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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과 창조 - 서울대 김세직 교수의 새로운 한국 경제학 강의
김세직 지음 / 브라이트(다산북스) / 2021년 7월
평점 :
저성장을 넘어 제로 성장의 시대로. 지난 30년동안 5년마다 1퍼센트씩 한국 경제의 장기성장률은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다고 한다. 이대로 가다가는 성장률 0퍼센트대를 넘어 마이너스 성장으로 가는 추세다. 한국 경제는 과연 이대로 제로성장대의 침체 국면에 진입할 것인가? 제로 성장시대 절대절명의 위기를 돌파할만한 해결책은 과연 무엇일까?
문제는 어느 정부에서도 빙산이 서서히 녹는 듯한 이러한 전조를 인식시키지 않았다는 점이다. 경제는 살아날 것이고, 일자리는 많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했다. 경제 실패에 대한 프레임을 각 정부에서는 쓰지 않으려고 했고, 항상 이전 정부와 그 이전 정부로 원인을 돌렸다. 그러는 사이에 한국의 경제성장률은 점점 앞이 보이지 않는 곳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
아마도 다음 대선은 '성장'에 대한 여러 담론들이 일어나겠지만,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처방과 해결책에 대해 식자분들의 생각을 듣고 싶었다. 서울대 경제학부 김세직 교수님은 1960년부터 30년간 한국 경제의 고성장기와, 1990년 이후의 30년간의 저성장기를 비교해가며, 한국 경제의 근원적인 성장 원인은 무엇이었고, 어떤 점에서 한계에 이르러 앞으로 무엇이 해결되어야 하는지를 밝힌다.
김세직 교수님은 지난 1960년 이후 한국 경제의 근본적인 고도성장의 원인은 기계축적이나 기술진보가 아닌, 인적 자본 (human capital)'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90년대 이후 모방형 인적 자본의 가치가 하락한 반면, 여전히 우리는 창조형 인적 자본으로 전환되지 못하고 모방형 인적 자본에 투자해 왔다. 한 마디로 엉뚱한 인적 자본에 투자하여 시대에 맞지 않은 인적 자본이 지금도 키워지고 있다는 것이다.
개개인이 새로운 지식과 기술을 창출하는 능력. 문제는 여기서부터이다. 모방을 통한 농업적 근면성으로 각광받는 시대를 넘어, 이제는 가치있는 무언가를 '창조'한다는 것을 제대로 인식하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
대한민국의 성장에 대한 문제가 크리에이티비티로 귀결된다는 것은 일견 당연한듯 보이지만 매우 어려운 문제이기도 하다. 공식을 암기하고 문제와 답을 달달 외웠던 학생 시절에서, 세계와 경쟁하는 창의력을 발휘해야 한단다. 과연 어떻게? 창조적 인적 자본은 키워질 수는 있는 것인가?
이 책에서는 제도적인 측면을 크게 강조한다. 재산권 보상, 인센티브, 교육제도. 그리고 아이디어가 창의적으로 발산될 수 있을만한 문화. 무엇보다 모방형 인적 자본에 대한 인식을 전 국민적으로 창의적 인적자본으로 전환해야 한다는 국민적 공감대가 중요하다고 말한다. 디지털 네이티브로 아무 저항감 없이 디지털 기기와 문화를 태어나면서부터 체득하게 되었다면, 우리의 생각 자체가 '크리에이티브 네이티브'로 일상화 되어야 할 것이다. 날때부터 크리에이티브하게.
서울대학교 경제학부의 화폐금융론 중간고사에서는 '1년 내내 섭씨 30도가 넘는 불나라가 있는데, 이 나라에서 얼음을 화폐로 도입하는 효율적인 방법은?'과 같은 문제를 낸다고 한다. 화폐의 사회적 약속성에 대한 본질적인 고민이나, 얼음을 고온해서도 유지할 수 있는 독특한 방법론 등이 필요한 부분이다.
크리에이티비티는 인생의 과제마다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이기도 하다. 성공한 크리에이티브는 감탄을 이끌어내고 레퍼런스를 만들어내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지만, 이를 아무나 쉽게 하는 것을 본 적이 없다. 성공한, 말이 되는, 알려진 크리에이티브는 지금까지는 소수의 몫이었다. 다수는 크리에이티브의 발상을 처음부터 이해하지 못하고, 그 발상이 실현된 뒤의 성공 스토리를 보고 따른다. 소수의 천재가 다수의 무지몽매함을 일깨우는 식으로 크리에이티브는 계속 남아 있게 될까?
한국 경제의 제로성장 극복을 위한 문제의 해결점은, 소수가 아닌 다수의 경제 주체가 크리에이티비티를 갖추고 아이디어를 창출해야 한다고 한다. 한국인은 언제나 위기를 극복해 왔기 때문에, 그리고 그 어떤 나라보다 포기하지 않고 성장과 번영에 대한 의지를 놓지 않았기에, 인적 자본의 축적으로 고속 성장한 한국 경제의 기적과 같은 과거를 비춰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한다. 앞으로 창조적 인적 자본과 크리에이티비티, 그리고 새로운 아이디어는 더욱 시대적인 사명이 될 것이다. 바뀌어 가고 있는 시대의 흐름에서, 먼저 배우고 깨우쳐야 할 아이디어들을 생각해본다. 모방이 아니라 창조해야 할 것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