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리5구의 여인
더글라스 케네디 지음, 조동섭 옮김 / 밝은세상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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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작품을 읽다보면 작가의 사상을 투영한 문장에서 지문처럼 묻은 작가의 개성을 느낄 수 있다. 개성있는 작품은 곧잘 문학성과 연결되고 주제문체를 중요하게 다루는 순수문학에서 자주 경험한다. 장르소설의 문장에서는 기대하기 어려운 체험이다. 순수문학 작가에 비해 다소 떨어지는 표현력도 한몫하거니와  문체보다는 캐릭터사건에 집중하는 장르소설의 특성 탓이 크다.

 

그래도 가끔은 아! 하고 깜빡 잠에서 깨는 것처럼 10줄 이하의 단락만으로 특정 작가를 가리킬 경우가 있다. 나에게 레이먼드 챈들러와 데니스 루헤인 필립 클로델, 그리고 더글라스 케네디가 그렇다. 이들 작가가 쓴 작품은 문체보다는 내레이터(narrator/화자)의 목소리에서 개성을 느낄 수 있다. 레이먼드 챈들러의 내레이터는 고독하고, 필립 클로델의 화자는 고뇌가 깊고, 데니스 루헤인의 내레이터는 손가락으로 창문을 그으면 물방울이 주르르 흐를 것처럼 감정이 풍부하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파리 5구의 여인>읽었다. 토요일 오후부터 오늘 새벽까지 열 몇 시간을 달아서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몰랐다. 더글라스 케네디의 작품은 <빅피쳐>이후 두 번째인데 한 페이지를 다 읽기도 전에 아하, 더글라스! 라는 감탄이 나왔다. 케네디 트유의 화자를 단박에 알아챌 수 있었다. 케네디 소설에서는 다른 작가가 카피할 수 없는 독특한 느낌의 내레이터가 있다. 우유부단의 가정에서 자란 게 분명하 작품의 내레이터는 읽던 책을 확 집어던지고 싶을 만큼 소심하고 찌질하다. 만약 작품의 내레이터가 내 옆에 있다면 에라이, 이 인간아!’ 뒤통수 한 대 날렸을 것이다. 하지만 케네디가 창조한 이 찌질한 내레이터를 미워할 수만은 없다. 

 

 <빅피처>에서도 그랬지만 <파리5구의여인>에서도 주인공- <파리5구의여인>1인칭 주인공 시점을 취하기에 주인공이 곧 내레이터가 된다-은 아내의 배신과 음모로 주인공은 마치 교통사고 현장의 피해자처럼 된다.  그러나 시체를 산자로 오해하여 총을 쏜 것처럼 사후적 결과이긴 해도, 주인공 역시 가정을 무너트리는데 일조하였기에 그는 붕괴된 가정과 흩어진 가족을 생각하며 깊은 죄책감에 빠진다. 하지만 주인공은 빨던 사탕을 떨어트린 코찔찔이처럼 징징거리며 쉽게 좌절하지 않는다. 그는 무너진 가정을 다시 일으키려 분주히 움직인다. 이곳저곳에서 억울하게 얻어터져도 버틴다. 독자는 그런 주인공의 모습을 보면서 웃음을 띤다. 그를 응원한다. 왜? 소심한 주인공(내레이터)의 모습에서 독자는 거울을 보듯 바로 자신을 목격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더글라스 케네디가 한심한 찌질이를 작품의 주인공으로 또 내레이터로 선택한 건 우연이 아니다. 

 

 대중소설이 추구하는 목적과  대중소설을 읽는 독자의 바람은 같은 무늬를 벽에 비춘다. 작품의 주인공이 세상을 구하길 원치 않고 다만 주인공만큼나 찌질하고 새가슴인 독자의 가슴을 책 읽는 동안만이라도 부드럽게 만져주며 위로하는 일이다. 그리고 그 위로는 반드시 독자가 포복절도하거나 대성통곡하는 방식으로 접근할 필요도 없다. 독자를 울리고 약올리고 짜증을 일으키고 때로는 말도 안되는 오컬트적 환상을  불러와 경외감을 일으켜도 좋다.  그러나 다양한 감정의 파도를 일으키되 마무리는 독자가 수긍할 수 있어야 한다.

 

  <파리5구의여인>의 결말은 독자가 수긍할 수 있는 해피엔딩이다. 해피엔딩은 대중소설의 모범적인 결과 방식이 아니라해도 압도적 다수의 독자는 그걸 원한다. 왜? 대중소설은 독자가 발 담그고 사는 세상을 모사하지만 그 세계의 끝은 소설처럼 독자가 수긍할 수 있는 모양을 그려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독자는 현실에 지치고 때로 벗어나길 갈망하다.  <파리5구의여인>은 독자에게 탈출구를 제공하고 안전한 복귀마저 돕는다.  그러므로 나는 장르소설 애호가로서 사심없이 말한다. <파리5구의여인>은 출판사가 매긴 작품 한 권의 돈값에 충분한 작품이라고. 

 

 도서관에서 남이 읽다가 대충 버린 책 말고 갓구은 빵냄새 나는 새 책으로 읽기 바란다. 농담 아니다. 출간한지 6개월 이내의 책에서는 분명히 빵냄새가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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