롤리타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5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지음, 김진준 옮김 / 문학동네 / 2013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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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음사의 절판본에서 부활한 문학동네의 <롤리타>

 

  시간은 인간의 몸뿐 아니라 세상에 태어난 모든 것을 사포처럼 갈아대는 모양이다. 나보코프의 이 작품을, 나는 10년 전에 민음사에서 발행한 <롤리타> 사서 두어 번 읽었다. 그 책은 지금 내 방 서가에 꽂혀 있다. 겨우 두 번 읽었을 뿐인데도 10년이란 세월과 서너 번의 이사 덕에 책 표지가 너덜거렸고 페이지에 더러 얼룩이 찍혀 있었다. 오늘, 며칠 전에 예약 주문했던 블라드미르 나보코프의 소설 <롤리타>가 배달되었다. 기쁜 마음에 포장지를 뜯었다  

 

 독서하는 습관이 몸에 배지 않았던 시절인 10여 년 전, 나는 민음사가 출간한 <롤리타>를 처음 읽었다. 그리고 나는 대기 밖에서 산소를 탕비해버린 우주선 속의 비행사처럼 이 작품에 박힌 활자에 질식해버렸다. 나는 문장의 읽다가 미로에 갇혀 버렸던 것이다.

 

 난해한 문장으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한없이 아름다웠던 <롤리타>의 문장에 내가 취한 탓이였다. <롤리타>의 문장은 부드럽고 우아했다. 길거리에서 미끈하게 드러낸 여자의 예쁜 다리를 훔쳐다보다가 방향 표지판에 얼굴을 부딪치고마는 얼간이처럼, 나는 이 아름다운 문장에 몸서릴치다가 번번이 스토리를 놓쳐버리고 말았다. 번역본임에도 불구하고 <롤리타>에서 나보코프가 표현한 텍스트는 산문이 추구할 수 가장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롤리타>는 나보코프가 쓴 미문의 정점에 놓여있다고 나는 지금도 믿고 있다.

 

  영어를 안다고 모두가 이 작품을 번역할 수는 없다

 

 10년 전 민음사 본을 구매하여 어렵사리 완독한 뒤, 이 작품의 원본을 읽을 결심을 했고 나는 곧장 구매했다. 하지만 원서를 읽는 건 번역본을 읽는 것보다 몇 배는 더 어려웠다. 단문으로 직조된 해밍웨이와 문장과는 달리 중의적이고도 복잡한 수사로 가득한 나보코프의 문장을 읽기엔 내 영어 실력은 너무 얕았다. 나는 독서 도중에 포기했다.

 

 나보코프의 작품을 원어로 읽지 않는 한, 독자는 번역자의 기량에 기대게 된다. 김진준 씨가 옮긴 이 버전이 제대로 번역된 것인지는 지금으로서는 확담할 수 없다. 원작을 손에 쥔 적 있었으되,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였고, 독서 중에 접었으니 원작과 번역본을 대조할 능력이 나에게는 없다. 한 시간 남짓 속독으로 100페이지를 읽고, 기억을 뒤적거려 민음사 본과 비교해봤을 때 문학동네(김진준 옮김) 번역본은 읽을 만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나는 이 버전을 완독하지 않고서도 리뷰를 자신 있게 썼다.

 

 

원작에 앞서 영화를...

 

 독서도 우리 삶의 다른 것과 마찬가지로 꾸준한 훈련이 필요한 종목이다. 지금과 달리 독서가 단지 음악감상과 함께 내 이력서 나의 취미’로 기재되던 시절, 민음사 본을 사서 100페이지를 읽는 데 일주일이 더 걸렸다. 추정이긴 하나 문학동네에서 출간한 이 번역본을 단지 세간에 떠도는 저자의 명성만 믿고 구매한 사람이 많을 것이다. 500페이지를 조금 더 넘긴 분량이지만, 적어도 5년 이상을 매일 하루 최소 4시간 이상 온전히 독서에 받쳐온 독자가 아니라면, 이 작품을 완독하기 힘들다. 그만큼 이 작품은 난해(하지는 않지만 그렇게 오해하는)하다.

  그런 분들에게 우선하여 영화를 볼 것을 권한다. <롤리타>는 영화로 두 편이 제작되어 있다. 명장 스탠리 큐브릭이 연출한 1962년 작과 제레미 아이언스가 험버트 교수로 나오는 1997년 버전이 있다. 거두절미하고 에이드리언 라이 감독이 연출한 1997년 버전을 보기 바란다. 나는 다섯 번 이상 봤는데도 지루하단 생각을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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