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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충격 - 지중해 내 푸른 영혼
김화영 지음 / 책세상 / 2001년 5월
평점 :
구판절판
“피렌체로 돌아오는 기차간에서 나는 한 스무 살 쯤 먹어 보이는 중국 청년을 만났다. 라오스에서 온 중국인으로 파리에 와서 어느 가구상에서 뒷바라지꾼으로 고생스럽게 일을 하여 이제 겨우 입에 풀칠을 하고 불어도 익숙해지려는데 그만 라오스로부터 군 소집 영장을 받았다는 것이었다. 떠나기 전에 2년 동안 모은 돈으로 구경이나 하러 이탈리아까지 왔다는 그 청년은 자기와 상관도 없는 전쟁이 이제 오랜 고통의 값으로 얻은 기쁜 삶의 시작을 다 망쳐 놓았다고 말하면서 울먹였다. 그의 얼굴은 젊고 아름다웠다. 나는 그 얼굴을 찬찬히 들여다보았다.”
-김화영, <행복의 충격> pp 225-226, 책세상, 1998년 2판1쇄
이 에피소드는, 1969년 가을 프랑스 프로방스로 유학을 간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이 1972년 3월 부활절 봄방학을 맞아 이탈리아 피에졸레에 있는 수도원을 방문하고 다시 피렌체로 되돌아가는 기차에서 경험한 스토리다. 김화영 선생이 피에졸레 수도원에 간 이유는 그가 신앙적 수준으로 흠모하던 프랑스 작가 알베르 카뮈의 발자취를 답습하기 위해서였다.
훌륭한 문장으로 쓰인 가슴 아픈 에피소드를 읽을 때마다 내 몸은 달아오른다. 그럴 수만 있다면, 실 풀린 연이 되어 아직도 더 먼 과거로 날아가는 시간의 끈을 세차게 잡아당겨 당대의 그들을 내 시간의 세계로 초대하겠다. 아니 시간이 문이 열리면 지체 없이 그들의 시대로 내가 돌진하겠다. 하지만 그런 환상은 발생할 기미가 없고, 현재(2013년)와 당시(1972년)는 무를 수도 되감을 수도 없는 시간의 강이, 나날이 그 폭을 확장하고 있다.
국내 언더그라운드 뮤지션 MOT의 맴버인 Z.EE 씨는 “인생이란 하나의 스냅 샷에서 다른 스냅 샷으로 끊임없이 흘러가는 의식의 벡터다. 흐르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의식”이라고 말했다.
-출처:http://blog.naver.com/z_ee/53332795
매월마다 응결된 개인의 의식 열두 개가 매해 끝에 하나로 응축되어 새해로 진입하는 연료로 태워버린다고 가정했을 때 김화영 선생이 1972년 봄 이탈리아 여행 중 기차 안에서 만난 중국인 청년은 지금쯤 마흔 하나의 의식을 41개의 세상에 흘려보낸 채 기력이 떨어진 노인이 되었을 것이다. 내가 운 좋게도 육순이 된 당시의 중국 청년을 만난다면, 그리하여 잔망스럽게도 내가 그에게 “41년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선생님의 오늘은 어떤가요? 세월에 강제로 청춘을 빼앗기로 얻은 지금의 삶에 만족하세요?” 그렇게 물어볼 수 있다면 좋겠다.
타인을 향하는 관심의 일부는 재귀성이 있어서, 질문자가 원하는 대답이 있고 응답의 내용이 질문자의 가슴에 뒤꽂길 바랄 때가 있다. 현시점에서 육순이 된 ‘41년 전 스무 살 중국인 청년’이 지나온 세상에, 그리고 지나간 마흔 한 개의 세월에 내던진 마흔 하나의 개별적 생애속의 의식이 소멸된 그 값으로, 그가 오늘 이 세계에서 무얼 얻었고 그것이 어떤 의미로 남아 있는지, 솔직히 나는 전혀 궁금하지 않다.
다만 겨눠보고 싶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41년이 지난 후 나는 지나온 내 생애를 어떻게 바라보고 평가할지를, 지금도 그때와 다르지 않는 햇살이 소나기처럼 쏟아지는 풍경 속에서 세월의 풍상과 화상에 노출되어 기운은 나날이 잔멸하는 그 중국인 노인의 육신을 내 눈으로 만지면서 말이다. 솔직히 음식과 술을 먹고 마셔서 맛을 느끼고, 몸을 섞어서 얻는 쾌락에 너무 쉽게 예속되는 이 육체 따위야 ‘의식이 이끌고 다닌 시체’일 뿐, 결코 채울 수 없는 욕망을 배설하는 탐욕의 화수분일 뿐이지 않는가.
“내가 그곳에서 배운 것은 인생의 무상함이 아니다. 그 촉루와 그 촉루와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피렌체의 창밖 풍경은 무관한 것이 아니라 우리들 삶을 참으로 삶이게 하는 행복과 비극이 표리라는 진실을 <사막>의 시인은 말한다.
그날 오후에 밝은 빛 속에서 나는 언덕 위의 공동묘지를 홀로 거닐었다. ‘16세의 약관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소녀 클라라 잠들다’라고 써 있는 무덤은 여기에 없다. 위로 받을 수 없는 영혼들은 이제 하얀 돌이 되었다.” -김화영, Ibid p224
덧1: 이 여름이 다 지나기 전까지 <알베르 까뮈 전집>을 다시 읽어야겠다. 그러고도 여름이 남아 있다면 <니코스 카잔차키 전집>까지도 내쳐서...
덧2: 요즘은 언어와 문장이 사람과 사람 사이에 의미를 실어 나르는 ‘수레’로 기능하지 않고, 수레에 금박을 입혀서 그 자체에 열광하는 소위 ‘문장을 위한 문장’을 쓰는 게 소장 지식인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런 글들이 여성들에게 꽤 많은 지지를 얻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도 시도했습니다. 하지만 제 몸에 맞지 않는 옷이군요.^^
덧3: 이 잡문은 며칠 전 김화영 선생님의 신간 <여름의 묘약>을 주문한 기회에, 4년 만에 다시 읽었습니다. <여름의 묘약>을 읽을 분들은 이 책을 먼저 읽으세요. 알라딘 및 대부분의 인서에서는 개정판을 판매하는데, 저는 구판으로 읽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