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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애, 타오르다
우사미 린 지음, 이소담 옮김 / 창비 / 2021년 8월
평점 :
우사미 린의 <최애, 타오르다>는 '최애' 아이돌과 함께 일상을 살아가는 한 소녀의 이야기다. 최애. 내가 가장 사랑하는 것이라는 뜻인데, 최근에는 아이돌 팬덤계에서 많이 쓰이는 말이다. 우리의 인생에서 '최애'의 의미는 무엇일까? 최애가 있다는 것, 나만의 덕질을 한다는 것은 행복한 일이다. 애정의 대상을 향해 무언가를 하는 그 자체가 감사한 일이니까. 다만 '최애'의 존재가 인생에서 다른 그 무엇보다 가장 높은 곳에 있다면? 우리 일상의 다른 어떤 것보다 최애가 중요하다면, 다른 일상은 무슨 의미가 있게 될까? 그리고, 최애는 항상 내가 가장 사랑하는 그 자리에 영원히 존재하는 것일까?
좋다는 것은, 정말 '그런 거다'. 이유가 없다. 이유가 없이 좋아함의 세계로 빠져들기 때문에 어떻게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다. 그저 좋아한다는 그 자체가 생활의 활력을 넘어 존재 이유가 된다. 언제부턴가 덕질이 누구의 삶에서나 비중있는 수단이 된지 오래다. 팬덤은 대중의 인식을 넘어 자신이 좋아하는 취향에 대한 떨어질 수 없는 결속력을 만들고, 커뮤니티의 중심 세력이 된다. 우리 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현상일까. <최애, 타오르다>의 주인공 아카리는 마사키라는 아이돌 멤버를 최애로 좋아하는 18살 소녀다. 최애의 일거수 일투족을 쫓기도 하고, 인기 투표에 앞장서기도 하며, 최애의 마음을 대변해 팬카페에 글을 올려 팬과 감정을 교류하는, 팬덤에 의한 생활 그 자체로 살아간다.
아카리에게 최애와 함께하는 일상은 '척추'에 집약된다. 무의미한 것을 깎아내고 척추만 남는 듯한 인상처럼, 인생을 꾸미고 살찌우는 풍족의 삶이 아니라 그것에 역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남과는 다른 방향으로 역행한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최애에 몰두하는 삶은 계속된다. '척추'에서 오는 의미는 삶의 무게를 함께 지녀야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최애와 함께 삶의 무게를 지닌다는 것은 어쩌면 '그러지 않을 수 없는' 선택지가 놓여진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사는 것은 과연 어떠한 삶일까.
주변과 속도를 맞추기가 어려운 아카리에게 최애 아이돌 마사키는 때로는 종잡을 수 없는 행보를 보인다. 구설수에 오르기도 하고, 소속 그룹을 탈퇴하려고 하고, 은퇴까지 생각한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최애 대상은 밤하늘의 북극성처럼 항상 그 자리에 존재하지 않는다. 눈에 보일듯 안보일듯 흔들리는 최애를 바라보는 이의 마음은 어떨까? 마지막 그 순간까지, 남은 흔적이라도 붙잡으려고 하는 아카리의 절실함은 애처롭기 그지 없다. 이해받지 못하는 괴로움을 아는 주인공은, 최애인 아이돌을 온전히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그저 나를 위한 존재로 남아있길 원하는 최애는 서서히 소실되는 것까지도 소중하다. 그렇게 까지라도 하지 않을 수 밖에 없는, 최애만 남은 인생이란 이렇다. 최애를 보는 아카리의 삶은, 절실함과 애처로움이 공존한다.
1999년생 작가인 우사미 린이 이 책을 쓴 나이는 21살이라고 한다. 젊디 젊은 작가의 감성으로 다져진 문장은 여러번 곱씹어볼만한 감정의 깊이가 느껴진다. 일상의 단편에서 툭, 끊어져버린 듯한 무미건조한 문장에는 작가의 무덤덤한 감정이 묻어져 있다. 차갑고도 차가운 일상에서 단 하나의 뜨거운 감정은 최애 아이돌을 향한 감정 뿐이다. 오롯이 한 대상을 향해 집중되었던 열정은 허탈한 종말의 과정을 거쳐 커다란 상실감을 준다. 아카리는 그저 최애를 향해 뜨겁게 살아왔을 뿐인데.
인생에서 좋아함의 대상이 오로지 '최애'라는 것에 집중된다면, 그 최애를 제외한 나머지에 대한 애정은 어떻게 될까. 최애와 극단에 있는 것들은 증오가 되고, 그 중간에 있는 것들은 무관심이 된다. '최애'라는 말에 숨어 있는 의미는 애정의 대상을 최상급 표현인 '최고'로 정한다는 것이다. 삶의 애정의 대상이 되어야 하는 것은 최고와 그 아닌 것이 아닌 골고루, 적당히 풍요로워져야 할텐데.
누구에게나 삶의 무게는 다르지만, 무언가를 뜨겁게 사랑하고 이해하는 애정은 누구에게나 있다. 다만 인생이라는 여정은 길고도 길다. <최애, 타오르다>의 아카리는, 혹은 어쩌면 우리 모두는, 최애에 대한 정점을 지나서도 인생의 긴 여정을 끝까지 버텨야 한다. 최애로 인하여 삶의 무게가 힘겨워지는 사랑이 아닌, 최애로 인하여 삶이 더 가볍고 즐거워질 수 있는 그런 사랑은 있을까. 누구에게나 탈덕과 입덕 사이, 잊혀진 최애와 새로운 최애는 여러번 반복될 것이다. 하지만 가장 최애여야할 존재는 아이돌이나 위인도 아닌, 바로 자신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무거운 몸을 덜어 세상을 행복하게 살도록 바로잡아줄 수 있는 나 자신을 최애로 믿는 용기가 필요하지 않을까. 긴 여정과 함께 하는 사람은 결국 나일테니까. 결국 그러한 여정을 함께 해 온 이가 바로 나의 최애였고, 최애일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