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들의 범죄
요코제키 다이 지음, 임희선 옮김 / 샘터사 / 202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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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 미뤘던 책을 드디어 읽었다. 챌린지 앱의 도움을 이렇게 받는구나.

0-1. 연달아 실망하다 도착한 책의 제목과 내용을 보고 마음이 갔다. 문제는 평균 이하로 떨어진 독서 속도였다. 하지만 읽었고, 이렇게 쓴다.

1. 1988년 일본 이토시 사가미 해안에서 34세 여성 진노 유카리의 시체가 발견된다. 그리고 총 세 장으로 구성된 소설이 시작된다. 그녀들의 사정, 그녀들의 거짓말, 그리고 그녀들의 비밀. 대기업 홍보과에 다니고 있는 독신 마유미와 뉴스에서 피해자로 지목된 유카리의 시점이 빠르게 오간다. 접점이랄 게 없어 보이는 두 사람의 삶이 나열되다 갑자기 진노 도모아키라는 인물이 나타난다. 마유미에게는 대학 선배, 유카리에게는 남편이다. 마유미는 도모아키가 대학 시절 벌인 범죄의 목격자였지만, 괜찮은 상대와 결혼해야 한다는 압박감에 그가 늘어놓는 변명에 넘어간다. 도모아키가 결혼한 줄 몰랐던 마유미는 결혼을 전제로 그와 교제를 시작한다. 반면 유카리는 그와 결혼한 지 8년 차지만 시부모의 아이 압박, 그리고 남편의 무관심에 지쳐가다 우연히 금전적인 걱정 없이 혼자 사는 미도리와 친해지면서 자신의 위치가 가족이 아닌 하인임을 깨닫지만, 오랜만에 전화한 친정 식구와의 단절감에 자신이 돌아갈 곳은 어디에도 없다는 사실에 혼란스러워한다. 1장에서는 도모아키가 유부남임을 알게 된 마유미와 결혼 생활에 회의감을 느끼던 중 남편이 외도한다는 사실을 안 유카리의 만남을 시사하며 끝난다. 2장과 3장에서는 유카리의 실종과 죽음 이후를 다룬다. 2장에서 새로운 등장인물이 무대 위에 오른다. 바로 형사 구마자와 리코다.

책 제목을 잊지 않았다면 어렵지 않게 예측 가능한 전개지만, 읽으면 읽을수록 찜찜함이 남는다. 작가는 정말 독자에게 모든 사실을 다 보여줬을까? 몇 년 전까지만 이런 류의 소설에 법칙이 있었다. 예측 가능한 전개, 반전, 그리고 범인 검거와 나름의 교훈을 남긴다. 하지만 이 책의 결말은 법칙을 빗나간다. 그들은 어떤 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범죄에 가담한 게 아니었다. 각각의 뚜렷한 욕망이 존재했고, 그 욕망은 사건과 관계된 일이 해결되고 나서도 형태만 달리했을 뿐, 그 자리에 존재한다. 그것들이 정상적이지 않아 보일지라도, 작가는 그 심리와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후 결말부에 강렬한 한 문장을 남긴다.

저 사람에게, 아니 우리 여자들에게 오늘 새롭게 시작된 헤이세이라는 세상은 어떤 시대가 될까.

385p

이는 작가가 차례 앞에 심은 문장과 닮아있다.

앞으로의 세상은 우리 여자들에게 새로운 시대가 될 거야.

최근 박완서 작가의 소설을 필사하고 있어선지, 1970-80년대 여성들이 품었던 희망들이 겹쳐 보였다.

후남이는 거듭한 고배로 의식은 더욱 명료해져 눈 아래 거대한 도시, 그 갈피에 여자 길들이기의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가 공룡처럼 징그럽게 도사리고 있음까지를 분명히 볼 수 있었다. "칼아, 되살아나렴." 그녀는 주문처럼 이 소리를 외며 거듭거듭 고배를 들었다.

박완서 「아직 끝나지 않은 음모3」 중

박완서 작가가 일상을 통해 한계와 희망을 드러냈다면, 요코제키 다이는 범죄라는 욕망의 직접적인 실현을 통해 변화의 의지를 보여준다. 단지 그럴 뿐이다. 그 욕망을 어떻게 읽을 것인지는 온전히 독자의 몫으로만 남겨둔다. 나는 이 점이 좋았고, 또 부러웠다. 작가의 직접적인 끼어듦 없이도 욕망이 날 것의 상태로 올라와, 제각각 해석될 수 있지만, 결국 남는 건 작가가 심어둔 굵직한 문장이다. 앞으로 변할 여성의 삶을 이야기하면서 욕망을 거세하지 않고, 연대를 강요하지도 않는다. 작가 요코제키 다이에 흥미가 생겼다. 일본 작가에게 관심이 생긴 건 오랜만이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봐야겠다.

2. 읽으면서 피터 스완스의 「죽여마땅한 사람들」이 생각나기도 했고, 몇 년 전 좋아했던 미드 〈How to Get Away with Murder(범죄의 재구성)이 떠오르기도 했다. 뒤틀린 연대와 욕망은 언제나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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