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호선 - 뉴 루비코믹스 1125
자류 도쿠로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1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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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류 도쿠로 센세 작품엔 항상 연민과 의외성이라는 베이스가 있다. 장편도 좋지만, 아직 단편 쪽이 좀 더 신선하고 결말이나 반전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매력이 있어 일본어도 못하는 주제에 센세 작품은 꼭 챙겨보게 된다. 야호선은 현재 정발본된 자류 도쿠로 센세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다. 야호선이라는 제목도, 그 안에 살아 숨쉬는 인물들 하나하나 눈물나게 아프면서 성장하는 과정이 좋다.


01 야호선 :: 몬지 타이라X오하기 카이

 야호선
 1. [불교] 선을 수행하는 자가 아직 깨닫지 못했으면서도 이미 깨달은 체하며 사람을 속이는 것을 여우에 빗대 이르는 말. 사이비 선.
 2.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아는 척하며 자기만족을 하는 사람.

 몬지에겐 아픈 사랑을 하는 친구 치에가 있다. 이야기의 시작은 상처받은 치에와 그런 치에를 달래는 몬지로부터 시작된다. 자신은 봐주지 않는 노다를 사랑하는 치에. 연인도 친구도 아닌 그 애매한 사이에, 몬지는 자신과 치바의 관계가 자꾸 겹쳐보인다.

 비열해. 치바는.
 「사랑하고 사랑받고 싶은 것 뿐인데 소중히 하고 싶고 소중히 여겨지고 싶어 그것뿐이야.」
 알아 치에. 아플 만큼 잘 알아. 좋아하는 사람과 살을 맞대고 있는데 마음속이 흔들거린다. 이런 건 이상해.

어떡하지?

울고 싶어.

 좋아하고, 그래서 섹스는 하지만, 근데 연인은 아닌 사이. 몬지는 몇 번이고 그와 끝내려고 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면 똑같은 패턴이다. 그래서 몬지는 자신이 싫어하는 치바는 지우고, 자신이 좋아하는 치바만 마음에 쌓는다. 그게 부질없는 짓인 줄 알면서도, 그렇게 해도 자신마저 속일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그렇게 계속계속 붕괴를 향해 달려간다. 하지만 가끔씩 치바는 잔인하다. 라고 자각하고 있을만큼. 몬지에게 치바는 잔인하다. 오키나와에 가고 싶다고 팜플렛을 가져오는 몬지에게 아무렇지 않게. "어라, 뭐야? 커플 패키지라니. 연인인 척이라도 하자는 거야?" 라고 말할 만큼.

 그런 치바의 변화를 알아주는 건 친구 오하기 뿐이다. 오하기는 지친 치바의 기분을 풀어주기 같이 영화를 보러가자 제안하지만, 그 곳에서 노다와 끝내고 상처받은 치에와 만나고, 겨우 견디고 있던 몬지의 상처가 쩍하고 벌어진다.

 "…또 뭔가 빙글빙글 생각하고 있구나. 그런 거 짚어치워."
 "뭐?"
 "난 지금까지 꽤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부모가 기대했던 학교에 떨어지고 4년 사귄 여자한테 차이고나니까 이러든 저러든 아무래도 상관없어 지더라. 내 인생은 거기서 한 번 끝났으니까. 그래서 지금은 더 나아가 엉망인 쪽으로 가고 있는 거야. 전에도 말했었지? 성실하게 살 생각 없다고 몬지도 성실한 건 관두는 게 어때? 엉망인 게 진짜 편해. 정말로."
 뭐야 그게? 그런 거 듣고 싶지 않아.
 "…『그래서』 날 이런 식으로 취급하는 거야? 자기가 상처 받고 싶지 않으니까 남을 상처 입히는 걸로 바꿔서 엉망인 자신을 꾸며내고 전부 그 탓으로 돌리는 거지? 치바가 겪은 과거의 괴로움은 난 잘 모르겠지만 한 번 끝났다 해도 치바는 치바잖아. 그런 건…뭐랄까…전부 변명이야. 그런 방식…치바는 결국 과거박에 안 보는 거야.
지금을 살아. 지금을 봐…넌 무슨 짓을 해도 난 상처 받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어."
 "……"
 "……그렇지 않아…"
 나를 봐 치바.

 몬지는 속에 담아두었던 말을 폭포처럼 쏟아내고, 치바는 문자를 통해 더 이상 만나지 않는 게 좋겠다고 통보한다. 그 문자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몬지 앞에 나타난건 바로 오하기. 다시 악순환의 고리에 뛰어드려던 몬지를 단단하게 붙잡는다.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소중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여기에 있는 온기. 이 온화한 마음. 더없이 소중한 존재.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지 당연한 게 없고, 무엇이든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처음에는 몬지와 치바가 이루어질거라고 생각했다. 치바가 뒤늦게 자신의 마음을 자각하고 후회하다 몬지한테 매달리면, 몬지는 받아주는. 분명 표지에 같이 서 있던 건 오하기 였었는데.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내 시야가 바로 몬지의 시야가 아니였을까. 항상 몬지의 곁에 있던 건 오하기였는데, 치바만 보여서, 치바만 생각하느라 오하기를 제대로 보지 못했던 게 아닐까. 몬지가 다정한 오하기와 서로 좋아하게 되서, 그리고 치에도 자신을 좋아해주는 사람과 썸을 타서, 극단에서 활동하는 폰도 자기 꿈을 찾아 떠나서 (물론 요코하마와 도쿄는 가깝지만), 치바도 더 이상 상처주고 상처받지 않고 과거와 맞서게 되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02 치사량의 사랑을 담아서 :: 타카아키X타카하시

 여자애들에게 수완이 좋은 타카아키 연애의 결말은 매번 똑같다. 자신을 좋아해주지 않는 타카아키에게 여자애들이 지쳐 떨어져나가는 결말. 타카아키는 그들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에 실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런 타카아키 인생에 자그마한 타카하시란 존재가 눈에 띄기 시작한다. 버리듯 줬던 팔찌를 소중하게 간직하는 타카하시. 타카아키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백하고 그와 사귀지만, 타카아키의 전 여자친구들처럼 조금씩 조금씩 상처받고, 조금씩 조금씩 넘쳐나는 마음을 어쩔 줄 몰라하던 타카하시에게 차이고 만다.

 

 심한 짓을 했다. 「좋아한다」는 말은 한 마디도 해주지 않고 사랑받는 것에 안주해서 계속 상처를 줬어. 타카하시를 만난 후부터 뭐든지 죄다 처음이다. 인생 최초의 고백을 하기 위해 난 지금 전력으로 뛰고 있다.

 

 자류 도쿠로 센세식 오픈 결말이지만, 강아지같은 타카하시가 덜컹 잡혀서, 타카아키랑 쿵짝쿵짝 잘 살았을 것 같은 핑크빛 결말.

* 뽈뽈대는 타카하시는 정말 귀엽다.

아픔을 경험했기 때문에 소중히 할 수 있는 무언가가 있다. 우리들은 이미 그 사실을 알고 있어.

여기에 있는 온기. 이 온화한 마음. 더없이 소중한 존재. 지금 이 순간.

무엇이든지 당연한 게 없고, 무엇이든지 더할 나위 없이 소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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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토한 수확 - 뉴 루비코믹스 1318
아오이 레빈 지음 / 현대지능개발사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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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오이 레빈 센세 작품은 유명한 라센 작품이 아닌 동인지의 한 페이지, 혹은 일러스트 한 장을 봐도 아, 아오이 레빈 센세 작품이구나, 싶을 만큼 독특한 그림체를 가지고 계신다. 스토리는 조금 아쉬운 면이 있는데 장편보다는 단편이 훨씬 구성력이 좋지 않을까라는 생각도 슬며시 해본다. 토마토한 수확은 개인적으로 소장하고 있는 책인데, 처음에는 별로였다가 읽으면 읽을수록 귀여워서 종종 꺼내보는 책. 개인적으로 <토마토한 수확> 이야기가 제일 좋다. 으힛.

 

 

 

 

 

01 산신축제 :: 산신인 시로와 아카의 이야기. 매년 돌아오는 산신축제, 백산 산신은 도망치고, 홍산 산신은 그를 붙잡으러 가는 이 축제는 승자에게 언약결정권이 주어지지만 지난 백 년 동안 시로의 승리로 한 번도 성사되지 못했었다. 시로는 관심없는 척 술만 홀짝홀짝 마시지만 "새 연인이라도 생겨서 시로님한테 관심이 없어졌다든가." 라는 말에 화들짝 놀랄만큼 속으로는 아카에 대한 연심으로 가득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끈질기게 도망친 건 그 마음의 연심이 오직 자신만의 것이라는 시로의 오해때문이었다. 결국 아카의 직설적인 널 좋아한다는 고백에 둘의 정사가 성사된다는 설정이 흔하지만 또 나름 독특한 매력이 있어 좋았다. 

 

덧붙여 아카와 시로를 따라다니는 자그마한 아이들도 이 언약이 성사되는 과정에서 성체로 변신할 수 있는데, 짧지만 "어디가 좋아? 둘만 있을 수 있는 곳이라면 네 취향에 맞춰 줄게." 하는 모습이 되게 귀여웠다. 혹시 속편을 쓰고 계신다면 이 아이들의 이야기도 그려주셨으면 좋겠다.

 

 

 

 

 

 

02 그런 네가 너무 싫어 + 이런 나도 정말 싫어 :: 유유부단한 슈와 강압적인 타카시의 이야기. 상경해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던 슈는 타카의 맞선 소식에 급히 고향으로 돌아온다. 귀신처럼 슈의 귀환 소식에 그를 찾아온 타카시는 그런 슈의 숨어버린 감정을 강압적으로 끌어당기고 슈는 그런 그가 정말 싫다고 말하지만 그의 유혹에 덜컥덜컥 넘어가고 만다. 중간에 타카가 좋아한다 했던 고백에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라는 말을 하는데 이야기에 그려지지 않았지만 타카시는 전부터 입에 발린 소리를 잘한데다, 마치 장난처럼 슈에게 고백함으로써 그것이 진심인지 아니면 그저 입에 발린 소리인지 믿집 못했던 점이 더 강하지 않았을까 싶다. 슈와 다시 이어진 타카시는 슈에게 사직서를 대신 제출해주겠다는 소리를 하면서 다시 한 번 갈등이 생기는데 그런 그를 향해 화를 내다가도 결국 넘어가는 유유부단한 내가 싫다는 슈에게 "난 좋아해.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못하는 너도 실은 내가 좋아서 못 견디겠는 너도 그리고 뻔한 거짓말을 하는 점도." 라고 고백하는 타카는 서른이나 먹었지만 고등학생이나 할 법한 당당한 고백을 해서 조금은 어이가 없고, 조금은 가슴이 뛰었던 것 같다. 

 

 

 

 

 

 

03 토마토한 수확 :: 실현한 남자의 토마토를 키우는 나나메 미키와 잘 안 팔리는 배우 생활을 전전하고 있는 타테 지로의 이야기. 둘 다 첫 인상은 텃밭에 어울리지 않는 남자가 있다. 였지만 이내 서로의 약속을 한 번씩 사이좋게 나눠서 출석체크를 해주면서 한 발짝씩 친해진 이웃이었다. 지로 자신도 모르게 미키에 대한 마음을 키워갔지만, 미키는 그 속도 모르고 묘한 분위기에 미키의 고야(오이)와 토마토를 키워주겠다는 엉뚱한 말을 뱉어버리고, 그 후 지로씨는 미키를 피해다닌다. 그 와중에 미키는 만년 엑스트라 신세에서 드라마 조연을 맡게되고 미키는 그런 기쁜 소식을 지로씨에게 전하면서 다시 친해지려고 하지만 그의 커밍아웃 선언과 함께 다시 한 번 거부당하고 만다.

 

 그러던 중 드라마 조연을 맡았던 게 호평을 받으며 주목받는 배우로 떠오르고 지로가 그에 대한 마음을 접을 때 쯔음 태풍이 쏟아지는 밤 토마토 비막이 속에서 결국 눈이 맞아 섹스까지 하고 만다. 늘 상대방을 배려만 했던 미키에게 "난 아무라도 좋은 게 아니예요. 미키 씨니까 섹스하고 싶은 거예요. 미키 씨가 기분 좋은 걸 하고 싶어요!!" 라고 쏟아내버리고 마음이 이어지기 무섭게 유명인인 미키에게 남자 애인이 있다는 사실이 기사화되고 만다. 이 사태에 대해 미키도, 그리고 지로도 각자가 속한 사회에 진실을 말하고 그 곳에서 빠져나오는 용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죄책감을 느낄 미키, 그리고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담아 바로 이 기사가 "난 그렇게 착한 남자가 아니예요. 솔직히 기회라고 생각해요. 내가 아닌 다른 누군가와의 추억이 남은 이 집에서 당신을 끌어내고 싶은 마음을 계속 참아왔어요." 라고 솔직하게 고백하면서 자신과 함께 시골로 돌아가자고 꼬득인다.

 

 지나칠만큼 솔직하고 또 그래서 지나칠만큼 매력적인 케릭터다. 다테 지로는. 드러나지 못한 자신의 재능에 절망하지 않고, 숨어있는 사람의 마음까지 이끌어낼만큼. 헤어진 애인이 남긴 텃밭에 화를 낼 수도 있겠지만 지로는 그 대신 미키씨가 키우는 그 토마토를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미련 만만인 그의 행동에 조급해하지 않고 오히려 그에게 자신이 미키씨를 생각하며 키운 토마토라며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한다. 연인의 지나간 사랑에 익숙해지라는 소리가 아니다. 하지만 과거에 연연하면서 현재를 놓치는 사람보단 지로의 사랑법이 좀 더 상대를 배려하는 사랑법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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