공간인 일본으로 돌아오면서 슈코에 대한 다른 시각의 감정을 갖게된다.

자신이 갖지 않은 안성된 원숙미에 대해 일종의 질투와 동경을 갖게되는 것이다. 그리고 그 감정은 슈코의 남편인 하라에 대한 애정과 반비례하여 질투쪽에 더 치우치게 된다. 하지만 끝까지 그녀에 대한 동경과 호감적인 부분들은 떨쳐낼 수 없어하고 소설이 막바지에 다다를 즈음엔 본인은 그녀와는 다르다는 결론을 내린다.

 

"그 빌라에 대해선 슈코한테 들어서 좀 알아. 무선전화기가 있어서 테라스에서도 걸 수 있다지."

"내가 하라 씨에게 걸 것 같아요?" 그렇게 묻자 하라 씨는 말없이 고개를 움츠려 보였다. 내 자유에 맡기겠다는 느낌으로.

"절대 안 걸 거야." 내 질문에 스스로 대답한다.

"슈코 씨하곤 다르니까."

나와 하라 씨를 태운 택시는 밤중의 고속도로-이미 눈에 익은-를 그저 달리고 있다. 불 같이 화가 난 엄마가 기다리는 우리 집을 향해.    

 -311p (본문중에서)

 

미미는 그 또래의 일반적인 소녀들과는 조금 다르다. 하지만 나역시 그 나이 때 또래에 비해 성숙하다는 말을 많이 들었다. 물론 성적인 분야에 관한 평가는 아니었지만, 그녀가 혼자있기를 좋아하고, 어떠한 상황이나 감정적인 부분들에 대해서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평가하거나 사고하는것이 그녀가 별난 탓 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이 소설은 슈코의 시선에서 한번, 미미의 시선에서 또 한번, 이야기를 끌어가는 방식의 소설이다. 재밌는 건 이제 내가 나이가 들었다는 반증인건지, 기존에 에쿠니가오리의 모든 소설에 등장하는 많은 주인공들에게 대부분 동화되었던 나에서, 어느새 중년의 여성에게만 공감하게 되는 나로 변했다는 것을 발견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제 내가 결혼을 했기 때문일지도 모르기 때문에, 아마 미혼의 여성이 글을 읽으면 슈코는 그저 바람둥이 남편을 참고 사는 답답한 아줌마로 보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내가 똑똑한 척 하지만 실은 세상을 전혀 모르는 철부지로 미미를 치부하는 것처럼.

사실 미미 나이 때의 소녀에게는 그녀가 사는 세상이 전부다. 세상물정을 모른다고 해서 그것이 그녀가 어리석다거나 멍청한것으로 판단하기에는 오류가 있다. 그러나 조금 더 살아가다보면 과거의 내가 얼마나 작고 무지했는지 알고, 그때의 과오를 반복하지 않으려고 하는것이 인간이 아니던가. 개개인의 차이는 당연히 있겠지만, 한번 태어나 한번씩 주어지는 삶을 사는 우리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대목이 아닌가 싶다. 이것은 나 혼자만의 생각이지만, 미미가 저지른 하라와의 불륜이 사랑일 수도, 아니면 슈코에 대한 동경 이면에 떠오르기 시작하는 반감에 의한 우월감의 성취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의 마음이란게 한개의 가지로만 정리되는 것은 아니기에, 그녀가 하라에게 느끼는 감정이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이견은 없지만, 나만의 잣대를 들이대지 않을 수도 없었다. 위의 본문 내용을 읽었을 때, "슈코 씨하곤 다르니까." 라는 말이 일종의 자신감회복에서 나오는 다짐처럼 들렸으니까. 그것은 앞으로 하라를 만나든 아니든간에, 미미가 살아갈 삶에도 적용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책 표지의 디자인이 재밌다. 상단 오른쪽에 제목인 잡동사니 라는 글이 아무렇게나 휘갈겨 써있고, 그 밑에는 잡다한 물건들이 아무렇게나 널부러져 있는 모습이다. 그런데 흥미로운건 그 물건들을 자세히 살펴보니, 그 어떤 것 하나도 가치없는 물건이 없다는 것이다. 우리가 보통 떠올리는 잡동사니의 경우 귀하고 값지게 여기는 경우는 거의 드문데, 이 사진에 보이는 물건들은 잡동사니라고 이름 붙이기에는 소중하고 귀하게 여겨야만 할 물건처럼 보여서 의아하다. 물론 책을 읽고나면 저마다의 의미 부여가 가능해지지만 (-: 이 잡동사니는 소설속에서 자주 등장한다. 슈코의 어머니 기리코가 죽은 남편에게 상속받은 맨션에서 살고있는데, 미미는 기리코의 맨션을 방문했을 때 각이 맞지 않는 가구부터 어지러이 놓여있는 소품들까지 '생전 처음보는 혼란스러움, 생전 처음보는 질서.'라고 생각한다. 이 후 미미가 엄마와 '와타루의 어머니'인 사야카 씨의 집을 방문했을 때 그집의 사정도 다르지 않았다. 나는 도대체 이 설정이 무엇일까 한참을 생각했다. 둘 다 남편을 잃었고, 잡동사니 속에서 살고 있고, 그런 생활에 조금도 불편을 느끼지 못 한다는 것. 아니 그보다 어떤 의미에서는 자랑스러워 하고 있다는 것. 글쎄, 그런 부분은 내가 좀 더 살아봐야 알 수 있는 것일까? 무언가 한쪽으로 결론을 내려 하면 다른 한쪽이 반기를 드는 기분이라서 어느 방향으로도 생각을 정리하지 못했다. 그저, 이미 배우자는 살아있는 사람이 아니기에, 변함없는 물건들을 곁에 둠으로써 위안을 삼는것 정도로만 정리했다.에쿠니가오리의 소설은 항상 이렇다. 그저 보이는대로 읽히는대로만 받아들이면 그것은 그녀의 소설을 반도 체 읽지 않은 것이 된다.

 

I'enveloppe=주위를 둘러싸는 것. 인상파 시대 화가며 비평가들이 즐겨 사용하던 말이다. 이 말은 모티브를 둘러싼 대기에 미치는 빛의 효과를 의마한다. 해변에서 비치 체어에 누워 일을 하는 동안, 이제까지 질리도록 읽거나 들어온 그 말이 내 안에서 문득 입체적으로 떠올랐다. 이해되었다는 게 맞는 말일지도 모른다. 가끔 이런 일이 일어난다. 아무 문제 없이 이해하고 있다고 생각했던 것이 갑자기 새롭게 이해되어버리는 순간. 정정은 아니고, 깊이라든지 정도의 문제도 아니다. 말하자면, 근시인 사람이 처음으로 콘텍트 렌즈를 착용했을 때처럼 눈앞의 모든 것이 선명해지는 느낌이랄까.    -65p (본문중에서)

 

나는 위 구절을 읽으면서 에쿠니가오리가 독자들에게 '이 소설에 대한 다른 시각을 제한하지 말아달라.'는 부탁을 한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물론 다음구절을 읽어보면 뜻이 통하는 문장이긴 하지만, 작가는 얼마든지 자신의 작품에 메세지를 담을 수 있지 않은가. 그 메세지는 받아들이는 사람의 몫이므로 해석이 각각이라 해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 소설을 그저 자극적인 스캔들이나. 불륜으로 치부해 버리면 그저 그런 이야기로 끝을 맺게된다. 에쿠니가오리의 소설은 뒤집어보고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만 보이는 것들이 분명 있다. 어느 시각으로 보던간에, 한 쪽으로만 치우치지 않으면 제대로 흡족하게 다 읽었다고 만족해도 될 듯 하다.

 

 

 

 

 

 

 

 

제프 쿤스라는 미국인 아티스트가 식물을 이용해 제작했던 걷한 조각 이야기가 화제에 오르자 후지타 씨는 환전히 흥분해 앉은 채로 상체를 뒤로 젖혔다. 가는 두 팔로 카운터 모서리를 꼭 잡고서. 그 조각은 꽃이 시들자 서서히 붕괴되어 현재는 헐리고 없다. 이 세상 어디에도.    

-173p (본문중에서)

소설에서 슈코는 지금은 있지만, 시간의 흐름속에 사라져 언젠가 세상 어디에도 없어지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가진 여자다. 그것은 많은 연애 경험을 통해 배웠지만, 남편인 하라와의 사랑이 변하는것을, 결국은 남편에게 버림받을 것을 두려워하다 이내 삶의 모든부분에 적용하게 된 듯 하다. 에쿠니가오리는 인터뷰에서 [소설 속 등장인물이 아무리 격한 사랑에 빠져도, 아무리 행복하더라도, 좋은 싫든 그 관계는 반드시 변하게 돼요. 하지만 '변하지 않았으면'하고 생각하죠. 그 심리를, 이번에는 비교저 직설적으로 써보고 싶었습니다.]라고 했다는데, 그런 의도가 슈코에게 제일 많이 녹아 있지 않나 싶다. 물론, 실제로는 슈코가 아닌 누구라도 그렇지만 말이다.

 

 

 

 

 

 

 

 

갑자기 나는 깨닫는다. 아, 그랬던 거다. 이 사람은 오늘 밤 내가 데리러 와주길 바랐던 거다. 우리의 바깥세상으로부터 자신을 데리고 돌아와주길 바랐건 거다.  -175p(본문중에서)

자신의 내연녀와 함께 있는 자리에 아내를 불러냈는데도, 슈코는 온전히 그의 입장에서 그를 이해하려 하는것처럼 보여 놀라웠다. 하지만 소설의 내용에도 불구하고 저렇듯 태평한 슈쿄의 생각에 이상하게도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나의 눈에도 하라는 그녀에게서 안정감을 찾길 원한다는 느낌을 받았다. 슈코가 하라에게서 벗어나지 않았다는 느낌을 받고 싶어 하듯이. 중간중간에 슈코가 자신과 함께 있는 자신만의 하라에게만 관심을 쏟는다는 걸 알게되었다. 집밖을 나서고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을 때는 최대한 모든 감각이 하라에게 쏠리지 않게하려는 노력이 엿 보였기 때문이다. 이것이 남편인 하라의 소리없는 강요에 의한 것임에도 슈코는 불안함 이외에는 이렇다 할 불만이 없어보인다.

내 눈에는 슈코가 빛깔 좋은 유리장식을 한 손가락위에 올려두고 깨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것처럼 보여 그녀가 안쓰러운 마음이 들었다. 정작 그녀는 게의치 않는 듯 보이지만.

 

 

 

 

 

 

 

 

우습다. 내가 여행하는 건 남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서인데, 아니, 어쩌면, 벗어나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해서일까.      -19p (본문중에서)

그녀의 심경을 제일 잘 표현한 문장이 아닐까 싶다. 누구보다 이 상황에서, 그런 남편에게서 벗어나고 싶지만, 마음 속 깊이 그를 사랑하기 때문에, 여행을 통해서 그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다시 확인하고, 그 힘으로 다시 살아내는 슈코. 잠시 떠나있을 때 그에게서 벗어나지 않았고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갈 때마다 밀린 숙제를 끝내는기분으로 돌아간다는 그녀의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이다.

 

 

 

 

 

 

 

 

나는 몇 번의 연애를 경험했고, 지금도 그 남자들을 사랑한다. 가령 그들과 우연히 재회해 그 마음을 전할 기회가 찾아온다면 나는 말이든 몸이든 아끼지 않고 내 마음을 전할 것이다.  

-20p (본문중에서)

소설 속 캐릭터들의 생각을 이렇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재밌는 일인지 모르겠다. 남의 눈에는 그저 피해자로만 보일 수 있는 슈코가 저런 생각을 한다면, 하라에게 약간의 면죄부가 주어질까? 슈코가 푸켓에서 미미의 아버지와 은밀한 정사를 나눴다면? 그것은 슈코가 부도덕한 성관념을 갖고 있기 때문일까? 내가 이 소설을 보면서 느낀 가장 큰 감정은 사랑이 한 여자에게 얼마나 큰 부분을 차지하는가에 대한 놀라움이었다. 사랑은 여자를 울고 웃게 하고, 생활 전반을 한없이 행복하게 느끼도록 하다가 절벽 끝으로 몰아넣기도 한다. 그런데 슈코의 경우에는 마치 원래부터 그런 사고방식을 갖은 사람이 아니었을까 싶을정도로 그녀의 머릿속까지 하라가 관할하고 있는 느낌을 받게 하는 부분이 많아서 놀라웠다. 과거의 일들을 회상하며 하라와 자신이 얼마나 서로를 갈망하고 서로에게 얼마나 열정적이었는지 떠올리는 슈코를 보고있자니, 과거속에서 벗어나는 것을 몹시도 두려워 한다는 인상을 받게되 그녀가 애처로운 마음이 든다.

 

 

 

 

 

 

 

 

 

나는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때 남편은 정말 알고 있었을까. 비극이 뭔가 거창한 것이 아니라 하루하루 생활 자체가 되어 우리를 붙잡아버릴 거라는 것을. 우리가 거기에 맞서기는커녕 자진해서 몸을 던지게 되리란 것도?   -77~78p (본문중에서)

아무렇지 않은척 살고있지만, 그녀에게 하라는 사랑이자 비극인것이다. 그를 사랑해서 행복하지만 그를 사랑해서 불행하다. 맞서보려고 했지만 그것은 방법이 될 수 없다는 걸 하라를 통해 알게되면서 슈코는 체념하고 받아들이는 삶을 살게된 듯 하다. 만약에 나라면? 나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수없이 하게된다.

 

 

 

 

 

 

 

 

사랑의 환희와 두려움, 그 빛과 그림자를 그려내는 완벽한 연애소설.

이 소설에 딱 맞는 소개다. 슈코과 미미뿐 아니라 기리코와 사야카 역시 자신만의 방식으로 완벽한 사랑을 하고 있다. 그 사랑에 빛과 그림자가 공존한다 할지라도.

에쿠니가오리의 글을 읽을때마다 어떻게 이런 캐릭터들과 소재들로 담담하게 글을 써낼 수 있는지 놀랍다. 그저 그녀가 사람과 감정에 대한 풍부한 지식과 경험을 소유하고 있다고 추축해볼 뿐.

완벽했다. 잡동사니 속 사랑의 환희와 두려움. 그리고 그녀의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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